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제품 재료 빼돌린 행위도 업무상배임"
"영업비밀 유출 주장 이해할 여지 있어"…무죄 부분 파기
입력 : 2021-05-30 09:00:00 수정 : 2021-05-30 09:29:33
[뉴스토마토 정해훈 기자] 제품의 재료를 빼돌린 행위도 업무상배임에 해당할 수 있는데도 이에 대한 공소사실 취지를 명확히 하지 않은 채 무죄로 판단한 것은 부당하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업무상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권모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징역 2년에 벌금 3000만원, 추징금 6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수원고법에 돌려보냈다고 30일 밝혔다.
 
디스플레이용 OLED 재료를 개발·생산하는 A사 연구소에서 책임연구원으로 근무하던 권씨는 경쟁업체인 B사 영업부장인 이모씨의 부탁을 받아 B사의 재료 성능평가를 해줘 1979만원에 해당하는 재산상의 이익을 주고, A사에서 빼돌린 재료를 이씨에게 보내는 등 A사에 손해를 가한 혐의로 기소됐다. 
 
권씨는 4차례에 걸쳐 이씨로부터 B사 재료 성능평가를 해달라는 청탁을 받아 실행한 후 현금 총 600만원과 향응을 받는 등 배임수재 혐의도 받았다. 또 이씨 등과 공모해 A사의 영업비밀이 담긴 파일을 유출하는 등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혐의도 적용됐다.
 
1심은 배임수재 혐의와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혐의 일부만을 유죄로 판단해 권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 벌금 3000만원, 추징금 6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업무상배임 혐의에 대해 "A사가 권씨가 B사의 재료 성능평가를 해줌으로써 기술 자료의 시장교환 가격에 상당하는 이익을 얻지 못하는 소극적 손해를 입었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권씨가 A사의 재료를 빼돌려 이를 이씨에게 보내주는 행위는 물리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유체물로서 재물인 재료 그 자체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어서 이를 업무상배임죄의 객체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모두 무죄로 봤다.
 
2심은 업무상배임 혐의 중 재료 성능평가 부분을 유죄로 인정해 권씨에게 징역 2년과 벌금 3000만원, 추징금 600만원을 선고했다. 재료 송부 부분에 대해서는 1심과 같이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유죄 판단에 대해 "권씨는 개인적인 목적으로 이씨의 부탁을 받고 A사의 승인 없이 B사의 재료 성능을 평가한 후 그 결과를 보내줬는바, 이는 객관적으로 해사 행위에 해당한다"며 "권씨는 성능평가를 하면서 A사의 재료나 설비, 정보를 임의로 사용했고, 자신의 부하 직원이자 A사 연구원들에게 업무를 지시해 이로 인해 A사에 재산상 손해가 발생했을 것임은 분명하다"고 설명했다.
 
또 "권씨가 이씨에게 도판트 재료와 HTL, B HOST, ETL 재료를 보낸 사실은 인정된다"며 "그러나 업무상배임죄는 자신 또는 제3사의 재산상 이득 취득을 구성 요건으로 하는 범죄로서 재산상 이익이 아닌 재물 자체를 범행의 객체로 한 경우에는 성립할 여지가 없고, 해당 재물의 소유나 점유관계 등에 따라 절도죄나 업무상횡령죄가 성립할 수 있을 뿐"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재료 송부로 인한 업무상배임 혐의를 무죄로 판단한 2심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A사와 B사의 사업 분야와 관계, 권씨가 송부한 재료의 성격, 이 부분 공소사실의 내용과 검사가 항소이유서에서 주장한 내용 등에 비춰 보면 이 부분 공소사실의 취지가 권씨가 재료를 송부함으로써 그 재료에 포함된 영업비밀 내지 영업상 주요한 자산을 유출한 것이란 주장으로도 이해될 여지가 있고, 따라서 공소사실의 기재가 명료하지 못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원심으로서는 검사에 대해 석명권을 행사해 그 취지를 분명히 한 다음 그에 관해 심리·판단했어야 할 것임에도 원심은 이러한 조치 없이 이 부분 공소사실을 이유에서 무죄로 판단했다"며 "원심판결 중 권씨에 대한 위 무죄 부분에는 필요한 석명권 행사나 심리를 다하지 않아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권씨가 이씨에게 송부한 재료들은 A사에서 보유하던 것으로서 OLED의 제작에 필요한 재료 혹은 관련 실험에 필요한 재료"라며 "위 재료들에는 A사의 기술 등이 포함돼 있어 A사로서는 경쟁 업체에 이를 무단으로 제공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을 것으로 볼 여지가 있고, 특히 R 도판트 재료의 경우 B사가 용이하게 입수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고 부연했다.
 
아울러 "권씨가 R 도판트 재료를 송부한 이후 B사는 R 도판트 복제품을 생산하기에 이르렀다"며 "검사는 항소이유서에서 '재료를 넘겨준 행위는 기술 유출의 한 방법이고 기술 유출로 인한 무형의 손해와 이익이 있는지 판단해야 하는바, 권씨가 A사의 재료를 넘겨줌으로써 A사의 기술을 넘겨준 것이란 이유로 업무상배임죄가 인정돼야 한다'는 취지로 주장했다"고 덧붙였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 사진/뉴시스
 
정해훈 기자 ewigjung@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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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해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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