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호평이 쏟아지고 있다. 또 다시 전 세계 순위 1위 타이틀이다. 찬란한 K-콘텐츠 흥행 서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징어 게임’과 ‘지옥’에 이어 전 세계가 지금 또 다시 K-콘텐츠 앓이 중이다. ‘지금 우리 학교는’이다. 이젠 너무도 익숙한 좀비 장르다. 하지만 일반적 좀비 장르와는 좀 다르다. 배경이 학교다. 그리고 주인공이 모두 고등학생들이다. 아직 성숙하지 못한 학생들이 끔찍한 재난 상황 속에서 어떻게 맞닥트린 사건을 뚫고 나가는지를 보여준다. 전형적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공식이다. K-콘텐츠가 안착시킨 OTT오리지널 시리즈 공식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 학교는’은 두 가지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다. 우선 긍정적인 부분. 좀비 장르 특성상 사회 시스템 비판 성격과 형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특히 학교 배경 비판 시각은 꽤 날카롭고 아프다. 권력 관계에 대한 비열한 굴종 시스템은 어른들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굴복하는 자와 군림하는 자 그리고 먹이가 되는 자와 그것을 먹는 자. 상하 관계로 이어진 먹이사슬은 우리 모두가 무조건 한 번씩 경험했던 학교 시스템 속 보이지 않는 사슬이다. ‘지금 우리 학교는’은 이 치밀하고 치졸하며 잔인하고 또 천박한 수직적 굴종 관계를 깨트리려는 한 아버지의 분노에서 시작됐다. 동명의 웹툰이 원작이기에 원작 속 설정과 거의 흡사하게 다가선다.
'지금 우리 학교는' 스틸. 사진/넷플릭스
수직적 굴종 관계는 ‘지금 우리 학교는’에서 꽤 다양한 형태로 드러난다. 학교 안 일진들, 특히 윤귀남(유인수)과 청산(윤찬영) 그리고 수혁(로몬)의 관계, 귀남의 괴롭힘을 당하던 남녀 학생들. 나연(이유미)과 같은 반 ‘기생수’(기초생활수급자) 친구와의 관계, 온조(박지후)와 남라(조이현)의 미묘한 갈등 등은 극 자체를 끌어 가는 동력이다. 앞서 언급한 이런 관계는 표면적으론 수직적이면서 감정적으론 ‘굴종’관계로 얽히고설켜 있다. 감정을 해석하고 그 해석을 온전히 받아 들이는 데 미성숙한 고등학생들의 모습은 꽤 답답하고 또 의외로 가슴 졸이게 만든다. 좀비로 들끓는 재난 상황 그리고 부딪치는 감정 충돌은 시청자들의 답답증을 자극하면서 오히려 기묘한 중독성을 자극한다. 장르적 추진력 비밀이다.
'지금 우리 학교는' 스틸. 사진/넷플릭스
무엇보다 ‘지금 우리 학교는’ 시작점이 ‘과학교사 이병철’로부터 시작된 점은 분명 주목해 봐야 한다. 아들의 학교 피해, 그 피해 속에 끝까지 먹이 사슬 밑 바닥을 자처한 아들의 선택. 그 선택을 이해할 수 없던 아버지. 인간의 의지, 그 의지를 통해 뭔가를 바꾸려 했던 또 다른 의지. 그 방법이 어떤 식으로 전이되고 진화될진 사실 큰 의미는 없다. 아들을 살리고 싶었고 아들을 바꾸고 싶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그 의지는 아들의 것이 아닌 아버지의 의지였다. 자발화가 정체성인 ‘의지’가 타인에 의해 주입될 때 그 의지는 그때부터 의지가 아닌 ‘타의’가 되는 것이다. ‘지금 우리 학교는’에선 그 타의가 ‘좀비’로 분화됐다. 반면 의지가 타의를 넘어선 일부가 특별한 면역체계를 갖춘 새로운 ‘신인류’로 표현된다.
'지금 우리 학교는' 스틸. 사진/넷플릭스
‘지금 우리 학교는’은 좀비 장르다. 좀비가 쏟아진 재난 상황을 그린다. 그 재난 속에서 폐쇄된 학교에 갇힌 학생들이 어떻게 탈출하고 또 그 과정에서 어떤 감정에 휘둘리며 어떻게 자신을 가로 막은 재난을 뚫고 전진하는지 보여준다. 기본적 재난 영화 공식이다. 하지만 그 안에 숨은 진짜가 앞서 언급한 ‘의지’다. ‘의지’는 오롯이 인간성을 나타내는 본연의 것이다. 극중 온조와 청산을 중심으로 한 학생들의 담임 선생님이 전한 말이다. ‘어떤 상황이 와도 절대 죽지 마라. 그리고 누구도 죽게 만들지 마라. 누군가를 죽음으로 내몰면 사는 게 아무것도 아닌 게 된다’라고.
'지금 우리 학교는' 스틸. 사진/넷플릭스
‘지금 우리 학교는’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그것’이 도대체 무엇인지를 말하고 또 찾고 싶어하는 과정이다. 의문의 바이러스를 통해 이 시리즈 공간적 배경이 된 ‘효산시’는 아비규환이 된다. 인구 대부분이 좀비가 됐다. 극소수 일부는 인간도 좀비도 아닌 ‘신인류’가 됐다. 그리고 살아 남은 온조와 청산을 중심으로 한 일부 학생들만이 인간이다. 근데 도대체 뭐가 인간이고 뭐가 좀비이며 뭐가 ‘신인류’란 말인가. ‘남라’의 대사는 그래서 의미심장할 수도 있다. ‘학생이 그렇잖아, 어른도 아니고 애들도 아니고”라고.
'지금 우리 학교는' 스틸. 사진/넷플릭스
결과적으로 이 세계관에서 인간과 좀비의 구분은 큰 의미가 없다. 학생들을 버리는 어른들의 결정은 흡사 몇 년 전 현실 속 끔찍했던 사건을 고스란히 투영시킨 것 같아 온 몸을 휘청이게 만든다. 이미 죽었지만 산 사람처럼 몸을 움직이며 피를 갈구하는 좀비들이 꼭 그래서 끔찍한 것 일까. 우린 이미 좀비보다 더 끔찍한 세상에 사는데 말이다. ‘지금 우리 학교는’은 그걸 오롯이 직시하고 전달하는 매개체로서의 역할을 충실하게 이행하는 것에 집중한다. 유의미한 역할이며 충분히 힘을 갖는 전달자다. ‘지금 우리 학교는’의 의미적 해석은 이 정도다
'지금 우리 학교는' 스틸. 사진/넷플릭스
하지만 콘텐츠적 시각에서 ‘지금 우리 학교는’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가 태생적으로 끌어 안고 있는 약점을 고스란히 투영시킨다. 넷플릭스는 ‘지원은 하지만 관여는 하지 않는다’란 투자 방침으로 유명하다. 국내 모든 제작사들이 넷플릭스와의 협업에서 느낀 최고의 장점이다. 하지만 충분한 프로듀싱(제작 관리 감독) 능력이 갖춰지지 않은 제작사가 글로벌 OTT플랫폼과 협업을 할 경우, 그리고 투자의 프로듀싱 측면에서 자유로워지게 될 경우 어떤 결과물이 나오는지를 적나라게 보여주는 결과물이 이번 ‘지금 우리 학교는’이 될 듯하다.
'지금 우리 학교는' 스틸. 사진/넷플릭스
개연성은 양날의 검이자 최소한의 규칙이다. 콘텐츠적 상상력이라면 개연성은 뛰어 넘을 수 있는 충분한 담벼락이 된다. 하지만 ‘지금 우리 학교는’에선 캐릭터 개연성이 사실상 붕괴된 채 스토리 라인으로 짓눌러 뭉개버리기를 반복하고 끌려 다닌다. 중간중간 사라지는 캐릭터들과 주요 인물들과의 관계성은 극중 상황과 맞물려 휘발된다 해도 너무 설명이 부족하다. 특별한 힘을 갖게 된 ‘신인류’ 캐릭터들의 ‘우왕좌왕’도 연출 가이드라인이 손을 뻗치지 못한 느낌이다. 전체적으로 굵직한 메인 스트리트는 잘 정비 됐다. 하지만 그 주변 정리가 전혀 이뤄지지 않은 채 개통을 강행한 느낌이다. 이해가 되고 공감이 되고 납득이 되는 데 한 꺼풀만 들춰보면 붕괴직전 개연성으로 위태롭기 그지 없는 설정과 구성이다.
'지금 우리 학교는' 스틸. 사진/넷플릭스
OTT플랫폼 특성을 고려한 제작진의 전개 설정과 틀에 박힌 제작일 듯하다. 장르적 특성도 고려됐을 것이다. 잔인하고 끔찍하다. OTT플랫폼 오리지널 시리즈에선 임팩트가 빠질 수 없다. 관람의 연속성을 고려해야 한다. 이 연결 고리에만 집착하다 보니 세밀한 개연성은 제대로 연결조차 되지 않고 있다.
'지금 우리 학교는' 스틸. 사진/넷플릭스
의미는 충분하게 묵직하고 또 강렬하다. 하지만 두고두고 봐야 할 명품 콘텐츠라기 보단 1회성 소비 콘텐츠로서의 가벼움이 더 강하다. OTT플랫폼의 가장 두드려진 단점이 더욱 더 드러난 오리지널 시리즈다.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