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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별똥별처럼 스러진 뮤지션들…돌아보니 삶의 유산"
인터뷰|'음악이 죽은 날' 저자 황세헌
김현식·김광석·존 레논·마이클 잭슨…세상 떠난 국내외 음악가 452명 정리
20~21세기 대중음악 계보 한눈에 "우리 기억 속에서 살아있는 음악들"
2022-12-07 17:00:00 2022-12-07 17:51:55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한국 재즈의 대모' 고 박성연(1940~2020) 선생은 생전 경제적 궁핍과 끈질 긴 병마에 시달리다 끝내 생을 마감했다.
 
책은 그를 "자신의 대표곡 '물안개'처럼 육신이 '하얀 물거품이 산산이 밀려 흩어'지듯 사라졌다"며 안타까워 한다. 그의 분신과도 같은 재즈 클럽 '야누스'와 그것이 현재 한국 재즈계란 고목의 뿌리임을 상기시키며.
 
스러져간 숱한 별들이 종이 한 장의 격차를 두고 명예의 전당처럼 등장한다. 이난영부터 김현식, 김광석, '신중현과엽전들'·'사랑과평화' 이남이, 들국화 주찬권, 그리고 한국을 넘어 해외로, 지구 반대편의 라틴 아메리카부터.
 
밥 말리, 존 콜트레인, 지미 헨드릭스, 존 레논, 마이클 잭슨, 엔니오 모리코네...
 
흡사 천국으로 향하는 음악의 현현(顯現)이 있다면, 분명 이들의 이름이 신성 영역 최상단에 있을 것이다.
 
최근 녹사평 인근에서 만난 신간 '음악이 죽은 날'의 저자 황세헌씨는 "팬데믹 이후 음악가들의 부고 기사가 부쩍 늘면서 음악과 죽음이란 키워드에 대해 정리해보고 싶었다"며 "음악계의 추모 열기가 활발한 해외에 비해 국내에선 상대적으로 그런 분위기가 적어 아쉬움의 마음도 있었다"고 집필 배경을 밝혔다.
 
책이 다루는 대상은 유성우처럼 음악의 빛을 남기고 스러진 뮤지션 452명이다. 책을 넘기면, 꼭 짚고 넘어가야 할 20~21세기 대중음악의 계보가 한 눈에 들어온다. 특히 한국 음악가의 죽음을 악전고투 내지 고군분투라 적은 대목도 흥미롭다.
 
"당연히 모든 한국 음악가들이 악전고투했다는 얘기는 아니에요. 다만 한국 음악가들을 자세히 보면, 체계적인 인적 토대 위에서 성장했다기보다는 한 개인의 천재성으로 빛을 낸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았어요. 특히 대중가요보다는 록이나 재즈 같은 장르 음악에 몸을 던졌던 사람들이요. 이 땅에선 주목받지 못하는 음악이라, 고된 삶을 살았을 그들이 음악 안에서라도 행복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책 한장마다 음악적 설명 맨 위 칸에는 사인(死因)이 꼬리표처럼 달려 있는 점이 특이점이다. 폐허탈, 호흡부전, 뇌종양, 전립선암, 심장마비, 수술합병증…. 존 프라인, 케니 로저스, 투츠 히버츠, 리 코니츠처럼 코로나19 탓으로 유명을 달리한 음악가들도 등장한다. 다만, 죽음에 대한 설명보단 음악적 설명에 무게 중심을 뒀다.
 
"초고에서는 죽음의 배경에 대해서도 꽤 자세히 다뤘었거든요. 그러다가 갑자기 생각이 들었어요. '이거는 그냥 인터넷으로 다 찾아볼 수 있는 팩트가 아닌가, 너무 구구절절하지 않나.' 어쨌든 그들이 남기고 간 유산(음악) 그 자체가 중요한 거니까. 정리하면서 오히려 '사는 동안 더 좋은 음악을 듣고 나눠야겠다'는 계기가 생긴 것 같습니다."
 
신간 '음악이 죽은 날' 저자 황세헌씨.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역사상 최고의 보사노바 명반 ‘Getz/Gilberto(1963년 녹음, 1964년 발매)’의 두 주인공, 안토니우 카를루스 조빙과 주앙 지우베르투도 몇 장의 격차를 두고 나란히 나온다. 자갈 구르듯 조곤조곤한 언어와 쉬운 듯 예상을 엎는 선율, 복잡한 화성의 ‘혼종 교배’가 반세기 넘도록 왜 그 영향력이 아직까지 건재한지를 설명한다.
 
이 음반 대표 수록곡 ‘The girl From Ipanema’, ‘Desafinado’는 세계인들에 ‘보사노바 DNA’를 심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날에도 분위기 좋은 카페 어딘가에서 들어봤을 만한 음악들. 지난 2020년 ‘Getz/Gilberto’ 발매 56주년을 기념해 국내 최초 앨범 구성 그대로 실연 공연도 열렸다. 한국 대중음악상 수상 이력의 재즈 보컬리스트 마리아킴을 필두로, 다른 재즈보컬 허성, 색소포니스트 이용석 등이 함께 했던 무대다.
 
책의 의의를 조금 더 깊게 파고 들어가보면, 단순히 과거의 음악가들을 소개하는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오늘날의 음악에까지 연결되고 있고, 영향을 주고 받는 지점들도 자연스레 생각난다.
 
저자는 "지금의 음악도 분명 과거의 영향을 받은 것이 순리이고, 모든 음악은 서로 유기적인 영향을 주고 받는다고 생각한다"며 "요즘 MZ세대들이 자주 듣는 빌리 아일리시 음악의 근원을 찾다보면 50년대 페기 리가 나오는 것과 같다"고 했다.
 
그는 2013년부터 이태원에서 뮤직바를 6년간 운영하기도 했다. 돌아온 바이닐(LP) 열풍을 입고서다. 8000장이던 LP는 코로나 직전 가게를 내려놓을 때쯤 2만장 가까이 늘었다. 소위 음악 좀 듣는다는 사람들이 그의 가게를 찾았다. '산울림' 김창완, 장기하, '장기하와얼굴들' 출신 하세가와 요헤이, 타이거디스코, 동양표준음향사 오정석 대표….
 
팬데믹 이후, 다시 직장인으로 돌아간 삶을 몇년 째 지내며 이 책도 썼지만 최근엔 마음 한 구석이 편치 않다. 10월29일 이태원 근처의 그 일에 대한 소식이 들려오고서다. 참사 뒤 이태원 인근을 비롯해 음악계, 문화계 일각에서는 안전한 음악과 문화 공간을 젊은 세대들에게 마련해주지 못했다는 자성도 나온다.
 
"저도 기성세대로서 분명 책임을 느꼈어요. 젊은 이들이 마음껏 펼칠 수 있는 문화의 장을 안전하게 만들어줘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 같아서요. 이태원 역시 예전의 활기 되찾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후에는 안전한 그들만의 문화가 자리잡게 될 수 있기를 응원합니다."
 
결국 책은 우리 곁을 떠나갔어도 우리에게 살아 있는, '우리 기억 속에서 살아있는, 영생을 누리는 음악'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한다.
 
"모든 음악은 서로 연결돼 있다는 큰 줄기를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어쩌면 인류가 전쟁이든, 기후변화든, 팬데믹 같은 전 지구적인 위기를 언제라도 겪는 게 이상하지 않은 시기기도 하니까. 그래서 음악이 더 절실하게 다가왔었던 것 같고요.  저 또한 주변 분들로부터 알게 된 많은 좋은 음악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군가와 공유하는 것은 어떤 감흥보다 크다는 것을 매순간 느낍니다."
 
책 '음악이 죽은 날'. 사진=안나푸르나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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