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지(eat知)는 먹다의 ‘영어 잇(eat)’과 알리다의 뜻을 가진 ‘한자 지(知)’를 합한 것으로 ‘먹어보면 안다’, ‘알고 먹자’ 등 의미를 가진 식품 조리 과정, 맛 등을 알려주는 음식 리뷰 코너입니다. 가정간편식부터 커피, 디저트 등 다양한 음식들을 주관적 견해로 다룹니다. 신제품뿐만 아니라 차별성을 가진 식품들도 소개할 예정입니다.<편집자주>
지평주조의 한식 맡김차림 식당 푼주의 시그니처 메뉴 '주병합 타파스'. (사진=유승호 기자)
한줄평: 맡김차림의 행복. 이색적이고 다양한 한식 메뉴를 어울리는 전통주와 함께 즐길 수 있다. 전통 식기에 담긴 멋스러운 푼주의 한식을 만나면 어느새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업로드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
[뉴스토마토 유승호 기자] “우리 술과 음식, 문화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탈피하고 페어링 품질을 높여 한국 술 문화를 한 층 높이겠습니다”
지평생막걸리로 유명한 지평주조가 최근 서울 송파구 문정동에 한식 맡김차림(오마카세) 식당 푼주를 열었다. 푼주는 옛 사대부 또는 왕실에서 식음을 담던 전통 식기를 말한다. 푼주를 음식과 술,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공간으로 재해석해 하나의 고급화된 한국 술 문화 플랫폼을 제시하겠다는 게 지평주조의 기획 의도다.
지평주조의 한식 맡김차림 식당 푼주 내부 모습. 모던한 인테리어가 특징이다. (사진=유승호 기자)
지난 24일 오후 푼주를 찾았다. 푼주는 서울 송파구 문정동에 있는 지평주조 본사 건물 1층에 자리했다. 식당은 검정색, 흰색, 회색 등 모던한 색으로 꾸며졌다. 특히 매장 이름부터 전통 식기를 의미하는 만큼 한국의 멋이 강하게 느껴졌다. 리움스토어와 협업해 전통공예작가 전상근의 수저, 잔, 그릇 등을 식기로 활용했다는 게 지평주조의 설명이다.
푼주는 한식 맡김차림을 표방한다. 맡김차림은 메뉴의 종류, 요리방식을 가게의 주방장(셰프)에게 모두 맡기는 것을 말한다. 흔히 한국 외식업에서는 오마카세라는 일본어로 주로 쓰인다.
지평주조 관계자는 “푼주가 한식당인 만큼 ‘오마카세’라는 일본어 대신 순수 우리말인 ‘맡김차림’을 쓴다”면서 “최고의 제철 식재료로 만든 셰프의 메뉴를 존중하고 신뢰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말했다.
푼주의 오너 셰프는 김세진 셰프가 맡았다. 김 셰프는 2019년 한국외식창업개발원 지정 대한민국요리명인 제33호다. 육수분야에서 최연소 명인에 이름을 올렸다. 이어 2019년 11월 대한민국 국제요리 경영대회 단체전 찬요리부분 통일부장관상, 더운요리부분 금메달을 수상했다. 푼주 오너 셰프로 합류하기 직전에는 서울 이태원 경리단길 레스토랑 초승달 대표이사 겸 셰프로 일했다.
푼주의 식전 샐러드인 양배추와 푼주에서 직접 만든 보리된장. (사진=유승호 기자)
푼주의 한식 맡김차림은 총 9차례에 걸쳐 이뤄진다. 9차례라고 해서 메뉴가 9가지는 아니다. 한 번에 다양한 음식 메뉴가 동시에 나오기 때문이다. 우선 식전 샐러드로 생 양배추와 푼주에서 직접 만든 보리된장이 나온다. 보리된장을 생양배추 위에 올려 먹는 메뉴다. 된장이기 때문에 굉장히 짤 것 같아 아주 조금 올려서 먹었다. 예상은 빗나갔다. 전혀 짜지 않았다. 이어 지평 생쌀막걸리로 만든 바게트와 서리태 콩을 이용한 버터가 함께 제공됐다. 한식인 만큼 바게트는 의외의 메뉴였다.
푼주 오너 셰프인 김세진 셰프가 프리미엄 막걸리인 푼주 부의주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유승호 기자)
이날 김 셰프는 이들 메뉴와 어울리는 주류로 부의주를 추천했다. 부의주는 푼주와 이태원 초승달에서만 한정판매하는 막걸리다. 부의주는 동동주로 많이 알려져있는데 발효 시 떠오르는 찹쌀의 모습이 떠있는 개미의 모습과 같다고 해서 붙여졌다. 푼주 부의주는 알코올 도수 8.5도다. 부드러움과 잔잔한 단맛으로 인해 식전주로 잘 어울린다.
이어 계란찜이 나왔다. 계란찜의 모습은 굉장히 독특했다. 계란 껍질 안에 계란찜이 담겼다. 특히 접시에 소금을 뿌렸고 그 위에 계란이 놓였다. 이를 표현하기 위해 전통공예 작가인 전 작가와 함께 자체제작했다는 게 푼주의 설명이다. 계란찜의 맛은 부드러웠다. 크림과 우유를 활용한 덕이다. 여기에 김장아찌, 완도산 전복, 허브 처빌로 인해 기존 계란찜의 식감이 아닌 다양한 식감이 느껴졌다.
계란 껍질 안에 담긴 계란찜. 김장아찌, 완도산 전복, 허브 처빌이 함께 담겼다. (사진=유승호 기자)
다음으로 푼주의 시그니처 메뉴가 나왔다. 전 작가의 4단 주병합을 활용한 주병합 타파스다. 타파스는 스페인에서 식사 전에 술과 곁들여 간단히 먹는 소량의 한입거리 음식을 말한다. 푼주의 주병합 타파스는 스페인 요리를 한국식으로 재해석했다. 특히 메뉴가 드러나기 전에는 술병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지평주조 관계자는 “주병합 타파스는 김 셰프가 기획한 것으로 겉으로 보았을 때는 술병이지만 이를 나누면 정갈한 타파스가 드러난다”고 말했다.
푼주의 시그니처 메뉴인 주병합 타파스. 겉으로 보기엔 술병 모양을 하고 있지만 이를 나누면 총 4가지의 메뉴가 등장한다. (사진=유승호 기자)
술병을 나누자 한입에 먹을 수 있는 형태의 메뉴가 그릇에 담겨있었다. 단맛과 신맛이 공존하는 한국식 주전부리 파인애플칩을 시작으로 맛간장에 재운 아귀간 무스를 김부각에 넣어 만든 요리, 문어, 토마토와 당근 퓨레가 어우러진 문어타파스, 얇게 채썰은 참치를 양념과 감태에 싸먹는 참치육회 타파스 등이 담겼다. 특히 참치육회 타파스는 소고기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한식 음식 특성상 재료가 무겁다는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참치를 썼다는 게 김 셰프의 설명이다.
이어 흰살 생선 도미, 숙성회, 잿방어와 오이 고수 장아찌, 찐 가리비, 제주산 딱새우, 우니(성게알), 꼬시래기(해초류) 등이 나왔다. 찐 가리비, 제주산 딱새우, 우니(성게알), 꼬시래기는 삼합처럼 숟가락에 올려 한 번에 먹어야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향과 맛이 좋아 입에 머금고 차마 삼키기 아까워 탄식한다는 의미가 담긴 푼주의 석탄주. 산 아래에 깔린 흰 구름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산맥이 그려진 전용잔에 담긴다. (사진=유승호 기자)
김 셰프는 이들과 어울리는 주류로 푼주 석탄주를 추천했다. 석탄주는 향과 맛이 좋아 입에 머금고 차마 삼키기 아까워 탄식한다는 의미가 담겼다. 은은한 단맛과 산미, 바디감과 청량감이 있고 알코올 도수가 12도로 일반 막걸리보다 2배 이상 높아 식사 중에 입안을 정리하기 좋다. 특히 석탄주는 산맥이 그려진 전용 잔에 담겼다. 산 아래에 깔린 흰 구름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다.
그 다음 메뉴로는 새우전이 나왔다. 새우전 옆에는 샐러드가 자리했다. 이태리 피에몬테 지방의 샐러드를 한식으로 재구성한 메뉴다. 특히 시트러스한 산미에 이어 할라피뇨를 넣어 매콤한 맛을 살려 자칫 느끼할 수 있는 새우전의 맛을 보완했다.
새우전을 먹고 난 뒤 메인요리인 보쌈과 해장국, 밥이 함께 등장했다. 보쌈의 식감은 촉촉하고 부드러웠다. 하루 동안 염장과 수비드한 삼겹살을 사용한 덕이다. 특히 해장국의 맛이 대단했다. 어느 정도 술을 마신 뒤 먹는 해장국은 시원했다.
김 셰프는 “파와 고송버섯(표고버섯과 송이버섯을 개종한 종자)을 넣어 만들었으며 보쌈으로 인한 무거운 느낌을 와해시키고자 선보이게 됐다”면서 “무가 국에 쓰이면 특유의 단 맛 때문에 호불호가 있을 수 있어 밥에 무를 넣어 무밥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푼주의 메인요리 보쌈. 하루 동안 염장과 수비드한 삼겹살을 사용해 식감이 촉촉하고 부드럽다. (사진=유승호 기자)
마지막 9회차는 디저트다. 오렌지와 레몬을 이용한 셔벗이 나왔다. 셔벗 위에는 오디로 만든 잼(콩포트)이 곁들여졌다. 산미와 단맛이 강했다. 그만큼 깔끔했다. 그동안 먹었던 음식의 맛이 한꺼번에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지평주조는 한식 맡김차림 식당 푼주를 한국 음식, 더 나아가 문화와 예술이 함께하는 술 문화 플랫폼으로 성장시키겠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향후 다양한 아티스트를 초대함으로써 푼주를 음식·문화예술 공간으로 확장하겠다는 방침이다.
지평주조 관계자는 “한국의 맛과 멋을 공유할 수 있는 다양한 파트너와 협업할 것”이라면서 “이를 통해 숨어있던 한국 술을 찾아 재해석하고 소비자들에게 우리 술의 다양한 변주를 경험하게 함으로써 한국 술의 새로운 100년을 개척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승호 기자 peter@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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