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오로라 내리 듯…코로나 블루 걷어낸 넬 ‘치유의 숲’
23~25일 넬 올해 첫 단독 공연 ‘LET THE HOPE SHINE IN’
우주로 빨려갈 듯 조명의 활홀경…철저 통제 하 진행된 방역 모범 공연
관객들, 떼창 대신 수천개 박수로 화답…“각자의 자리에서 버텨보자”
입력 : 2020-10-28 18:00:00 수정 : 2020-10-29 19:29:04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25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올림픽홀. 공연 뒤 만난 넬의 김종완은 ‘복기(復棋)’를 하고 있었다. 흠뻑 땀에 젖고서도 머릿속엔 온통 지나간 공연 생각 뿐. “‘A to Z’ 때 기타 스트랩이 끊어지는 바람에 잔 실수를 했던 게 아쉬워요. 오래 갈망했던 만큼, 더 없이 완벽한 공연을 하고 싶었는데...”
 
그러나 21년차 내공의 이 ‘프로 뮤지션’은 순간의 기지로 난관을 타개했다. 오른 팔로 기타 바디를 꽉 부여잡은 상태로 다운피킹. “노래할 때 신경이 조금 분산된 게 아쉽다”는 그를 보며 다른 멤버들[이재경(기타), 이정훈(베이스), 정재원(드럼)]은 “스트랩이 빠진 것조차 몰랐다”는 의외의 반응을 내놓는다. 
 
사소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고 다음 공연에 반영하려는 그들을 보며 왜 국내의 독보적인 슈퍼밴드이자, ‘소리 장인’이라 불리는지 다시금 체감할 수 있었다.
 
23일부터 이날까지 총 세 차례에 걸쳐 이 곳에서 진행된 공연(‘LET THE HOPE SHINE IN’)은 밴드가 올해 처음으로 여는 단독 콘서트였다. 넬은 매년 봄이나 가을 ‘NELL's SEASON’이란 브랜드 공연을 이어왔다. 올해 4월 이 일환으로 첫 단독 공연 ‘IN THE BREEZE'를 열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여파로 취소되는 사태를 겪었다. 
 
이후 몇 차례 준비하고 뒤엎길 반복하다 결국 10월이 돼서야 정부 지침에 따른 방역 준수 공연을 열 수 있었다. 25일 저녁, 올림픽홀 공연장 안까지 들어가는 과정은 철저한 통제 아래 진행됐다. 거리두며 줄 서기(바닥 안전선에 맞춰 줄 서기), QR코드 확인, 모바일 자가 문진표 작성, 바코드 찍힌 모바일 티켓(종이 티켓 없음) 제시, 체온 모니터링, 손소독까지 마친 뒤에야 입장이 가능했다. 스탠딩 없이 좌석으로만 진행됐고 간격은 한 칸씩 떨어져 있었다.
 
서울 올림픽홀에서 열린 넬의 올해 첫 단독 공연 ‘LET THE HOPE SHINE IN’.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Is This It?’. 공연 직전 짙게 깔리던 앨범은 더스트록스의 2002년작이었다. ‘포스트 펑크 리바이벌’ 물결을 영국에까지 닿게 한 미국 밴드. 날카로운 기타 리프로 가득한 이 펑크 팝이 거대 스피커를 타고 흐르자 홀 내에 에너지가 약동했다. ‘코로나 블루’로 뒤덮인 우리 세계를 깨끗이 씻어내듯. 막으로 본 무대를 가린 채 틀어준 이 짧은 시간 뒤엔 완전히 반대되는 ‘서정’의 신세계가 펼쳐졌다.
 
앞부분을 스트링 편곡으로 길게 늘어뜨린 첫 곡 ‘In Days Gone By’가 홀 내부를 다시금 진동시켰다.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어야만 했던, 지난 시간의 기억들이 어쿠스틱 기타 튕김과 가사 위에 자꾸만 아른 거렸다. ‘그리고 지금 역시/먼 훗날 언젠간/그리움으로/남게 돼’
 
무대 위 오로라처럼 흩날리는 길다란 투명 장식들엔 시종 은은한 빛이 투사됐다. 
 
지금 시대에 꿈꿀 법한 제목의 곡 ‘Beautiful Day’ 풍경은 번쩍거리며 명멸하는 섬광에 겹쳐내는 수천개의 박수소리가 되더니(‘섬’ 후반부), 가을날 씁쓸하게 느껴지는 미풍 같은 느낌으로(‘타인의 기억’) 이어졌다. 주상절리 같은 막대 장식들은 에메랄드색이었다가, 다시 파랑, 빨강, 분홍, 노랑색을 분사하며 곡 무드에 맞춰 부지런히 변형됐다.
 
코로나에 따른 방역 지침 탓에 관객들은 소리조차 낼 수 없었지만 우주로 빨려 들어갈 듯한 황홀경에 젖었다. 마스크를 낀 채 앉아서 관람하고 떼창 대신 박수로 화답해야 했지만, 멤버들의 멘트에 음성으로 답을 내는 대신 ‘O’와 ’X’ 자를 그리며 응해야 했지만, 음악은 시종 서로의 마음을 관통했다. 
 
지난 23일 온스테이지 10주년 기념 발표곡 ‘기억해’를 부르기 직전. 김종완은 “사람이 사람을 무서워하는 코로나 시대의 삭막함에 관해 생각하다 쓰게 됐다”며 “지난해 이맘 때 신촌에서의 버스킹 공연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1m 남짓한 거리에서 관객들과 호흡하던 그 아름다움을 지금의 소중한 관점에서 풀어낸 곡”이라 설명했다.
 
'숲'으로 변형된 ‘LET THE HOPE SHINE IN’ 무대.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이날 공연의 최대 변곡점이자 절정은 중 후반부 곡 ‘Newton's Apple' 직전의 순간. 천둥 같은 드럼 비트와 일렁이는 신스음에 맞춰 무대가 전환됐다. 흩날리던 투명 장식들 위 나무가 내려오더니, 순간 공연장이 불현 듯 ‘숲’으로 탈바꿈했다. 
 
중반부까지 차분한 질감의 어쿠스틱 기타 사운드가 리드하던 이날 공연은 이 때부터 일렉 기타 2대의 강렬한 사운드가 베이스기타, 드럼, 신스 소리에 섞이며 반전됐다. 제 2막이 재차 오른 느낌. ‘Fantasy’, ‘무홍’, ‘All this Fuxxing time’, ‘Starshell’,… ‘Ocean of Light’. ‘1부격’으로 볼 수 있는 어쿠스틱 무대들보다 빠른 템포의 곡들이 넬스러운 ‘숲’으로 관객들을 안내했다. 이 숲의 밀림은 이내 치유와 희망을 피톤치드처럼 내뿜으며, 코로나 블루로 가득한 우리 세계를 순간이나마 지워버렸다.
 
팍팍하고 괴로운 삶은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이다. 도망가거나 물러설 여지 따윈 없다. 코로나로 더 팍팍하고 삭막해진 현실 속에서도 우린 때로 밀어붙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저마다 주어진 무게를 지고 각자 길을 걸어가야 하는 삶. 
 
그런 현실에서 밴드는 끝까지 분투하며 말한다. ‘어떤 일들은 버틸 수밖에 없는 때가 있으니,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텨 보자고, 그럼 조금은 나아지는 시기가 올 수 있다고’
 
“코로나가 꼭 아니더라도 심적으로든 여러모로 힘든 일을 겪고 계신 분들이 있을 겁니다. 우리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버티다가 다시금 만나질 수 있길 바라봅니다.”
 
‘LET THE HOPE SHINE IN’ 무대를 마친 넬 멤버들.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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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익도

자유롭게 방랑하는 공간. 문화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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