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스토리)확장하는 인공지능…회계감사 영역도 '지각변동'
감사인과 인공지능의 콜라보레이션…분식회계 적발 가능성 높아져
입력 : 2016-05-11 12:00:00 수정 : 2016-05-11 12:00:00
글로벌 회계감사법인들이 인공지능 감사시스템 구축에 자금을 쏟아 붓고 있다. 회계법인의 전문성이 깃든 전통적인 감사기법에 첨단기술을 더하며 새로운 감사시스템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빅4'라 부르는 KPMG,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 언스트앤영(EY), 딜로이트앤투쉬(Deloitte & Touch) 등 다국적 회계법인들은 제각각 인공지능과 같은 고성능 컴퓨터 프로그램을 활용하고 있다. 첨단 IT기술로 보다 정확하고 포괄적인 회계감사를 제공해 기업 장부의 독립검증에 대한 확신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인공지능을 이용하면 감사 수준 향상과 더불어 기업의 분식회계 적발 가능성도 높아진다. 그동안 인력 집단에 의존해왔던 감사시스템이 진화하며 회계감사인의 역할과 위상에 어떤 변화가 생길지 주목되고 있다. 
 
'빅4' 회계법인 중 하나인 KPMG는 최근 글로벌 기업의 장부 감사를 도와줄 ‘슈퍼 어시스턴트’를 영입한다고 발표했다. IBM과 협력해 인공지능 컴퓨터 '왓슨(Watson)'을 이용한 최첨단 회계감사 프로그램을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다른 말로 왓슨의 '인지기술'을 KPMG의 전문 감사 서비스에 응용한다는 뜻이다. 인공지능 왓슨이 KPMG 소속 회계감사인이 된 것과 마찬가지다. 존 켈리 IBM 리서치 부사장은 "비구조적 데이터를 이해할 수 있는 인공지능이 회계 자료를 정리·분석해 감사인이 전문적인 판단을 내릴 근거를 마련하는 프로그램"이라고 설명했다.
 
인지기술은 인공지능의 핵심으로 컴퓨터가 사용하는 기계언어가 아닌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자연언어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인지능력을 이용하면 비구조적으로 이뤄진 거대한 양의 데이터를 분석할 수 있다. 방대한 재무자료의 분석이 필수적인 회계감사에 적합한 기능이다. 왓슨은 곧 기업의 회계장부에 기록된 거래내역 분석 등 감사의 일부분을 맡을 것이다. 인공지능의 특성상 스스로 학습하고 발전해 나중에는 복잡한 회계감사도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됐다. 
 
회계감사에도 인공지능이 활용될 전망이다. 사진은 지난달 서울에서 열린 ‘인공지능 국제 심포지엄’에서 롭 하이 IBM 기술개발책임자가 ‘인지 컴퓨팅의 미래, 왓슨’을 주제로 기조연설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인지 시대가 도달했다"고 말하는 린 도어티 KPMG 회장은 "왓슨은 핵심 기업 자료에 대한 분석력을 높여 조직의 건전성을 파악하는 데 기여"하며 "인공지능으로 감사의 질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KPMG와 IBM가 합의한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스티브 힐 KPMG 혁신부서장은 "상당히 큰 투자"였음을 내비쳤다. 그는 왓슨이 KPMG의 회계감사 체제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며 "(왓슨에게) 감사인이 하는 것들을 가르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첨단 인지기술 활용에 적극 나선 '빅4' 
 
월스트리트저널(WSJ)은 KPMG의 소식을 전하며 회계법인의 IT기술 접목 행보를 소개했다. 빅4에 속하는 다른 회계법인 세 곳도 고성능 컴퓨터에 기반을 둔 회계감사 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딜로이트는 '알거스앤옵틱스(Argus & Optix)'라는 데이터 분석 프로그램을 회계감사에 투입했다. PwC는 '아우라, 커넥트, 할로(Aura, Connect, Halo)'라는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있다. 언스트앤영(EY)은 최근 자사의 감사 프로그램 개발을 위해 초기 투자금으로만 4억달러를 쏟아 부었다. 
 
우선 EY는 지난해 컴퓨터 감사 프로그램을 이용해 유럽의 한 제조업체의 회계장부에 기록된 모든 차·대변 분개를 분석했다. 컴퓨터는 최대 1000만개가 기재된 장부를 검토했다. 그 결과 전기에 발생된 비용이 당기에 처리된 수많은 회계 오류를 찾아냈다. 전기에 수정해야 할 오류가 당기에 수정된 사실과 부적절한 내부 거래도 발견했다. 이 결과를 바탕으로 EY은 사업장의 열악한 내부통제를 지적했으며 해당기업은 절차와 관리방식을 개선할 수 있었다. 랜디 리얼리 EY 글로벌 감사개혁팀장은 "이제 (기업 장부의) 어느 부분을 더 깊게 들여다봐야 하는지 알 수 있게 됐다"고 말한다.        
 
딜로이트는 '알거스'라는 인공지능 데이터 분석 프로그램을 사용한다. 알거스는 수많은 문서에서 핵심 정보를 추출한다. 덕분에 산더미 같이 쌓인 문서를 사람이 일일이 수작업으로 검토할 필요가 없어졌다. 알거스가 데이터를 준비해 놓으면 데이터 분석 엔진인 '옵틱스'가 기업의 데이터를 정리, 분류해 잠재적인 문제 범위를 파악한다. 딜로이트가 미국의 한 부동산 회사의 회계감사를 실시했을 때, 옵틱스는 회사가 소유한 모든 부동산을 실적별로 분류했다. 실적이 저조한 경우는 빨간 별표로 표시했는데, 플로리다 주가 빨간 별을 받았다. 감사인은 이것을 보고 플로리다 주 부동산 자산을 평가절하 해야 하는지를 결정했다.
 
컴퓨터의 '분석력' vs. 감사인의 '전문 판단력'
 
컴퓨터는 회계장부에 기록된 모든 거래내역을 검토한다. 사람이 할 때에는 회계감사인의 전문가적 판단에 따라 수집한 표본만을 대상으로 감사를 진행했다. 샘플 선정에 따라 중대한 문제점이 누락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컴퓨터는 샘플에 의존하지 않고 거래내역을 전체를 읽어 내린다. 그뿐 아니라 누가, 언제 장부에 해당 내용을 입력했는지 등 모든 기록을 분석한다. 기말 직전 매출이 과다 책정됐거나, 다음 회계기간으로 비용처리가 넘겨진 사실을 전부 파악할 수 있다. 권한이 없는 직원이 회계장부를 수정한 사실도 찾아낸다. 비정기적인 대규모 거래가 동일 업체와 연이어 이뤄졌다면 잠재적인 문제 요소로 간주하기도 한다. 따라서 분식결산 및 실적조작의 흔적을 찾아내기가 훨씬 쉽다. 
 
자동화 감사기법의 또 다른 장점은 효율적인 감사 인력과 자원 배분에 있다. 기계적인 작업을 컴퓨터가 오류 없이 처리하는 동안 감사인은 보다 실질적인 문제에 집중할 수 있다. 시간 소모가 큰 노동집약적 작업은 더 이상 감사인의 몫이 아니다. 이제 감사인은 컴퓨터가 분석해 놓은 결과물을 읽고 해석해 전문가로서의 판단을 내리는 일을 담당한다. 분석 자료의 패턴을 이해해 어느 계정과목에서 분식회계 가능성이 높은지 측정하는 고차원적 작업이다. 몇 년 전만 해도 계산기와 메모지를 들고 시간을 다투던 감사인의 업무가 크게 변했다. 감사의 업무 흐름도를 다시 그려야 할 판이다. 회계감사 과정의 구조적 변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기업측에서도 감사를 받는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어서 환영하는 분위기다. 서비스 회사 월터스클루워(월터스)는 최근 외부회계감사자를 딜로이트로 바꿨다. 딜로이트가 데이터 분석 소프트웨어를 내세워 빠르고 정교한 감사서비스를 제시했기 때문이다. 딜로이트는 월터스의 이탈리아 사업장에서 지난 1년간 발생한 총 거래내역 분석을 예정보다 빨리 끝냈다. 덕분에 월터스는 감사비용을 25%나 절약할 수 있었다. 월터스의 케빈 에릭슨 재무담당 최고책임자는 내년에도 소프트웨어의 활용이 늘어나길 바란다고 전했다.
 
회계부정 찾는 감사의 수준 높아져  
 
첨단기술의 도입은 회계감사의 질적 향상을 원하는 회계감사인이 주도했다. 규제당국도 지지를 보냈다. 미국의 회계감사 감독기관인 기업회계감독위원회(PACOB)은 최근 회계법인들의 IT 감사기법 도입에 대해 "매우 관심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PACOB는 매년 빅4 회계법인이 수행한 감사를 선별해 조사하는데, 지난해에는 조사 대상 중 35%에서 결함을 발견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투명한 기업회계를 요구하는 투자자 및 주주 등 이해관계자들도 감사절차 개선을 희망해왔다. 또한 감사를 받는 기업들도 빅데이터를 활용하는 회계감사 방식을 선호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발행된 제무제표가 수정되는 일이 앞으로 줄어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더 나아가서 2001년 대규모 회계부정 사건으로 파문을 일으킨 '엔론'과 같은 기업의 분식회계가 종식될 것으로 내다본다. 미국의 에너지회사였던 엔론은 분식회계를 통해 이익을 뻥튀기하고 출처를 알 수 없는 회사를 만들어 부채를 숨겨오다 결국 파산했다. 엔론이 파산하면서 회계업무를 담당하던 아서앤더슨 회계법인도 파산했다. 마이클 갈라거 PwC 매니징파트너는 "이러한 기법이 15년 전에도 있었다면 (엔론과 같은) 부정회계 사건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감사인의 전문성 쇠퇴에 대한 우려도
 
인지기술을 이용하면서 감사인이 기술에만 의존해 전문성과 판단력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제임스 도티 PACOB 의장은 "감사인의 전문가적 의구심이나 독립성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컴퓨터가 뽑아내는 전자 데이터의 홍수 속에서 회계법인이 사이버 해킹의 목표가 될 수 있다는 점도 주의해야 할 문제다. 
 
인공지능 발달로 회계감사인이라는 직업이 사라질 수 있다는 의견도 있지만 업계에서는 성급한 우려라고 일축하고 있다. 신기술 도입이 시작된 지난해 '빅4'의 회계감사 인력이 8% 증가했다는 사실을 예로 들었다. "인간의 개입과 판단은 어떤 감사에서든지 최고의 가치를 지닌다"는 갈라거 PwC 매니징파트너의 말이 현재 회계감사인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으로 보인다. 
 
신지선 미국공인회계사·공인내부감사사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 원수경

  • 뉴스카페
  •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