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 공사현장 모습. (사진=뉴스토마토)
[뉴스토마토 백아란 기자] 금리 인상과 집값 약세 전환에 미분양이 늘어나면서 시행사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부동산 개발 사업 시행에 앞서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을 일으키는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해야 하지만, 부동산 PF 부실 우려가 제기되며 유동성 확보가 쉽지 않은 까닭이다. 특히 원자재 가격 인상에 따른 부담이 늘어난 상황에서 주택 매매 시장이 사상 초유의 거래 절벽을 맞으며 개발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해진 모양새다.
27일 국토교통부와 지방자치단체 등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기준 서울·인천·경기 등 수도권의 미분양 가구는 모두 7813가구로 전월(5012가구)보다 55.89%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수도권 아파트 미분양 물량은 2019년 11월(8315가구) 이래 2년 10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미분양 물량은 부동산 경기 침체가 본격화된 올해 1월(1325가구)부터 9개월째 오름세를 기록하고 있다. 수도권의 '청약불패' 신화가 빠르게 깨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부동산 시장의 미분양 그림자가 더욱 짙어진 셈이다.
아파트값 역시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이 내놓은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을 보면 이달 24일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0.28% 하락하며 22주 연속 내림세를 기록했다. 아파트값은 2012년 6월 2주차(-0.36%) 이후 10년 4개월 만에 가장 큰 낙폭이다.
부동산 시장이 빠르게 얼어붙으면서 시행사에게도 직격탄이 가해졌다. 통상 시행사는 개발 사업에 나서기 전에 브리지론을 활용해 토지를 매입하고, 사업권을 담보로 인허가·착공·분양·준공 등 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본PF 대출 등을 일으키는 형식으로 자금을 조달해왔다. 하지만 개발이나 분양에 차질이 발생할 경우, 지급불능 사태에 빠지는 등 익스포저(위험노출·exposure)는 커질 수밖에 없다.
청약홈에 따르면 지난 8월 국내 최대 디벨로퍼(부동산 개발 회사)인 엠디엠(MDM)이 분양한 '운정 푸르지오 파크라인 1단지'는 총 561가구 가운데 청약접수 건수가 176건에 그쳤다. MDM 그룹의 부동산신탁사인 한국자산신탁이 시행사로 나선 'e편한세상 시타 청라(151-1)'는 지난 4일 청약을 진행한 결과 71㎡A타입이 40가구 공급에 접수는 단 2건이었다.
지난해 신영건설이 시행을 맡아 서울 동대문구에 분양한 '답십리역 지웰에스테이트'가 7억원대 분양가임에도 평균 경쟁률 40대 1을 기록하는 등 흥행했던 것을 고려하면 시장의 열기가 빠르게 식은 셈이다.
PF 대출 잔액 추이 및 업권별 잔액 현황. (표=한국건설산업연구원)
미입주 역시 시행사의 발목을 잡는 요인이다. 지난해 강남 최고가 분양주택으로 주목받았던 서울 서초구 반포동 '더샵반포리버파크'의 경우 입주지정 기간이 지난달 26일까지로 만료됐지만, 입주율은 20가구에 그친 것으로 나왔다. 더샵반포리버파크는 분양가(3.3㎡당 7990만원)만 15억원이 넘는 고가 단지로, 시행사인 MDM은 하이엔드를 내걸며 분양에 돌입했다.
하지만 금리 인상과 부동산 시장 침체로 수분양자(입주예정자)들은 계약 해지를 검토하는 상황이다. 실제 더샵반포리버파크 입주자예정협의회 조사에 따르면 현재 분양을 받은 사람중 약 40% 이상이 계약 해지를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분양가와 금리 인상에 따른 부담으로 소유권 이전을 위한 잔금 대응이 어려워진 까닭이다.
여기에 이달 31일 자회사인 원트웬티파이브피에프브이(ONE25PFV)를 통해 공급하는 하이엔드 주거용 오피스텔 '여의도 아크로더원'까지 분양에 실패할 경우 MDM의 현금흐름은 더욱 악화할 전망이다.
여타 시행사의 상황도 밝지 않다. 올해 4월 대원이 시공하고 아시아신탁·시에스네트웍스가 시행한 강북구 수유동 '대원 칸타빌 수유팰리스'는 민간분양 216가구 중 118가구가 미분양되는 등 6개월째 분양에 난항을 겪고 있다. 이 밖에 케이에스와이개발이 시행사로 나선 경기도 '의정부역 파밀리에Ⅰ'은 지난 8월 무순위 청약 53가구 모집에 4가구만 접수를 그쳤다.
박세라 신영증권 연구원은 "레고랜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지급보증 파행 사태의 여파로 유동화 시장이 급속하게 얼어붙었다"면서 "대개 부동산 경기 악화는 미분양 증가, 시행사 현금흐름 악화, PF 부실로 이어졌다. 그러나 지금은 자금시장 경색으로 인한 PF 지급보증 사태라는 점에서 시작점이 다르고, 부동산 미분양에 따른 대금 지급 불능 사태는 아직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더 무서울 수 있다"고 평가했다.
김정주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 금리 인상과 원자재 가격 상승, 분양 시장 냉각 등으로 개발사업 여건이 급속히 악화하면서 부동산 PF 대출 부실화에 대한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며 "하반기 이후 전 금융권에서 본PF 실행이 거의 중단되면서 브리지론 부실화에 대한 우려도 큰 상태"라고 진단했다.
이어 "부동산 PF 대출이 부실화할 경우 국내 경제에 미칠 파급효과가 적지 않을 것"이라며 "부동산 PF 대출 부실 가능성에 대비한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백아란 기자 alive020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