(인터뷰)이종걸 “삼성생명, 총수 일가 사금고로 전락…불공정 끊어내야”
"민주당, 순한 양처럼 재벌 봐주기…지난 5년간 뭐했나 아쉬워"
2022-12-27 06:00:00 2022-12-27 06:00:00
2014년 '삼성생명법'을 처음 발의한 이종걸 전 민주당 의원은 지난 23일 서울 마포구 사무실에서 <뉴스토마토>와 만나 삼성생명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뉴스토마토 강석영 기자] 국회의 삼성생명법(보험업법 개정안) 논의 착수 소식을 누구보다 환영한 이가 있었다. 삼성생명법의 아버지, 5선을 지낸 이종걸 전 민주당 의원이다. 이 전 의원은 2014년 4월 삼성생명법을 처음 대표 발의했다. 이를 계기로 오랜 기간 삼성만 누리던 특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삼성생명법은 보험사의 계열사 주식·채권 보유액 평가 기준을 현행 취득원가에서 '시가'로 변경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보험사의 자산운용을 규제한 보험업법 취지를 지키기 위해서다. 보험사의 자산은 보험계약자가 낸 보험료다. 이에 고객 돈을 계열사를 위한 사금고처럼 꺼내 쓰다가 보험금을 지급하지 못하는 사태를 막기 위해 보험업법은 보험사 총자산의 '3% 이내(3% 룰)'로 계열사 주식·채권을 보유하도록 제한했다. 은행, 금융투자사 등 다른 금융사의 자산운용을 규제하는 이유도 같다.
 
하지만 보험업만 감독규정상 평가기준이 취득원가인 탓에 자산운용규제가 유명무실해진 상황이다. 이로 인해 특혜를 누린 건 삼성생명뿐이다. 삼성생명은 현재 그룹 핵심사인 삼성전자 지분 8.51%(5억815만주·올해 3분기 연결기준)를 보유하고 있다. 취득원가로 5444억원에 불과하지만, 시가로 30조원 규모로, 무려 삼성생명 총자산(약 314조)의 10%에 달한다. 삼성생명이 삼성전자의 지분을 쥐고 있는 이유는 '총수일가→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삼성생명법이 통과하면 삼성생명은 20조원 규모의 삼성전자 지분을 매각해야 한다.
 
이 의원은 삼성'특혜'법을 바로잡겠다며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19대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이후 20대 국회에서 재발의됐으나 별다른 논의도 이뤄지지 못한 채 맥없이 폐기됐다. 이 의원은 지난 23일 서울 마포구 사무실에서 <뉴스토마토>와 만나 "삼성의 관리 아래 8년의 시간이 조용히 지나갔다"며 "삼성생명은 삼성그룹의 사금고로 전락했다. 시간이 지날 만큼 지났다. 이번 국회에선 꼭 통과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이다.
 
2014년 '삼성생명법'을 처음 발의한 이종걸 전 민주당 의원은 지난 23일 서울 마포구 사무실에서 <뉴스토마토>와 만나 삼성생명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사진=뉴스토마토)
 
-2014년 4월 '삼성생명법'을 처음 대표 발의했다. 이른바 '삼성공화국'에 대한 문제의식이 법안 발의로 이어진 것인가.
 
독점경제를 공부하며 삼성의 위치를 생각하게 됐다. 삼성이 1위 대기업이란 사실에 이견이 없지만 그늘이 너무 많다. 그중 삼성생명은 가장 핵심적인 문제였다. 삼성생명은 삼성이란 거대 기업의 자산 창고, 사금고 역할을 부인할 수 없었다. 은산분리로 삼성그룹이 은행을 소유할 수 없으니 삼성생명이 은행 수준의 기능을 했다. 삼성생명이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은행, 금융투자업 등 다른 금융사들은 시가로 주식과 채권 보유액을 평가받지만, 유독 보험업만 취득원가를 기준으로 한다. 이로 인해 특혜를 받는 건 삼성생명뿐이다. 특혜와 꼼수의 역사적 배경이 궁금하다. 
 
발의 당시 입법 기록부터 찾았지만 남은 기록이 없었다. (보험사의 계열사 유가증권 보유액 한도인 총자산 3% 이내를 계산하기 위한) 분모(보험사의 총자산)와 분자(보험사의 계열사에 대한 유가증권 보유액)가 (시가와 취득원가로) 전혀 다른 차원이다. 이 자체가 입법의 누락인데 어떤 설명도 없다. 보통 입법조사관이 보고하고 입법한 의원이 설명하는 과정이 기록으로 남는다.
 
-삼성이 법의 허점을 역이용했다고 볼 수 있나. 
 
더 적극적이지 않았을까.
 
지난 2016년 3월 이종걸 당시 민주당 원내대표 모습. (사진=뉴시스)
 
-2014년은 민주당이 진보개혁노선을 강하게 이끌던 때지만, 삼성을 정면으로 겨냥한 법안을 내면서 당 안팎의 파장이 만만치 않았을 것 같다.
 
민주당 의원들이 발의를 꺼리진 않았다. 3~40명 공동발의도 할 수 있었으나 발의에 보안이 필요했다. 시간을 끌면 삼성에 알려지고 오히려 장애가 될 수 있겠다 싶어서 순식간에 10명 이상을 모아 발의했다.
 
-삼성생명법을 발의했을 때 정부와 언론 등의 반응은 어땠나.
 
금융위원장이 (삼성생명법을 논의하는) 정무위 법안소위에 들어와서 애써 의미 없다는 식으로 말했다. 언론도 기사화하길 꺼렸다.
 
-민주당 내부에서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나.
 
저한테 와서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한 기업을 상대로 해야 하냐는 목소리는 있었다. 일반적인 의견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명분 자체가 분명했기 때문에 나서서 반대는 못 했을 거다.
 
-하지만 결국 19대 국회 임기 만료로 법안은 폐기됐다. 그 당시 어떤 일이 있었나.
 
원내대표 시절 중점 법안으로 냈고, 정무위 소속으로 법안소위에 들어가 법안 설명도 했다. 아무리 자기 법이 중요해도 원내대표가 법안소위까지 들어가진 않는다. 마지막 회기 만료로 폐기될 운명에 처했을 때 강하게 주문도 했는데 결국 폐기됐다. 당시 박근혜정부와 한나라당이 막았다고 하지만, 원칙에 어긋난 한 조항조차 개정하지 못한 건 우리 국회가 공론장으로 여론을 잘 조정하는 기관으로서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삼성 측에서 직간접적으로 접근하진 않았나.
 
저를 찾아오진 않았다. 그랬다간 바로 언론에 밝혀지니까. 삼성은 최소한의 힘으로 최대의 효과를 만드는 전략을 취했다. 당시 민주당도 전당적 차원에서 밀어붙이는 상황은 아니었다. 한나라당은 철통방어만 했다. 그런 상황에서 삼성도 공연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 없이 현상 관리만 하면 됐다. 삼성이 지금까지 잘 관리했으니 8년간 크게 알려지지 않고 가끔 관심 영역에서만 제기되지 않았겠나.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삼성깃발. (사진=뉴시스)
 
 
-삼성생명법이 통과되면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이 불가피하다. 이에 삼성해체법이란 주장까지 나온다. 법안을 준비할 때 지배구조 개편을 염두에 뒀나.
 
당시 박근혜정부까지 경제민주화를 강조하니 삼성에서도 대책을 세웠다.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주식을 처분하면 삼성전자가 자사주로 매입하는 방안이었다. 삼성도 고쳐야 한다고 알고 있었다. 삼성생명은 은행 수준의 금융기관이다. (삼성생명법은) 고객 돈으로 계열사 장사하면 안 된다는, 재벌 지배력으로 구조화된 금융회사와 비금융 계열사 관계의 원칙을 말하고 있다. 그게 벌써 7~8년 전인데 여태까지 못 고쳤다는 것 자체가 사회 현상이다.
 
-삼성생명법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단 사실 자체가 한국 정치의 민낯이란 뜻인가.
 
이미 법안이 발의된 지 8년이 지났다. 논의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주장은 힘을 잃었다. 삼성전자 주식이 외국자본에 넘어가지 않도록 (삼성의) 내부적 검토가 있었다. 삼성전자가 자사주로 매입하면 그 규모만큼 다른 투자가 유예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는데, 14년 때보다 충격 없이 정착될 수 있도록 준비가 됐을 것이다. 삼성은 2012년 박근혜 정부가 경제민주화를 말했을 때부터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주식 매각을 준비했다. 우린 8년간 하나의 이슈를 두고 많은 공부를 했고, 이젠 이 이슈를 해결하고 넘어갈 때다.
 
-경제민주화의 일환에서 삼성생명법이 필요하다고 말하는데, 본인이 생각하는 경제민주화란 무엇인가.
 
반독점이다. 생산성과 경제적 능력이 아닌 시장 지배력으로 만들어진 불공정 질서를 깨는 것이다. 시장을 지배한 독점 기업은 경제 괴물과 같다.
 
-삼성생명이 시가 기준 총자산의 3%를 초과해 계열사 주식을 보유하는 행위가 불공정의 정점이라는 것인가. 
 
그렇다. 재벌의 특징은 소유하지 못한 것으로 소유한 만큼 누린다는 것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삼성전자 지분은 1.63%에 불과한데 (이재용 회장→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 지배구조를 통해) 삼성전자 경영권을 장악했다. 삼성생명 보험계약자의 돈으로 삼성전자 주식을 사고, 주식의 지배력은 총수 일가가 누리고 있다. 다른 기업은 누릴 수 없는 것을 삼성만 누린다. 이걸 해소하는 게 경제민주화다. 부수적으로 맞닥뜨린 의문은 문재인정부 5년간 왜 민주당은 삼성생명법을 통과시키지 않았냐는 것이다.
 
2014년 '삼성생명법'을 처음 발의한 이종걸 전 민주당 의원은 지난 23일 서울 마포구 사무실에서 <뉴스토마토>와 만나 삼성생명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사진=뉴스토마토)
 
 
-삼성생명법이 통과되지 않은 일부 책임이 지난 정권에도 있다고 보나.
 
문재인정부 때 재벌 대기업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다. 특히 삼성은 더욱 안 나왔다. 삼성 등 대기업이 기업의 선두주자로서 경제 견인차 역할을 했다면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일자리가 없어지고, 기업에선 직원들을 몰아내고, 자영업자가 많아져 소비가 떨어지고, 일부 국민은 투기형 투자로 어려워졌고, 그 시작이 어디겠냐. 대기업이다. 그중에서도 삼성이다. 지난 5년간 민주당 정부는 욕먹더라도 재벌을 칭찬만 할 게 아니라 푸시하고 비합리적인 걸 바꿔냈어야 했다. 최대 의석을 가지고도 힘 있게 문제제기도 안 했다. 지난 5년간 어느 때보다 순한 양처럼 재벌 대기업을 보고만 있었다. 뒤늦게 논의가 이뤄져 반갑지만 지난 5년간 뭐 했나 아쉬움이 있다.
 
-이번 국회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있을까.
 
시간이 지날 만큼 지났다. 삼성도 시간을 끌만큼 끌었으니 적정선을 찾아야 한다. 정 안 되면 3년 정도 단계별로 (매각을) 유예할 수 있다. 투자 계획을 왜곡하지 않는 선에서 3분의 1씩 매각하는 방식이다. 이번엔 해야 하지 않겠나.
 
-삼성을 겨냥한 다양한 입법 활동을 해왔다. 삼성에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삼성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 저의 지적이 오로지 삼성을 때리기 위한 목적이 아님을 이해해달라. 경제 질서가 공정해야 날로 불평등이 커지는 사회에서 일반 국민들이 살맛 난다. 태어나서부터 부자와 빈민이 분명하게 나눠진 나라는 유지되기 어렵다. 삼성도 국민기업으로 더 커갔으면 좋겠다.
  
대담=최신형 선임기자, 정리=강석영 기자 ksy@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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