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이쯤 되면 ‘넷플릭스 공무원’이란 타이틀이 결코 ‘오버’가 아니게 된다. 국내 콘텐츠 첫 번째로 ‘넷플릭스’ 공개를 선언했던 영화 ‘사냥의 시간’ 그리고 최근 공개된 영화 ‘야차’. 그리고 무엇보다 최고의 인기는 ‘넷플릭스 역사상 최고 흥행작’ 타이틀을 여전히 보유 중인 ‘오징어 게임’까지. 국내에서 넷플릭스가 서비스되면서 웬만한 굵직한 작품은 모두 그를 통해 대중들에게 전달된 셈이다. 그러니 그를 두고 ‘넷플릭스 공무원’이라고 부르는 것도 무리가 아닌 셈이다. 배우 박해수 얘기다. 이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그리고 넷플릭스 영화가 기획된다고 하면 ‘박해수’가 출연하는 가 아닌가 정도는 한 번쯤 눈 여겨 봐도 될만하다. 그가 출연하는가 아닌가에 따라 그 작품이 정말 재미있는지, 아니면 볼만한 수준인지 정도는 판가름 날 듯 하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은 박해수가 극심한 호불호 평가를 예상하면서도 출연을 결정한 작품이란 점에서 충분히 믿음직해 보인다. 그는 이 작품에서 가장 남성적이고 또 호전적인 인물 ‘베를린’을 연기했다. 북한 출신으로 삶의 거의 대부분을 북한 강제 수용소에서 산 인물로 설정돼 있다. 극중 카리스마는 어마어마하다. 왠지 박해수와 너무 잘 어울린다. 참고로 실제 박해수는 여러 작품 속 거친 남성미의 모습과는 상당히 다르다.
배우 박해수. 사진=넷플릭스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은 지금의 넷플릭스 위상을 만들어 준 것이나 다름 없는 동명의 스페인 원작 시리즈의 한국판 리메이크 작품이다. 너무도 유명한 작품이라 글로벌 인기에서도 역대 ‘넷플릭스’ TOP3 안에 들 정도다. 사실 이런 인기는 리메이크 작품에는 양날의 검이나 다름 없다. 원작 인기에 힘입어 그 성공을 거둘 가능성이 있는 반면 원작과 비교돼 큰 실패를 맛볼 가능성도 절반이다.
“저뿐만 아니라 모든 배우가 정확하게 그 지점을 우려했었어요. 출연에 부담이 정말 많았죠. 우선 저도 출연 전에 스페인 원작을 봤고 정말 좋아했던 팬이었죠. 그 가운데에서도 실제로 ‘베를린’을 정말 많이 좋아했는데 제가 연기할 줄은 몰랐어요(웃음). 워낙 독보적인 캐릭터인데 국내 버전을 보니 제가 충분히 다르게 갖고 갈 수 있는 지점이 보이더라고요. 원작과 달리 많이 바뀐 서사도 흥미로웠어요. 해보자 싶었죠.”
박해수는 넷플릭스 영화 ‘사냥의 시간’에서도 빌런, ‘오징어 게임’에서도 끝까지 살아 남기 위해 친한 형의 믿음을 저버리려 하는 동생을 연기했다. 이번에는 원작을 본 시청자들은 잘 알겠지만 8명의 강도단을 이끌고 점령한 조폐국에서 실질적인 리더 역을 하는 ‘베를린’을 맡았다. 사실상 악역에 가깝다. 물론 북한 강제 수용소 출신이란 점이 언급되면서 파트2에서 이어질 개인적 사연이 드러날 듯하지만 말이다.
배우 박해수. 사진=넷플릭스
“연기나 흉내를 내지 않으려 했어요. 그냥 있는 그대로 ‘북한 수용소에서 나온 사람’을 보여주자 싶었죠. 제가 찾아본 자료에 따르면 실제로는 극중 베를린보다 더 극단적 상황에 있었던 분들이 부지기수라고 하더라고요. 그럼에도 너무 나가는 것보단 이 정도 선에서 경건하게 표현하려 노력했어요. ‘베를린’이란 인물이 가상의 세계 속 상상의 인물이지만 현실성 있게 보였으면 했어요. 실제 제가 본 북한 수용소 영상 속 사람들을 많이 기억해 투영시키려 노력했죠.”
‘종이의 집’ 원작을 보지 않은 시청자라면 사실 극중 ‘베를린’의 행동이 이해되기 힘들 듯하다. 강도단 8명이 조폐국 밖에서 모든 것을 진두지휘하는 교수의 명령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여도 4조원이란 돈을 훔쳐 무사히 나올 수 있단 것을 장담하기 힘들다. 하지만 그런 사건 속에서 베를린은 조폐국 안에서 자신을 포함한 8명의 강도단 그리고 수 많은 조폐국 직원들을 인질로 삼고 있으면서 모두를 분열시키고 또 그 분열을 이용해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을 보인다.
“베를린의 출신을 생각해 봤죠. 북한 강제 노동 수용소 출신이잖아요. 그 곳에서 거의 한 평생을 살아온 인물이고. 그 안에서 제왕처럼 군림했고. 아마 누구보다 사람의 감정을 다스리는 법에 능통했지 않을까 싶었죠. 어떤 목적을 달성하려면 화합보단 공포를 조성해 군림하는 방식이 더 효과적이라 생각했을 거에요. 극중 설정이 25년을 강제 수용소에 있었단 건데.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이런 방식을 배우지 않았을까 싶었죠.”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 스틸. 사진=넷플릭스
외적인 변화에도 ‘베를린’의 모습은 압도적이고 카리스마가 넘쳤다. 선 굵은 남성미를 느끼게 하는 박해수의 얼굴은 베를린이 되면서 더욱 더 거칠고 야성적인 느낌이 물씬 풍겼다. 일단 피부톤이 상당히 어둡고 또 거친 느낌을 뿜어냈다. 여기에 북한 특유의 사투리가 미묘하게 섞인 어투가 인상적이었다. 통일 직전 대한민국이 배경이기에 북한 출신이지만 대한민국에도 올 수 있단 설정이 들어가면서 미묘한 어투가 만들어진 듯했다.
“우선 피부톤을 상당히 어둡게 보이려 했어요. 수용소에서 거의 평생을 산 사람이잖아요. 날카롭고 강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리고 북한말은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 캐스팅된 이후 평양이 고향이신 선생님을 만났어요. 그 선생님이 녹음해주신 대사를 거의 계속 들었어요. 그 전에는 평양에서 사신 일상과 삶에 대한 얘기도 많이 들었는데 그게 진짜 도움이 많이 됐었어요. 삶을 알게 되니 말투가 좀 더 자연스럽게 나오더라고요.”
박해수의 ‘베를린’은 극중 전종서의 ‘도쿄’와 사사건건 부딪친다. 베를린은 스스로가 만들어 낸 긴장과 공포도 있었지만 도쿄와의 충돌로 인해 만들어 진 공포와 긴장감도 수습해야 한다. 조폐국 밖에서 모든 것을 진두지휘하는 교수를 제외하면 베를린은 조폐국 안에서 도쿄와 가장 많이 부딪치고 상대한다. 그리고 두 사람은 같은 북한 출신이지만 서로 목표와 지향점이 전혀 달랐다. 이런 전종서와의 연기 호흡은 어느 정도였는지 궁금했다.
배우 박해수. 사진=넷플릭스
“우선 강도단 멤버들하고 7개월 정도 같이 작업했어요. 그냥 한 식구였죠. 전종서와의 첫 만남(웃음) 진짜 강렬했죠. 전종서란 배우가 갖고 있는 깨끗한 카리스마가 있어요. 그게 확 오더라고요. 순수한 에너지도 굉장히 넘치고. 제가 연극적인 요소의 날 것들을 준비해 가면 전종서는 더 많이 준비를 해왔었던 기억이 나요. 그렇게 준비를 해오니 긴장감을 만들어야 하는 장면에서 배우로서 카타르시스까지 느껴질 정도였죠. 현장에서 모든 흐름은 전부 전종서가 주도했어요(웃음)”
스페인 원작이고 글로벌 인기도 대단한 ‘종이의 집’이다. 하지만 다른 나라에서 리메이크는 이번이 최초다. 때문에 국내 사정에 맞게 각색이 됐고, 각색 과정에서 분단된 국가의 상황이 적용되면서 통일 대한민국이란 설정이 더해졌다. 원작을 좋아하는 전 세계 글로벌 팬들이 한국판 ‘종이의 집’을 어떻게 바라봤으면 좋을지 궁금했다. 호불호를 예상하면서도 이 작품에 대한 애정으로 출연을 결정한 박해수의 마음은 이랬다.
배우 박해수. 사진=넷플릭스
“그냥 한국의 ‘종이의 집’으로 바라봐주시면 좋지 않을까 싶어요. 한국 사람들만이 갖고 있는 정서와 한을 어떻게 풀어냈고. 또 그 안에서 어떻게 화합하려 하는지를 봐주시면 될 것 같아요. 스페인 원작을 이미 보신 시청자들들에겐 캐릭터가 가진 서로 다른 매력을 비교해서 보시는 재미도 있을 듯하고요. 앞으로 이어질 파트2를 기대해 주세요. 파트1에서 궁금해 하셨던 부분 그리고 아쉬워하셨던 부분이 파트2에서 모두 해결될 겁니다(웃음). 살짝 힌트를 드리자면 대한민국만의 특수성이 드러날 겁니다(웃음)”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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