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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감춰진 산재' 정부가 나서야
2021-12-08 06:00:00 2021-12-08 06:00:00
강원도 초등학교에서 급식 조리사로 20년간 일해온 한 노동자가 폐암 판정을 받았다. 지난 5월 가슴 통증으로 병원을 찾은 결과 '폐암 4기'라는 사실을 확인했고 지난달 22일 산업재해 판정을 받은 건이다.
 
급식실 노동자의 폐암 산재 신청 건수를 보면 2018년 2명, 2019년 2명, 2020년에는 2명이 신청했다. 지난달에는 급식실 종사자 최초로 폐암 산재 인정을 받는 등 신청자가 25명으로 12배 이상 늘었다.
 
산재 신청이 늘어난 것은 그간 산업재해로 인정받지 못한 질병들이 일터와 관련 있다는 사실을 노동자들이 인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인지하기까지는 너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우선 임금을 통해 생계를 이어가는 노동자와 사업주의 관계가 동등하지 않다. 노동자는 산재 승인을 받을 수 있을지 불투명해 산재 신청을 하기 어렵다. 또 인과성을 입증하는 것도 쉽지 않다. 회사는 이윤이 걸려 있기 때문에 인과관계를 적극적으로 확인하기는커녕 이를 감추기 급급한 경우가 많다. 이는 앞서 주요 산재 사건들에서도 드러난다.
 
원진레이온은 1980년대 말 국가 전체에 큰 충격을 준 최악의 산재사고로 기억되고 있다. 1966년부터 1993년까지 운영한 화학 섬유회사인 원진레이온에서 노동자 890명이 이황화탄소 중독증으로 직업병에 걸린 사건이다.
 
폐업시까지 중독증으로 사망한 사람만 15명, 투병중 사망한 인원까지 합치면 사망자는 100명에 이른다. 사측은 산재를 인정하긴커녕 노동자들이 중독증 증세를 보이면 강제로 퇴사시켰다. 직업병과 장해등급 판정을 받아도 민형사 소송을 제기하지 않겠다는 각서 하에 600만원 수준의 보상금을 주면서 이를 무마하려고 했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의 백혈병 사례도 마찬가지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2007년 급성 백혈병으로 사망한 황유미 씨의 산재인정을 받기 위해 아버지인 황상기 씨가 수년간 끈질기게 싸운 결과, 2011년 근로복지공단을 대상으로 한 소송에서 승소했다. 황씨의 사망이후 삼성전자는 무려 11년간 황유미씨와 백혈병과의 연관성을 부정했다.
 
지난해 삼성전자가 인정한 산재는 71명에 불과하다. 백혈병 피해단체 '반올림'에 따르면 2020년 7월 2일까지 반올림에 제보된 기준으로 사망자는 199명, 질병피해자는 696명에 달할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한 대목이다. 문재인 정부는 취임 이듬해인 2018년에 산업재해 사고 사망자 수를 2016년 969명에서 2022년 500명 이하로 절반 이상 감축한다는 목표를 제시한 바 있다.
 
하지만 내년 1월 27일 중대재해기업 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산재 사망자 수가 줄지 않자 정부는 제조업, 건설업 등 산재가 많이 발생하는 지역을 중점으로 컨설팅과 관리감독을 주력해왔다.
 
하지만 여기서 급식조리사 폐암 산재와 같은 사례는 사각지대에 속한다. '산재 사망 감축'이라는 정부 의 목표달성도 중요하나 잘 드러나지 않는 '감춰진 산재'를 찾아내기 위한 적극적 노력이 절실한 순간이다.
 
용윤신 경제부 기자 yony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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