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내가 저 사람이 되고, 저 사람이 내가 된다. 그리고 원래 제목이 ‘크리스마스 선물’이다. 딱 이 두 문장만으로도 어떤 얘기가 어떻게 흘러가서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보지 않아도 눈에 훤하게 보인다. 그래서 이 영화가 그걸 노리고 예상한 채 뻔히 보이는 그곳으로 달려 갔나 보다. 무슨 말인가 하면 이렇다. 다시 말하지만 이 얘기,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얘기 맞다. 그리고 당신이 예상하는 그런 흐름도 맞다. 딱 예상하는 그만큼의 감동과 웃음과 재미를 안겨준다. 그런데 말이다, 딱 하나가 설명 안된다. 이 얘기, 다른 뭔가가 있다. 그게 확연히 눈에 보이진 않는다. 그리고 다시 얘기하지만 딱 그 예상 그대로 흘러간다. 그런데 뭔가 다른 게 분명 있다. 그러니 이 정도로 재미가 있고, 그 재미가 이 정도로 큰 웃음을 주고, 그 웃음이 마지막에는 감동을 끌어 오며, 끌려와 날 바라보는 감동이 예상 못한 눈물을 안긴다. 영화 ‘스위치’, 반드시 당신이 예상한 그 얘기 그 흐름대로 간다 단언할 수 있다. 그런데 정말 생각지도 못한 뭔가, 눈에 보이지 않는 딱 한 가지가 이 얘기를 ‘결코 흔하지 않은 재미’로 변화 시켜 버린다. 이게 ‘스위치’의 특별한 한 가지다. 그래서 이 영화, 당신의 예상을 온전히 그리고 완벽하게 뒤엎어 버린다.
영화는 상당히 익숙한 흐름 그대로다. 국내와 할리우드 상업 영화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던 ‘바디 체인지’ 코미디. 하지만 조금 다르다. 여기부터 익숙함과의 차이가 벌어지기 시작한다.
두 남자가 있다. 한 남자는 캐스팅 0순위 1000만 배우 박강(권상우). 하지만 인성은 바닥. 눈만 뜨면 스캔들 주인공이다. 일에 대한 소중함도 잊었다. 배고픈 과거는 잊은 지 오래. 돈이 먼저다. 사람은 없다. 사랑도 없다. 그저 돈만 밝히는 속물 중의 속물. 그런 박강 곁에는 그의 모든 것을 책임지고 뒤처리하고 온갖 수발 다 드는 매니저 조윤(오정세)이 있다. 박강과 조윤은 과거 연극 무대에서 함께 하던 절친 사이. 하지만 박강은 운이 좋아 톱스타로 급부상, 조윤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연기의 꿈을 버리고 절친의 매니저로 활동하며 한 가정의 가장이 됐다.
영화 '스위치'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그리고 연말 시상식. 박강은 남우주연상을 수상한다. 자신이 잘나 받았다 거드름 피우는 박강. 꼴불견이다. 수상식 직후 박강과 조윤은 함께 귀가한다. 그날은 공교롭게도 크리스마스. 박강은 괜시리 골이 난다. 조윤에게 단골 술집에서 소주한잔을 권한다. 크리스마스에 가족 대신 박강과 불편한 자리를 해야하지만 끝까지 의리를 지키는 조윤이다. 얼큰하게 취한 박강은 조윤의 배웅을 받으며 집으로 향한다. 집으로 향하던 박강은 자신이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받게 될 줄은 꿈에도 모른 듯 단잠에 빠진다.
영화 '스위치'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그리고 눈을 뜬 박강. 아침이다. 도대체 누군지도 모르는 아이들이 자신에게 아빠라 부르며 달려든다. 더욱이 자신이 눈 뜬 곳은 어제까지 잠자고 생활하던 고급 펜트하우스가 아니다. 수도권 변두리 낡은 단독 주택. 더 놀라운 건, 몇 년 전 분명히 헤어졌던 애인이 눈앞에 있다. 그리고 그 애인이 억척스런 말투와 행동으로 날 깨운다. 정신 차리고 보니 과거 헤어졌던 애인과 결혼한 사이. 벌써 아이도 둘. 더 놀라운 건 따로 있다. 캐스팅 0순위 천만 배우 톱스타였던 박강이 하루 아침에 무명의 재연 배우가 돼 있다. 통장의 넘쳐 나던 돈은 이제 잔고가 채 몇 만원이 안된다. 이건 꿈이다. 하지만 별 짓(?)을 다해도 꿈에서 깨어날 수가 없다. 어제의 박강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늘의 박강은 세상 누구보다 비루하다. 더 어처구니 없는 건 또 있다. 어제까지 자신의 모든 것을 수발 들던 매니저 조윤이 내 자리를 꿰차고 있다. 조윤이 천만 배우 특급 스타가 돼 있다. 세상 미치고 팔짝 뛸 듯하다. 그나마 다행인건, 예전이나 지금이나 박강은 여자에게 인기가 높다. 그리고 그나마 위로가 되는 건 조윤은 톱스타지만 여전히 여자에겐 정말 인기가 없다.
영화 '스위치'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이제 박강은 톱스타에서 옛 연인의 남편이자 두 아이의 아빠로서 일상을 살아가게 된다. 불편하고 화가 나고 짜증 나고 적응 안되던 일상이 점점 즐겁고 흥미롭고 재미있고 행복한 순간으로 변화해 간다. 어느 누구도 모르고 당연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말이다.
‘스위치’는 너무도 뻔해 보여 사실 손이 선뜻 가지 않을 듯한 설정이다. 직관적으로 떠오르는 충무로와 할리우드 과거 여러 비슷한 설정의 영화 몇 편이 레퍼런스로 떠오를 정도. 하지만 이 영화가 그걸 모를 리 없다. 그래서 ‘코미디’란 양념을 더 맛깔 나게 뿌려 간을 맞췄다.
영화 '스위치'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박강’을 연기한 권상우는 실제 드라마와 영화에서 멜로·액션 주인공으로 거듭나던 캐스팅 0순위 특급 스타였다. 하지만 극중 박강처럼 자신의 삶에 순응하는 아빠로서의 모습이 꽤 멋지게 변모한 배우 중 한 명으로 꼽기에 주저함이 들지 않을 존재감이 됐다. 무엇보다 그 변화의 중심에 코미디를 안착시켜 데뷔 이후 장르 변화에 상당히 안정적으로 안착한 보기 드문 중년의 아빠 배우로 이름값을 높이는 중이다. 이미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서 특유의 ‘밈’으로 승화시킨 자신의 흑역사 ‘소라게’를 이번 영화에서도 한껏 남발하며 웃음을 터트린다. 분명 익숙한 웃음인데 이제 그 톤이 코미디란 그릇 안에서 맛나게 익어 풍미를 더한 느낌이다. 권상우가 이 정도로 코미디에 유효 적절한 타격 기술을 품고 있었는지 놀라울 정도다. 권상우의 이런 효과는 오정세란 또 다른 걸출한 코미디 장인이 존재하기에 더욱 돋보인다. 오정세는 같은 듯 다른 그리고 다르지만 분명 같은 느낌의 권상우가 선보인 코미디를 제대로 받아 치고 흡수하면서 극중 ‘박강’과 ‘조윤’의 호흡에 리듬감을 불어 넣는다. ‘바디 체인지’ 이전과 이후 선보이는 오정세의 호흡을 관찰하면 그가 얼마나 뛰어난 코미디 장인인지 실감할 수 있다. ‘웃기기 위해 연기’하는 게 아닌 ‘타이밍’으로 웃음을 자극하는 오정세만의 연기는 코미디의 장르적 진면모에 가깝다.
영화 '스위치'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권상우와 오정세가 웃음과 재미를 담당한다면 이민정과 그의 이란성 쌍둥이 자녀로 등장한 박소이 김준 두 아역의 존재감은 드라마를 만들어 내는 가장 좋은 재료다. ‘바디 체인지’ 이후 권상우와 함께 만들어 가는 소소함이 이 얘기 자체를 온전히 ‘크리스마스 선물’로 만들어 가는 지름길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덧붙여서 이민정의 진짜 남편 ‘이병헌’의 깜짝 존재감도 웃음을 터트리게 하는 포인트다.
영화 '스위치'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하나의 재화가 유통되고 그 유통이 형성시킨 시장에는 분명 변하지 않는 공식이 있다. 그 시장을 형성하는 가장 보편적 규모의 재화가 히트 치고 활성화 돼야 결국 그 시장에 활기가 넘친다는 흐름이다. ‘코로나19’로 힘이 빠진 영화 시장이 몇 년 째 이어지고 있다. 특급 대작들이 시장에 풀리면서 반짝 흥행을 몇 차례 끌어 왔다. 하지만 ‘반짝’이었다. ‘스위치’ 같은 규모의 영화들이 쏟아져 나와 관객들에게 재미와 웃음과 감동을 준다면 시장 활성화에 더 없는 명약이 될 듯하다. 이런 영화 너무 오랜만이다. 그래서 더 반갑고 즐겁고 고맙다. 개봉은 내년 1월 4일.
P.S 엔딩 크레딧 이후 오정세 주연의 쿠키 영상이 나온다. 속편 예고는 아니다.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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