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게이션)‘배니싱: 미제사건’, 이래서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다
스코틀랜드 출신 작가 중국 배경 소설 원작, ‘사라진’ 사람들과 충격적 사건
프랑스 출신 감독·스태프+할리우드 여배우, 낯선 이질감-떨어지는 ‘공감대’
2022-03-24 01:01:01 2022-03-24 14:13:24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배니싱: 미제사건은 굉장히 낯설다. 좋게 포장하면 그렇다. 좀 더 솔직하게 접근하면 이질감이다. 그리고 여기서 한 꺼풀 더 벗기면 이상하다정도가 적당할 듯하다. 어떤 시선으로 그리고 어떤 목적으로 어떻게 바라본다 해도 이 영화가 일반적이지 않을 것이란 점에선 동의할 수 밖에 없다. 영화를 보기 전 관객들에게 제시할 수 있는 근거는 배니싱: 미제사건은 사실상 한국영화가 아닌 프랑스 영화에 가깝다. 연출을 맡은 감독이 프랑스인이다. 그리고 여러 스태프도 마찬가지다. 제작 자본 국적도 프랑스다. 주연 여배우는 우크라이나 태생의 할리우드 여배우 올가 쿠릴렌코다. 프랑스에 능통했다. 실질적으로 프랑스의 시선으로 바라본 대한민국 정서에 대한 해석이다. 한국인에게 유럽 전통 고정관념을 전후 맥락 없이 소개한다면 어떤 느낌일까. ‘배니싱: 미제사건이 딱 그렇다. 영화 자체 완성도 측면보단 공감과 공유의 지점에서 배려가 부족한 느낌이다.
 
 
 
영화는 범죄 스릴러 장르다. 그런데 문법 자체가 전혀 다르다. 국내 상업 영화에선 결론을 밝혀내기 위한 과정의 짜릿함과 긴장감을 즐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시작부터 그 결과를 공개해 버린다. 시작부터 낯설다.
 
개울가에 널 부러진 낡은 트렁크.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시체. 형사 진호(유연석)는 심하게 훼손된 이 사체의 신원을 밝히기 위해 노력하지만 지문이 나오지 않는다. 이 문제를 해결해 줄 인물로 프랑스 국적 법의학자 알리스(올가 쿠릴렌코)가 등장한다. 세미나 참석차 마침 한국에 방문해 있었다. 알리스는 자신만의 기술로 훼손된 사체의 지문을 복원시킨다.
 
영화 '배니싱: 미제사건' 스틸. 사진=(주)제이앤씨미디어그룹
 
하지만 여러 의문이 남는다. 사체에 남은 여러 흔적이 의심스럽다. 특히 사체의 흔치 않은 혈액형도 걸림돌이다. 하지만 이미 관객들은 그 해답을 알고 있다. 영화 시작부터 던져진 장기밀매조직의 실체. 더욱이 알리스의 국내 통역사 미숙(예지원)까지 의심스럽다. 그의 남편은 의사다. 그리고 그 남편도 장기밀매조직과 연관돼 있다. 끔찍한 짓을 서슴지 않는 장기밀매조직 그리고 진호와 알리스 여기에 미숙까지. 사건의 흐름은 예상 가능하지만 분명 국내 상업 장르 영화 문법과는 전혀 다른 흐름으로 이 얘기를 이끌어 간다. 알고 있고 그럴 것이라 확신이 들고 그래서 그렇게 얘기가 전개되지만 거기까지 가는 방식이 분명 한 번도 본 적 없는 낯선 방식이다.
 
영화 '배니싱: 미제사건' 스틸. 사진=(주)제이앤씨미디어그룹
 
이 영화는 스코틀랜드 출신 작가 피터 메이가 쓴 중국 배경 스릴러 소설 더 킬링 룸이 원작이다. 원작은 앞선 설명처럼 중국이 배경이다. 하지만 기획과 제작 단계에서 국내로 촬영이 변경됐다. 때문에 각본 흐름도 꽤 많은 부분이 변경 수정됐을 듯하다. 원작 자체의 어떤 느낌보단 한국 상황에 맞는 갑작스런 각색 변화 느낌이 강하다.
 
제목 배니싱의 뜻도 궁금하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이란 사전적 의미. 극중 국내에서 완벽하게 증발된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얘기. 우리들에겐 조선족 혹은 동남아 출신 불법 체류자들. 불법 체류 외국인 노동자 문제가 어디 우리만의 현실이겠나. 그래서 이 영화는 딱히 한국적 특유의 상황이라고 전할 만한 구석은 없다. 그런데도 이 얘기가 굳이 (지금) 한국에서 발생한 특별한 얘기인 것처럼 포장이 돼 있다. 공감의 영역에서 오해가 쌓일 만한 지점이다. 상업 영화의 제한적 시선으로 바라본다고 해도 이미 식상한 사건이다.
 
영화 '배니싱: 미제사건' 스틸. 사진=(주)제이앤씨미디어그룹
 
사실 배니싱: 미제사건이 가장 안타까운 지점은 과정 해결의 고민 없는 돌파 방식이다. 프랑스인 감독과 스태프들이 절반을 차지한 영화다. 영화 자체 흐름 결정권이 프랑스인 시선에 있었기에 이른바 결이 다른 무의식적 화이트 워싱주입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훼손된 시체 지문 복원 기술과 사건 전체 및 이 얘기 전체 흐름의 주도된 역할이 백인 여성에게서 시작될 수 밖에 없단 식의 전체 구성이 너무도 도식적이고 정형적이다. 이런 흐름 얘기는 이제 상업 영화 시장에선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는 옛 것 일 뿐이다.
 
가장 납득하기 힘든 점은 주연 여배우 올가 쿠릴렌코 역할. 할리우드 여배우가 한국 남자 배우가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 상대역으로 등장하니 분명 화제성은 충분하다. 그의 전작 프로필만 봐도 묵직한 무게감은 여느 여배우들과도 존재감 자체가 다르다. 하지만 배니싱: 미제사건속 올가 쿠릴렌코 역할은 도무지 포인트를 어디에 두고 감상해야 할지 의아스러울 정도다. 과거 트라우마에 허덕이는 인물이라 하지만 그가 왜 무엇 때문에 어떤 이유로 스스로 무엇을 근거로 판단해 해당 사건에 뛰어들고 이 얘기 자체에 몸을 싣게 됐는지 관객 조차 공유하기 불가능할 듯하다.
 
영화 '배니싱: 미제사건' 스틸. 사진=(주)제이앤씨미디어그룹
 
이런 점이 더해지고 뒤섞이니 다른 장면은 아연실색하게 만들 정도다. 대한민국 한복판에서 저격용 라이플을 이용해 검거 중인 범인과 경찰을 총격하는 장면, 경찰과 범인 일당 중 한 명이 추격 중 총을 쏘고 또 쏘는 장면은 사실 좀 너무했다싶을 정도로 완성도 측면이 떨어진다. 이 모든 걸 좋게 표현하면 낯설고, 날것 그대로 전한다면 이상하다고 말하게 된다.
 
그래서 따지고 들어가니 인물들 모두가 이상할 정도다. 주인공 진호와 알리스부터 통역사 미숙 그리고 그의 남편 여기에 각각의 조연들까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에 출연해 화제를 모았던 인도 출신의 배우 아누팜 트리파티의 얼굴이 오히려 가장 반가울 정도다.
 
영화 '배니싱: 미제사건' 스틸. 사진=(주)제이앤씨미디어그룹
 
배니싱: 미제사건’, 전체적으로 원작의 틀 안에서 헤어나지 못한 시선이다. 원작이 있다고 해도 각색과 변주의 영역에서 영화는 자유로울 수 있다. 무엇보다 한국을 배경으로 했다면 한국에 대한 이해가 우선돼야 한다. 영화 속 컷과 컷의 연결 흐름 하나하나에서 감독의 역량 부족이라기 보단 자신의 고집이 만든 이질감과 낯선 시선만 무던하게 남아 전달돼 온다. 좋은 얘기와 좋은 소재 좋은 배우라고 해도 영화가 감독의 예술이란 점은 이런 방식이 도출되기 때문일 듯하다. 3 30일 개봉.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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