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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밥 딜런과 20대 국회
2016-10-18 14:08:31 2016-10-18 14:08:31
 
천국의 문을 두드려요. 세계적인 팝 아티스트 밥 딜런의 명곡 ‘노킹 온 헤븐스 도어(Knocking on Heaven’s Door)’에 나오는 가사이자 노래 제목이다. 가사 곳곳에 시대상의 완벽한 반영과 대중들의 공감이 묻어난다. ‘난 이 모든 전쟁이 아프고 지쳐요.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아주 많죠. 마치 천국의 문을 두드리는 것처럼.’ 눈을 적시고 마음을 움직이는 시가 아니라 귀로 듣고 마음을 진동시키는 노래로 밥 딜런은 대중에게 다가섰다. 2016년 노벨 문학상을 대중 가수인 밥 딜런이 수상했다. 그래미상도 아니고 MTV상도 아니다. 세계적인 대문호들만이 차지했던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밥 딜런은 이 순간만큼은 대중 가수가 아닌 문학가로 조명된 셈이다.
 
1941년, 2차 대전이 끝나기 전에 밥 딜런은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유대인이라는 집안 배경이 히틀러의 광기로 점철된 2차 대전을 돌아보며 그의 시심을 더 깊게 했는지 모르겠다. 10세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해 미국의 명문 주립대학에 진학했으나 그의 철학적 인생관에 학교 교육은 애당초 어울리지 않았다. 뉴욕의 뒷골목을 배회하며 포크 가수들과 어울려 60년대 미국 집시들의 삶과 노래에 더 깊게 빠져 들었다. 그는 도시 하층민들의 피눈물 나는 삶과 애환으로부터 더 많은 소재를 얻었을지 모르겠다. 베트남 전쟁이 시작되는 길목에 사회적 고민은 밥 딜런의 노래 가사로 연결되었다. 여러 기록들을 보면 밥 딜런은 사회적 저항 가수로 낙인찍히는데 있어 많은 부담을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밥 딜런의 인생에서 대중과의 공감은 최우선적인 과제였다. 한때 연인이기도 했을 정도로 가까웠던 조안 바에즈가 저항 음악으로의 복귀를 줄기차게 요구했지만 딜런은 응하지 않았다. 자기만의 음악과 저항 세계를 고집하는 것보다 대중과의 교감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썼다. 만약 많은 이들이 밥 딜런의 가사를 기분 좋게 음미하고 그의 포크 기타 선율을 통해 울려 퍼지는 음악에 공감하지 못했다면 노벨 문학상은 감히 상상하지 못했을 법하다. 그는 그의 음악에 비틀즈도 영접했고 로큰롤도 받아들였다. 밥 딜런의 인생이 된 포크 록이 만들어지는 지점이었다. 지금이야 일반적인 모습이지만 당시만 해도 포크 가수가 일렉트릭 기타를 들고 무대에 서는 건 일종의 일탈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에게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딜런의 도전을 가로막진 못했다. 뿐만 아니라 새로운 실험으로 어쿠스틱과 컨트리 음악을 통해 히피 문화와 공감하는 모습도 보였다. 70년대 말에는 기독교 음악인 가스펠을, 80년대에는 당대를 지배하던 뉴웨이브 음악을 도입하는 어설픈 시도에 혹평을 받기도 했었다. 항상 호평만을 기대하며 도전할 수는 없는 일이다. 대중을 향한 밥 딜런의 지칠 줄 모르는 공감 시도는 그래서 더 소중하게 느껴지고 그의 노벨 문학상 수상에 대한 이런저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그의 가치를 저절로 인정하게 된다.
 
눈을 돌려 한국 사회를 바라본다. 국민의 대표 기관을 자처하며 출범했던 20대 국회 첫 국정감사가 얼추 마무리 되어가는 시점이다. 국민들은 어떤 공감과 변화를 느낄 수 있었을까. 국정감사가 한창이던 때 실시된 한 여론조사 기관의 정당 지지율을 살펴보면 지지할 정당이 없다는 비율이 30%를 넘어섰다. 개별 정당의 지지율보다도 더 높다. 정당이야 여러 개 있지만 정작 지지할 정당이 없다는 현실이 아이러니하다. 지난 총선에서 각 정당들은 많은 약속을 국민에게 쏟아냈다. 선거 운동기간 한 표를 얻기 위해 지하철 역 앞에서, 버스 정류장에서 90도로 예를 다하며 유권자들을 받들었다. 유권자들은 선거 때만 되면 좀비처럼 등장하는 상투적인 천태만상이라 여겼지만 결코 후보들을 향해 반감을 드러내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래도 기대가 있고 믿음이 남았고 특히 열심히 하겠다는 그 처절함이 한 표를 애걸복걸하는 당선욕심으로만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힘들다고 울고 있다. 철도 파업은 끝나지 않았고 산업 현장은 노사 갈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해운업과 조선업은 어떤 운명을 맞을지 예측조차 불가능하다. 국내 대표기업으로 유가증권시장의 대장주인 삼성전자의 배터리 사태는 한국 사회에 또 다른 불안감을 안겨주고 있다. 지진에 대한 두려움과 세월호 사고 이후 안전 트라우마는 치유되지 않고 진행중이다. 이 와중에 대통령 선거를 앞둔 정쟁에만 매몰된 정치권의 대국민 공감도는 얼마나 될까. 밥 딜런의 음악으로 그리고 가사로 위안을 받던 70, 80년대 미국 국민들이 부럽다면 혼자만의 생각일까. 힘든 세상, 천국의 문을 두드리고 싶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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