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법이다. 인간은 그런 존재일지 모른다. 아니 그렇게 만들어진 존재였다 해야 맞을 듯하다. 성경에 등장하는 최초의 인류 ‘아담’ 그리고 아담의 갈비뼈로 만들어 진 최초의 여자 하와. 하와는 에덴 동산에서 뱀의 꼬임에 빠져 먹어 선 절대 안되는 선악과를 먹고 말았다. 선악과를 먹은 뒤 부끄러움을 알게 된 하와는 아담에게도 이를 먹으라 유혹한다. 그렇게 성경 속 등장한 ‘최초의 인간’ 아담과 하와는 규칙을 어겼다. 그리고 그들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났다. 종교적 시각에서 등장하는 원죄 의식, 그 시작이다. ‘세이레’는 성경에 등장하는 이 원죄 의식의 첫 시작 그리고 우리 민간 신앙에 등장하는 ‘믿음’에 대한 강박을 교묘하게 뒤섞어 현실과 이상의 경계를 붕괴 시켜 버린 미장센으로 관객 오감을 뒤흔든다. 각각의 인물들이 등장하는 시점과 관객이 바라보는 시점 교차가 극단적이다. 이런 상황은 현실과 상상이 붕괴되는 것을 넘어 인물들의 다른 무엇을 바라보게 만든다. 이 지점에서 느껴지는 가장 큰 감정은 일종의 ‘강박’이다. 각각의 인물이 느끼는 ‘강박’을 통해 ‘세이레’는 ‘금기’하는 것에 대한 반대급부, 즉 우리 모두가 각각의 사연 속에 얽매여 있던 단단하게 꼬인 실타래 그 자체를 이미지로 전환해 보여준다.
‘세이레’, 이 생소한 단어의 뜻은 ‘7일이 세 번 지날 때’를 뜻하는 21일을 의미하는 삼칠일(三七日)의 순우리말이다. 일반적으로 아기가 태어난 뒤 스무 하루 동안 외부인 출입을 막거나 집안 사람들이 부정한 곳에 다녀오는 것을 금할 때 쓰는 말이다. 새끼줄에 고추와 숯을 끼워 매다는 금줄이 ‘세이레’ 부정을 막기 위해 걸어 놓았던 풍습 중 하나다.
영화 '세이레' 스틸. 사진=트윈플러스파트너스㈜
‘세이레’는 이런 옛 풍습을 미신이라 여기고 어긴 우진(서현우)이 겪는 기괴한 일을 담아냈다. 영화를 보면 ‘세이레’ 부정 때문인지, 아니면 우진이 아내 해미(심은우)에게 한 거짓 때문인지. 그것도 아니면 우진이 죽은 전 연인 세영(류아벨)에 대한 원죄 의식 때문인지. 현실과 꿈의 경계가 서서히 무너져 간다. ‘세이레’는 우진의 악몽이지만 사실 자세히 뜯어 보면 그의 아내 그리고 그의 전 연인 모두의 악몽이며, ‘세이레’는 보는 모든 관객들의 무의식 속 자아의 원죄와 강박을 건드리는 발단 이기도 하다.
영화 '세이레' 스틸. 사진=트윈플러스파트너스㈜
영화 내용은 간결하다. 우진은 얼마 전 아빠가 됐다. 우진의 아내 해미와 장모는 미신을 매우 중요시 한다. 현관문에는 금줄을 쳐 놨다. 장모는 바로 앞집에 사는 우진의 처형이자 결혼한 자신의 큰 딸조차 세이레가 지나지 않았단 이유로 집에 들어오지 못하게 할 정도다. 해미도 마찬가지로 극성이다.
그리고 어느 날이다. 우진은 한 통의 부고 문자를 받는다. 결혼 전 사귀던 연인 세영의 부고 문자다. 해미에겐 누구라고 말은 안했다. 하지만 꼭 가봐야 한다 말한다. ‘세이레’를 들먹이며 해미는 부득이한 사정이 아니면 가지 말라 한다. 그러나 우진은 해미의 만류를 뿌리치고 세영 장례식에 참석한다. 장례식에서 만난 세영의 쌍둥이 자매 예영을 통해 우진은 자신의 내면에 자리한 미안함 그리고 그 감정을 넘어선 죄의식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 죄의식은 공교롭게도 집에 돌아온 뒤 아이가 아프기 시작하면서 엉뚱한 곳으로 번져 간다. 우진이 ‘세이레’를 어기고 장례식장에 다녀온 것에 대한 해미의 불만이 터져 나온다. 우진은 전 연인과의 비밀 그리고 아내에게 거짓말을 한 사실, 여기에 세이레를 어긴 것에 대한 불안감이 겹치면서 자꾸만 괴이한 경험을 하기 시작한다. 우진은 봐야 할 것을 보지 못하고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는 것 같은 강박에 시달린다. 우진이 실제로 경험하는 건지, 상상인지 알 수 없는 혼돈과 혼란이 계속된다.
영화 '세이레' 스틸. 사진=트윈플러스파트너스㈜
‘세이레’는 첫 시작부터 그리고 마지막까지.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인지. 어떤 게 현실이고 그 반대의 무엇이 상상인지. 명확한 경계를 드러내지 않는다. 특히 이런 모든 감정이 우진을 중심으로 그려진다. 모호하고 명확하지 않은 경계는 아마도 우진이 느껴야 하지만 반대로 곧이 곧 대로 우진이 저지른 잘못에 대한 감정적 부재를 지적할 수는 없는 관념들 때문이다. 우진이 아내에게 한 거짓말, 우진이 과거 전 연인과의 사이에서 관여된 잘못 그리고 ‘세이레’를 통한 새로 태어난 자식을 향한 부족한 관심 등은 오롯이 도려내고 잘라내야 할 잘못된 ‘무엇’이라고 하기엔 통념상 따르기 부담스러운 무엇이 더해져 있다.
영화 '세이레' 스틸. 사진=트윈플러스파트너스㈜
때문에 ‘세이레’는 첫 시작부터, 그리고 영화 마지막까지 우진의 내면과 외면의 감정이 교차하는 순간을 씬과 씬 그리고 컷과 컷으로 교차시키면서 시각화 시켰다. 보는 관객들이 느끼는 불안과 강박이 그대로 우진이 느끼고 있는 그것처럼 다가오게 말이다.
영화 '세이레' 스틸. 사진=트윈플러스파트너스㈜
‘세이레’는 이런 감정의 교차점을 시각화 시키는 ‘오브제’로 ‘사과’ 그리고 ‘무화과’ 여기에 ‘금줄’을 반복적으로 들춰내면서 거짓 그리고 유혹 그 두 가지의 심리적 압박을 직유적으로 표현해 낸 듯하다. 민간 신앙과 종교적 소재가 교차되는 기묘함 역시 ‘세이레’가 품고 있는 전체적 정서와 맞닿아 있는 듯하기도 하다.
영화 '세이레' 스틸. 사진=트윈플러스파트너스㈜
결과적으로 ‘세이레’ 전체를 지배하는 정서는 ‘불안’이다. 이 불안은 ‘우진’을 연기한 ‘서현우’ 그리고 그의 전 연인 ‘세영’과 ‘세영’의 쌍둥이 자매 ‘예영’까지 1인 2역을 연기한 ‘류아벨’ 두 배우의 심리 묘사가 큰 몫을 차지한다. 별다른 대사도 없고, 별다른 감정적 표현도 없다. 단지 두 사람의 얼굴에서 읽혀지는 ‘불안’이란 감정은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하고 불길한 무엇을 자극하고 끌어 올리는 동력이 돼 관객들에게 전달된다. ‘우진’의 아내 ‘해미’를 연기한 심은우의 간결함은 오히려 그래서 더 소름 끼치게 다가온다.
영화 '세이레' 스틸. 사진=트윈플러스파트너스㈜
‘심리’를 통해 오감을 자극하고 그 오감을 마비시키는 박강 감독의 연출력이 탁월하다. 인간이 무엇을 통해 불안을 느끼고 그 불안을 통해 어떤 고통을 받으며 그 고통으로 인해 진짜 바라봐야 할 무엇이 어떤 것인지 ‘세이레’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 알 수 있게 했다. 어쩌면 우린 모두 ‘세이레’의 굴레에 사로 잡힌 강박의 노예일 수도 있을 듯하다. 개봉은 오는 24일.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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