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이 배우에 대한 좀 올바른 정의가 필요할 듯하다. 누군가는 ‘벼락 스타’가 됐다 그를 말한다. 또 누군가는 한때 대한민국 신드롬 주인공이던 드라마 주역이었기에 지금 그 자리에 올랐다 말하기도 한다. 또 다른 누군가는 이 배우를 두고 대기만성형 이라 부른다. 그의 초기 출연 작품부터 따지고 보면 당연히 무명 시절을 겪었고, 지금 유명세 발판이 됐단 해석이다. 모두 맞는 말이고 또 반대로 모두 틀린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렇게 말해 본다. 이 배우, 유독 배역의 결을 많이 타는 것이 첫 번째다. 우선 전국민에게 ‘응팔앓이’를 선사한 바 있는 드라마 속 그의 모습을 보자. 과하지도 그렇다고 모자라지도 않는 캐릭터 소화력이 찰떡처럼 작품과 달라 붙어 그의 배역과 연기를 살렸다. 그의 초기작이던 한 독립영화 속 BJ 배역은 이 배우를 기억하는 모두가 다 알고 있는 레전드 캐릭터다. 사실 당시에는 배우가 아닌 실제 ‘양아치’를 캐스팅 한 것 아니냐는 풍문까지 있었다. 충격적 반전의 마약 수사 범죄극에선 또 어땠나. 서늘한 느낌의 인물이 실제 이 배우의 차가운 생김새와 맞물리면서 극 전체의 몰입감을 극단적으로 끌어 올렸다. 그래서 말할 수 있다. 이 배우에 대한 평가와 언급, 사실 모두 틀렸다. 그는 여전히 그리고 아직도 몸에 완벽하게 딱 들어 맞는 배역 그리고 자신의 연기 스타일을 제대로 살릴 수 있는 작품을 제대로 온전히 만나지 못한 것이다. 배우가 작품에 맞추지 못한다면 너무 아마추어적 자세라고 비난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얘기다. 이 배우, 아직 제대로 껍질을 깨고 나오지 못했다. 그런데도 이 정도라면. 껍질을 깨고 나왔을 때는 어떨까 상상해 보라. ‘올빼미’의 류준열은 아직 껍질도 깨고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이 정도다. 그 다음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하다.
배우 류준열. 사진=NEW
정식 개봉 전 ‘올빼미’에 쏟아진 찬사는 올해 개봉한 그 어떤 한국영화 가운데 가장 뜨거운 수준이었다. 내용적 장르에서 스릴러, 그리고 형태적 장르에서 사극. 하지만 영화 자체를 풀어가는 문법은 현대극 스타일의 범죄물에 가까웠다. 스토리 자체의 촘촘함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는 압권을 넘어서 숨을 쉴 수 없게 만들 정도였다. 류준열은 앞을 못보는 맹인 침술사 ‘경수’ 캐릭터를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스크린에 펼쳐 놨다.
“너무 좋은 얘기만 써주신 것 같고 반응들도 너무 좋아서 몸 둘 바를 모르겠어요. 사실 너무 겁도 나고요. 최근 국내 영화 시장이 너무 침체돼 있는데 저희 영화가 너무 기대치만 올렸다가 그 기대를 제대로 충족 시켜 드리지 못할까 봐 겁이 많이 나요. 감독님도 첫 데뷔 작품이라 긴장 많이 하셨더라고요. 다들 긴장도 많이 하고 있지만 반대로 팀 분위기와 호흡이 너무 좋았기에 모든 걸 감사하게 생각하고 받아 들이려고 하고 있어요.”
류준열은 ‘올빼미’를 처음 만나 ‘경수’ 캐릭터에 매력을 갖게 된 계기를 설명하면서 자신의 학창 시절을 잠시 언급했다. 그는 학창 시절에는 굉장히 게으른 학생이었다고. 남들이 모두 주인공에 매달릴 때 경쟁도 덜하고 조금만 노력해 되는 다른 배역에 눈을 돌리면서 머리를 썼다고 웃는다. 뭔가 핸디캡이 있거나 다른 부분에 신경을 써야 하면 연기도 제대로 못하는 데 모든 걸 다 망칠 듯 했다고. 하지만 ‘올빼미’의 ‘경수’는 달랐다고 한다.
배우 류준열. 사진=NEW
“기본적으로 영화는 거짓인 걸 알고 보는 거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를 느끼면서 보고. 인조실록에 나온 한 줄의 내용에 분명 허구가 덧붙여서 만들어진 내용인데 ‘나라면 이랬을까’ 싶은 생각이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번뜩 들더라고요. 좀 더 읽다 보니 ‘진짜 이랬을 수도 있겠는데’란 확신까지 들었죠. 이 정도면 두 시간을 깜빡 속아서 보고 나와도 너무 재미있을 것 같은데 싶었죠. 그 정도로 저한테는 몰입감이 근래 보기 드물 정도로 강했던 작품이에요.”
‘올빼미’ 시나리오에서 가장 특색있고 눈에 띄는 지점은 바로 ‘주맹증’이다. 극중 류준열이 연기하는 ‘경수’가 앓는 질병이다. 낮에는 전혀 앞을 볼 수 없지만 해가 떨어진 밤 그것도 빛이 거의 없는 어둠 속에서는 오히려 앞을 어느 정도는 볼 수 있는 수준이 된다고 한다. 이 질병은 영화적 상상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다. 실제로 존재하는 질병이란다. ‘올빼미’에선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이자 설정이다.
“저도 처음 들었죠. 무슨 초능력인가 싶었어요. 제가 갖고 있는 시각장애인 분들에 대한 편견 중에 하나가 뛰지 못할 것이란 점이었어요. 그런데 맹학교에 가면 ‘뛰지마세요’ 팻말이 실제로 여기저기 많이 붙어 있어요. 진짜 쇼크였어요. 앞이 안보이지만 내가 익숙한 곳이라면 가능하구나 싶었죠. 실제 주맹증을 앓는 분들도 만났고 그분들도 영화 속 경수와 비슷하신 분도 계셨어요. 내가 안보이는 것도 있지만, 내가 못본다고 믿는 사람들이 내가 뛰는 걸 볼 때의 기분이 어떨까 그것에 집중했던 것 같아요.”
배우 류준열. 사진=NEW
사실 ‘올빼미’가 가장 낯설면서도 가장 특색있게 다가올 듯한 지점은 이 영화의 이른바 톤 앤 매너다. ‘올빼미’는 역사 속 인물인 인조 그리고 인조의 아들 소현세자가 등장한다. 조선 시대가 배경이다. 그래서 사극이지만 영화를 보고 있으면 사극이란 느낌이 거의 들지 않는다. 배우들의 사극 톤 대사 배제도 분명한 이유 중 하나가 되겠지만 그 이상의 무엇이 있는 듯하다. 감상을 하는 어느 순간 형식이 아닌 얘기 자체에 빠져 들게 된다.
“그렇게 보셨다니 너무 기분이 좋아요. 저희 모두가 특별하게 이 영화가 사극이니 사극에 맞게 어떤 고증을 하고 그 고증에 따라야 한다는 것 같은 어떤 강박에서 분명 벗어나 있었어요. 당연히 조선 시대가 배경이니 의복이나 다른 지점에 신경을 쓴 부분은 있죠. 하지만 감독님도 그랬고 저나 해진 선배 그리고 다른 배우들도 그랬던 건 확실해요. ‘사극’이라서 ‘사극’에 뭘 맞추자는 건 없었어요. 오히려 감독님이 너무 사극스럽지 않게 가자고 하셨던 기억이 나요.”
앞서 언급했지만 류준열의 시각장애인 연기를 더 얘기 안할 수가 없었다. 그는 요즘도 아침에 일어나면 초점을 맞추는 것에 좀 어려움이 있다고 웃는다. 실제 영화를 보면 최고의 압권은 해가 떨어지는 순간 급변하는 류준열의 눈빛 변화다. 해가 떠 있을 때 앞을 전혀 보지 못하는 ‘경수’가 해가 떨어지면서 앞을 보게 되는 순간의 변화는 이 영화의 백미이자 이 영화의 핵심 같은 설정이다.
배우 류준열. 사진=NEW
“사실 그때의 눈빛이 제가 두 개의 케이스에서 참고한 게 있어요. 하나는 제가 관심이 많아서 패션쇼를 많이 보러 다녀요. 그때 모델 분들 시선을 보면 묘한 느낌이 있어요. 뭘 보는 게 아니라 흡사 꿈을 꾸는 듯한 눈빛이에요. 근데 그 눈빛이 되게 익숙한 기억이 나더라고요. 기억을 떠올려 보니 어릴 적 먼 친척 분 중에 실제 시각장애인 분이 계셨어요. 제가 본 기억이 나는데 그 분의 눈빛이었어요. 극중에서 ‘경수’ 캐릭터를 만들면서 테크닉적으로는 모델 분들의 표정을 많이 참고했지만 감정적으로는 제 먼 친척 분의 그 모습을 많이 떠올려 봤어요.”
영화 촬영을 하면서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묻는 질문에 류준열은 두 가지를 언급했다. 하나는 침술이다. 영화에선 직접 류준열이 침을 찌르는 장면이 나온다. 당연히 실제로 찌르는 거다. 하지만 정말 찌르는 것은 또 아니다. 쉽게 설명하면 정말 찌르는 것은 맞지만 실제 피부에 찌르는 건 아니라고 웃는다. 두 번째는 첫 촬영 당시 이준익 감독이 현장에 와서 슬레이트를 쳐준 일화다. 이 감독의 조언으로 극중 경수의 외모가 크게 바뀌고 그 모습이 지금의 극중 경수로 설정이 됐단다.
배우 류준열. 사진=NEW
“우선 침은 진짜 찌르는 게 맞아요(웃음). 근데 피부에 뭘 덧대서 거기다 찌르는 거에요. 진짜 찌르면 큰일 나죠 하하하. 영화를 사랑하는 한의사 모임이란 게 있던데 거기 계신 한의사 분이 현장에 오셔서 지도도 해주셨어요. 실제로 혈 자리가 없는 팔꿈치 쪽은 한의사 분들이 찔러 보라고 대주기도 하세요. 하하하. 그리고 저희 안태진 감독님이 이 감독님 조감독 출신이잖아요. 현장에 오셔서 첫 촬영의 슬레이트를 쳐주셨는데, 원래는 제가 수염이 없는 설정 이었거든요. 근데 이준익 감독님이 ‘사극인데 수염이 없어?’라고 하셔서 그때 진짜 다들 촬영 중단하고 정말 난상 토론을 벌였어요. 하하하. 결국 수염을 붙이는 걸로 결정이 났는데 수십 가지 수염을 붙이고 테스트 촬영을 했는데 마지막 지금의 수염이 낙찰된 거죠.”
류준열은 자신이 연기하는 배역과 영화에 대한 나름의 어떤 사명감이 있다고 한다. 류준열 뿐만이 아니다. 그보다 훨씬 더 경력이 많은 선배 배우들이 예전부터 언급했던 발언이다. ‘배우는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 같은 존재’라고. 이날 류준열도 그렇게 말했다. 그의 연기와 그가 출연한 작품이 세상을 바꿀 수는 없단 것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그의 연기와 그의 작품으로 아주 작은 변화라도 일어난다면 그것만으로도 족하다. ‘올빼미’가 말하는 주제와도 맞닿아 있다.
배우 류준열. 사진=NEW
“영화 속에서 제가 그러잖아요. ‘제가 보았습니다’라고. 그래서 결과가 바뀌는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얘기를 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에 포커스가 맞춰진 점이 너무 마음에 들어요. 바뀌면 너무 좋겠죠. 하지만 바뀌지 않는다고 해도 어떤 작은 목소리 하나가 전체를 바꿀 수 있는 에너지의 시작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제가 출연했던 대부분의 영화들 주제가 거의 비슷해요. 배우는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이 돼야 한다는 말. 가슴 속에 잘 새기고 있습니다.”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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