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괴물’이 나오지 않는 기에르모 델 토로 영화. 낯설다. 생각만 해도 맨송맨송하다. 그런데 실제 체험은 반대로 더 강력해졌다. 델 토로 필모그래피 사상 최고의 ‘크리처’ 영화가 탄생됐다. 이건 장담할 수 있다. 문제는 이 영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괴물’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런데 ‘괴물’이 나온다. ‘나오지 않는데, 나온다’란 오류의 문장처럼 이 영화는 삶의 굴레 속 웅크리고 자리했던 ‘욕망의 크리처’를 끄집어 낸다. 그 어떤 델 토로 필모그래피보다 파괴적이고 직설적이며 또 몽환적이고 사실적이다. 그리고 ‘나이트메어 앨리’는 제목 그대로 ‘악몽의 뒷골목’ 그 자체를 고스란히 보여 준 고전적 필름 시대 비주얼을 담아낸 듯한 ‘네오 누아르’ 아우라를 가장 완벽하게 재현해 낸 디지털시대 빼어남으로 기억되기에 충분할 정도다.
영화는 오롯이 한 남자의 여정이다. 이 남자 여정은 제목 그대로 출구 없는 뒷골목에 갇힌 진짜 악몽처럼 음습하고 축축하다. 곰팡이 냄새가 스크린을 뚫고 베어 나와 코를 찌르는 듯하다. 그 정도로 불안해 보이고 또 실제로 불안하다. 하지만 그는 그 불안 위에서 줄타기를 하는 듯 아슬아슬한 놀음을 즐긴다. 자신의 마지막이 어디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듯하다. 당연하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마지막을 이미 봤다. ‘나이트메어 앨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극단적으로 치밀하게 직조된 델 토로의 ‘괴물 같은 악몽 설계도’라고 보면 될 듯하다.
영화 '나이트메어 앨리' 스틸.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나이트메어 앨리’는 ‘스탠’(브래들리 쿠퍼)이란 한 남자의 얘기로 시작해서 끝을 맺는다. 자신이 살던 집에 불을 지르고 떠나는 스탠. 자신의 모든 흔적을 지워버리고 싶은 느낌이다. 허허벌판 덩그러니 놓인 집이 불탄다. 그리고 한 남자가 떠난다. 이제 스탠이란 남자는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존재가 된 듯하다. 그는 자신이 새롭게 존재할 수 있는 곳을 찾는다. 그 과정에서 우연히 한 서커스단에 합류한다. 기상천외한 쇼가 잔뜩 머문 서커스단은 스탠에겐 자신을 숨기고 ‘새로운 스탠’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최적의 장소다. 특히 그의 눈을 사로 잡은 것은 괴물처럼 길러지는 서커스단 한 남자다. 그는 괴물이면서 괴물은 아닌 남자다. 스탠을 붙잡고 외치는 그의 절규가 결국 스탠의 삶 굴레를 정해 버린 예언이었는지는 어느 누구도 몰랐을 것이다.
영화 '나이트메어 앨리' 스틸.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스탠은 그 괴물 같은 남자의 외침과 예언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사실 그것보단 처음부터 시작된 자신을 지우고 다른 자신으로 거듭나기 위한 삶을 위해 서커스단에서 갖가지 기술을 배우기 시작한다. 특히 서커스단 독심술가 지나(토니 콜렛 분)와 그의 남편 피트(데이비드 스트라탄)를 도와 사람들을 속이는 거짓 독심술을 배운다. 그리고 지나와 내연 관계를 유지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서커스단 전기쇼 담당 몰리(루니 마라)와 사랑에 빠진다. 그는 지나에게서 기술을 훔치고 몰리에게서 마음을 훔쳐 서커스단을 벗어난다. 이제 그는 지나의 기술 그리고 몰리의 마음을 이용해 도심의 화려한 호텔에서 독심술 쇼를 펼치는 스타가 된다. 그는 자신의 심연을 숨기고 다른 사람의 심연을 들여다 보는 듯한 거짓에 점차 중독되고 녹아 들어간다. 이 과정은 스탠과 몰리의 관계마저 흔들어 놓는다. 그리고 그의 흔들리는 마음은 다른 누군가가 들어올만한 가능성의 틈을 제공하는 단초가 된다. 심리학 박사 릴리스(케이트 블란쳇)는 스탠의 쇼를 보고 그에게 위험한 제안을 한다. 스탠은 또 다시 흔들린다. 그는 이미 예전의 자신을 지워버리고 새로운 자신을 위해 거짓을 일삼던 남자다. 지나보다 젊고 매력적인 몰리를 선택했다. 이제 몰리보다 더 매력적이고 금전적으로도 풍족해 보이는 릴리스에게 마음을 빼앗기기 직전이다. 사실 릴리스로 하여금 자신의 마음을 빼앗아 가게 유도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주도권을 쥐고 모든 것을 끌고 간다 믿는다. 정말 그런 것 일까. 그는 자신의 계획대로 제대로 길을 찾아 가는 걸까. 그런데 왜 이렇게 불안할까. 그리고 왜 이렇게 그 끝이 어떻게 될지 뻔히 보이는 걸까.
영화 '나이트메어 앨리' 스틸.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나이트메어 앨리’는 한 남자의 파국을 위한 맞춤형 설계도다. 주인공 스탠은 보다 나은 그리고 보다 행복한 삶을 꿈꿨다. 하지만 그는 점점 더 불행한 삶의 어둠 속으로만 걸어 들어간다. 그는 꿈을 꿨다. 하지만 그의 현실은 돌이켜보면 꿈이 아닌 악몽 그 자체다. 출구가 없는 막다른 ‘악몽의 골목’으로 스스로가 걸어 들어가면서 다시는 나올 수 없는 그 곳에서 ‘끝’을 확인한 이 남자의 표정은 아이러니하게도 환희의 쾌감 그 자체였다. 그는 이제야 비로소 ‘해방됐다’는 악몽의 막다른 뒷골목 끝 벽 앞에서 출구를 찾은 셈이다. 결국 벗어났다. 하지만 그는 처음으로 돌아간 게 아니다. 다시 시작하면 되는 게 아니다. 그는 그제서야 제자리를 찾아 간 셈이다. 그가 찾아간 게 아니라 그 자리가 그를 찾아온 것이다. 결과적으로 ‘나이트메어 앨리’는 스탠의 악몽 같은 여정이 아니다. 스탠만을 위한 악몽이 스탠이란 남자를 찾아가는 정해진 길을 걸어가는 여정이다.
영화 '나이트메어 앨리' 스틸.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나이트메어 앨리’는 이런 과정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기 위해 관객들을 목격자의 역할로 끌어 들인다. 인물과 공간을 내려다 보는 앵글이 거의 없다. 이 얘기는 프레임 안에 캐릭터와 공간 그리고 얘기를 가둬 두겠단 의도가 아니다. 온전히 관객들로 하여금 프레임 안에 존재하는 인물과 공간과 사건을 지켜보고 궁금하게 만들려는 계산된 의도일 듯하다. 주인공 스탠이 스크린을 응시하는 장면이 단 한 컷도 존재하지 않는 이유가 이를 반증하는 연출 의도일 것이다. 관객과 스탠의 거리를 뚜렷하게 나눴다. 이런 방식은 ‘나이트메어 앨리’의 끔찍한 여정 속 스탠의 충격을 더욱 강하게 때리는 효과를 준다. 반대로 그 충격에서 관객들을 보호하고 관객들의 이입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역할도 한다.
영화 '나이트메어 앨리' 스틸.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나이트메어 앨리’는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만들어 낸 판타지와 현실의 경계가 무너진 ‘극한의 현실 판타지’에 가깝다. ‘현실 판타지’란 이율배반적 충돌의 표현은 이 얘기가 어쩌면 지금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얘기일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스탠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단 하나가 결여돼 있다. 채워도 채울 수 없는 감정의 구멍, ‘공허함’이다. 그를 괴롭혀 온 공허함은 그를 자극해 ‘절박함’의 절벽 앞에 그를 세워 놓는다. 뛰어 내릴 것 인가. 아니면 뒤 돌아 또 다른 공허함 속에 자리한 절박함의 괴물을 부여 잡을 것인가. 마지막 장면, 스탠의 얼굴은 ‘나이트메어 앨리’가 진심으로 말하고 싶은 것을 얘기하는 더 없는 ‘충격’ 그 자체다.
영화 '나이트메어 앨리' 스틸.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괴물’이 등장하지 않는 델 토로 감독 최초의 영화로 소개되는 ‘나이트메어 앨리’다. ‘나이트메어 앨리’는 델 토로 감독이 궁극적으로 그리고 싶은 ‘괴물’ 실체에 근접한 가장 완벽한 ‘괴물’ 그 자체다. 2월 23일 개봉.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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