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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익도의 밴드유랑)250, ‘뽕’의 도원경으로
신중현·이중산 등 거장 참여 1집 화제
“뽕의 정수는 슬프기도 한데 아련한 것”
2022-05-10 17:08:59 2022-05-11 22:50:04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대중음악신의 ‘찬란한 광휘’를 위해 한결같이 앨범을 만들고, 공연을 하고, 구슬땀을 흘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TV, 차트를 가득 메우는 음악 포화에 그들은 묻혀지고, 사라진다. ‘죽어버린 밴드의 시대’라는 한 록 밴드 보컬의 넋두리처럼, 오늘날 한국 음악계는 실험성과 다양성이 소멸해 버린 지 오래다. ‘권익도의 밴드유랑’ 코너에서는 이런 슬픈 상황에서도 ‘밝게 빛나는’ 뮤지션들을 유랑자의 마음으로 산책하듯 살펴본다. (편집자 주)
 
2일 서울 용산구 삼각지역 인근 작업실에서 만난 250(이오공)은 빨간 단색의 상의와 체크무늬 바지를 입고 있었다. "어르신들의 신년 메시지나 엉터리 그림판, 생선장수 목소리부터 케이팝 아이돌 음악의 감정적 등고선에서도 '뽕'을 볼 수 있다"고 했다. 사진=BANA
 
세상 어딘가 ‘뽕’의 도원경(桃源境)이 있다.
 
2일 서울 용산구 삼각지역 인근, 삐뚤빼뚤 한글 간판이 내걸린 노점포들을 지나자, DJ 겸 프로듀서 ‘250’(이오공·본명 이호형·40)의 작업 공간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영화 ‘매트릭스’에 떨어진 기분이랄까요. 각성을 하면 세상이 다르게 보이는 그런 거요.”
 
전국 고속도로 휴게소와 춤 연수원, 동묘 중고 악기상까지 찾아다니며(250 유튜브 채널 다큐멘터리 ‘뽕을 찾아서’) 뽕의 근원을 탐구해온 그다.
 
1000곡씩 모아놓은 ‘어르신들 맞춤형’ 고속도로용 CD와 USB부터 ‘246 잔발’ ‘135 쿵잔발’ 같은 정체 모를 오묘한 몸짓들을 탐험해가며 “어르신들의 신(Scene)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음”을 느꼈다고.
 
그가 지난 3월 발표한 신보 ‘뽕’의 열풍이 지금 심상치 않다. 뽕짝과 힙합,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이 난장을 이루는 역작이다. 고속도로 메들리나 카바레풍 트로트가 현대적인 비트, 선율과 기묘한 화학작용을 일으키며 전통과 현대를 아우른다. K팝 아이돌 음반만 즐비한 국내 주요 차트 30위 내 당당히 이름을 올리더니, 최근에는 영국 라디오 방송국과 매체에서까지 반응이 뜨겁다. 2000장 한정으로 찍은 CD는 발매 일주일 만에 동났다.
 
그는 “제가 만든 음악에 대한 반응을 이렇게 직접적으로 실감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DJ겸 프로듀서 250(이오공) '춤을 추어요' 커버. 사진=BANA
 
250은 2013년부터 ‘케이크샵’ 같은 이태원 전자음악 클럽에서 DJ로 활동했다. 아이돌그룹 NCT 127과 IZTY, 가수 보아, 래퍼 이센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음악들을 작곡한 다채로운 이력의 보유자이기도 하다. 뽕짝에 빠진 것은 8년 전 소속사 ‘바나’ 측의 콘셉트 앨범 제안 때문. 그러나 이 깊고 넓은 미지의 세계를 탐구하다 별안간 급속도로 빨려들어 갔다. 
 
“이태원 DJ 시절 스크릴렉스 영향으로 깔끔하게 빵빵 터지는 세련된 음악들이 주를 이루던 때였지만, 저는 반대로 브라질 전자음악 장르 ‘파벨라 펑크’ 같은 음악에서 다듬어지지 않은 사운드의 매력을 느꼈습니다. 어떻게 보면 ‘노점 같은 뽕짝’을 찾게 된 기원은 바로 거기 있었던 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2014년 선공개로 낸 싱글 ‘이창’은 앨범 전체의 밑그림이 된 곡이다. 송대관 ‘네박자’의 ‘쿵짝쿵짝 쿵짜작 쿵짝’ 식으로 리듬을 받치고, 이박사 목소리 ‘좋아좋아좋아’를 샘플링해 그 음높이를 기반으로 현대적인 코드 진행을 더했다. “이박사님 목소리는 뽕짝계의 미원이죠. 뽕과 비(非)뽕 사이를 오가며 저만의 뽕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왠지 모르게 슬프지만, 결국 춤을 추도록 만드는 오묘한…. 해외 음악 디깅도 열심히 해봤지만, 한국이야말로 무궁무진한 음악 자원을 캘 수 있는 곳 아닐까 해요.”
 
이박사의 키보디스트 김수일이 보컬로 나선 첫 곡 ‘모든 것이 꿈이었네’부터 예스럽고 구성진 뽕의 대향연이 펼쳐진다. 설거지 소리 같은 노이즈들과 ‘내가 가수가 아니니까’ 하는 너스레가 뒤엉키는 곡의 말미까지, 날 것 그대로의 긴장감이 손에 진땀을 쥐게 한다.
 
DJ 겸 프로듀서 250(이오공). 사진=BANA
 
타이틀 곡 ‘로얄블루’는 90년대풍 힙합 비트와 미디 음악 반주, 캬바레풍 블루스가 겹쳐져 묘한 느낌을 준다. 40초부터 끈덕지고 구성진 국내 재즈계 1.5세대 이정식 씨의 색소폰 연주가 음의 금빛 지류들을 악곡 위에 펼쳐댄다.
 
수록곡 ‘나는 너를 사랑해’는 신중현과 엽전들 1집(1973년)의 동명 수록곡을 샘플링한 노래다. 신중현의 귀기 어린 목소리를 기반으로 멜로디를 짜고 현대적인 힙합풍 비트와 공간감 큰 레코딩 기법을 더해 장송곡처럼 느껴지는 원곡의 음산하고 텅 빈 느낌을 배가했다.
 
조용필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비롯해 김국환 ‘타타타’, 최진희 ‘사랑의 미로’ 등을 작사한 김희갑 작곡가의 파트너인 양인자 씨는 마지막 곡 ‘휘날레’에, 유튜브로 발표한 보너스 곡 ‘춤을 추어요’에는 트로트 전자오르간 대가 나운도 씨와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에서 활약한 전설적 기타리스트 이중산 씨가 뭉쳤다. 7분13초짜리 곡에서 4분 이상이 넘어가는 기타 솔로가 압권이다.
 
“‘춤을 추어요’는 아무도 남아있지 않은 80년대 디스코장이나 무도장을 상상하며 써봤습니다. 울림이 큰 공간에서, 그냥 기타를 때린다는 느낌으로 보면 될까요. 하루 일과를 마치고 자기 전에 들어보시면 좋을 것입니다.”
 
이번 음원 마스터링을 프랑스 일렉트로닉 듀오 '다프트 펑크'의 앨범 마스터링에 참여했던 CHAB 측에 맡겼다.‘음원 전체의 무드’를 위해서다. (실물 한정판 CD 마스터링은 일본 엔지니어 고테츠 도루) “부드럽게 감싸면서도 스케일은 키워주는 무드라고 해야하나요. 고급스러운 기름칠처럼 전자음악 요소는 유지하되 너무 요란스러운 음악이 되지 않는 방향을 원했는데 맞게 나온 것 같아요.” 
 
지난 8년 간 ‘뽕’을 탐구하고 매달린(실제 앨범 작업기간 4년) 그는 “뽕의 정수는 슬프기도 한데 아련한 것”으로 정리했다. 
 
“제주도와 안면도에 칩거하며 ‘뽕 캠프’도 열어봤지만, 결국 저만의 뽕은 제 안에 쌓인 축적의 산물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앨범 작업 기간 제일 오래 있었던 곳은 제 작업실 컴퓨터 앞이었어요. 궁극적으로는 ‘혼자 있는 시간’으로 만든 제 음악으로 ‘혼자 있는 쓸쓸함’을 덜어가셨으면 합니다. 가볍게 틀고 가볍게 즐기고 가볍게 슬퍼할 수 있는.”
 
“...‘바라보고’라는 곡은 예외입니다. 같이 들을 때 더 좋을 곡이거든요. 공연장에서 요란하게 난리치게 될, 뽕의 날을 기대해주십쇼.”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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