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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평생 매달린 종이접기…"아이들 위한 삶은 안 접어"
김영만 원장 "코딱지들 잘 커줘 고마워"…부침 겪는 세대로 보여 찡하기도
스마트폰에 빠진 아이들 안타까워…'종이접기' 문화 더 넓게 퍼지길
2016-05-04 06:00:00 2016-05-04 06:00:00
[뉴스토마토 이광표기자] 영원한 '종이접기 아저씨'로 불릴 것 같은 김영만 종이문화재단 평생교육원장. 그는 90년대를 추억하게 하는 사람들 중 한 명이다. 1988년 어린이 프로그램 'TV 유치원 하나, 둘, 셋'에 첫 출연한 뒤 종이 접는 기술 하나로 대한민국 어린이들의 우상이 됐다. 당시 2분 분량의 종이접기 코너를 맡았지만 그의 인기는 유명 연예인 못지 않았다. 
 
그는 자신에게 열광하는 어린이들을 향해 '우리 코딱지들'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당시 '코딱지'들은 어느덧 한 가정의 가장, 한 아이의 엄마가 돼 가고 있다. 이제 종이는 접지 못해도 코딱지들은 사회 곳곳의 최전선에서 자신의 몸을 접어가며 부침을 겪고 있다.
 
그런데 지난해 종이접기 아저씨가 다시 색종이를 들고 한 예능 방송에 출연했다. 기억 저편에 있던 아저씨의 등장에 코딱지들은 다시 동심으로 돌아갔고, 그때처럼 열광했다. 그 시절을 떠올리며 많은 위로를 받았다. 아저씨도 마찬가지로 훌쩍 커버린 코딱지들에게 위로를 받았다. 
 
방송 출연 이후 열렬한 응원을 받았던 그는 다시 그 전처럼 일상으로 돌아가 있다. 그가 반평생을 종이접기에 매달린 이유는 오로지 아이들을 위해서였다. 어린이날을 앞두고 여전히 아이들을 위한 삶을 살고 있는 그를 만나봤다.
 
 
김영만 종이문화재단 평생교육원 원장. (사진/뉴스토마토)
 
 
- 기자도 코딱지 세대여서 방송 출연이 너무 반가웠다. 최근 어떻게 지내는지
 
크게 변한건 없다. 오래전부터 강의 위주로 다녔는데 마이리틀텔레비전(마리텔) 방송 이후로 강의가 좀 많이 늘어 바빠지긴 했다. 천안에 조그만 집을 짓고 미술관을 운영하고 있어 주로 이곳에 머물며 생활하고 있다.
 
- 마리텔에서 젊은 세대들의 큰 지지를 받았다. 방송 중 눈물까지 흘렸는데
 
사실 출연 요청이 왔을때 쉽게 수락을 못했다. 그 전까지 방송일을 꾸준히 했지만 주로 교양국 일이었고 예능 프로라기에 낯설기도 했다. 마이리틀텔레비전(마리텔) 방송을 한번도 못봤던 터라 출연을 망설였다. 그런데 작가가 끈질기게 요청해줬고, 예전 TV유치원 당시 꼬맹이들이 많이 응원해 줄 거라고 하더라. "요녀석들 얼마나 컸나 보자"는 심산에서 출연을 했다. 그런데 진짜 잘 커줬더라. 방송 중간에 종이접기를 계속했는데 채팅창에 계속 눈물 모양의 이모티콘이 올라오더라.
 
종이접기만 한 두번 하고 끝내려 했는데 나도 마음이 막 찡해졌다. 녹화 끝날때까지 계속 찡한 마음이 쌓이다가 마지막에 모든 출연자를 제치고 1등을 했다길래 왈칵한 것 같다. 앞에 있던 스탭들도 모두 눈물을 보이더라. 꼬맹이었던 코딱지들이 얼마나 힘들게 살고 있는지 보였고 만감이 교차했다.
 
- 방송 이후 가장 달라진 삶의 변화가 있다면
 
일단 인터뷰가 많아졌다.(웃음)  얼굴도 많이 알려진것 같다. 예전에는 긴가민가 하던 분위기였다. 저사람 종이접기 아저씨 아닌가 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방송 이후 모두들 알아보셔서 항상 감사하게 느낀다.
 
- 가족들의 반응은 어떤가
 
와이프나 가족들은 예전부터 방송일을 오래해서 뒤에서 묵묵히 조언만 해줬다. 아들은 예능 방송 출연 소식에 "아버지 악플 좀 있을텐데요"라며 겁도 주더니 나중에는 "신경쓰지 말고 나가시라"고 응원해줬다. 와이프는 나서질 않고 뒤에서 늘 조언을 해준다.
 
- 천안에 미술관도 운영 중인걸로 안다. 어떤 공간인가
 
미술관을 운영한지는 꽤 됐다. 2009년도에 지었다. 서울 근교에 짓고 싶었지만 돈이 없었고 내려오다 또 내려오다 이곳에 '아뜨오뜨'라는 미술관을 짓게 됐다.(웃음) 시골 구석에 싼 땅을 사서 조그맣게 지었다. 현재는 개인이나 가족 손님은 못 받고,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단체 관람객들 위주로 운영하고 있다. 이곳은 종이접기도 하고 미술 체험을 하고 가는 곳이다. 꼬맹이들이 올때마다 나도 함께 아이들과 놀며 시간을 보낸다.
 
- 종이문화재단 평생교육원 원장이다. 어떤 활동을 하는지
 
종이문화재단에 적을 둔지는 굉장히 오래됐다. 종이접기를 하는 사람들이 실제 많은데 초급, 중급, 고급, 강사 등 종이접기 자격증 발부 등을 관리하고, 감독을 하는 등의 역할을 한다. 재단은 한 달에 한 두번 정도 찾는다. 
 
- 특강도 많은 걸로 알고 있다. 강단에 서면 주로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마산대학교에 아동미술교육학과가 있다. 그곳에 초빙교수로 돼 있어서 한 달에 한번씩 내려가 강의를 하고 있다. 그 곳 제자들은 졸업을 하면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선생님으로 취업을 한다. 나에게 배운 종이접기를 아이들에게 가르쳐준다. 특강은 직장인들 대상으로 인문학 강의도 하고 있고, 백화점 문화센터 같은 곳에서 어머님들과 종이접기 시간을 갖는 시간도 꽤 있다. 기업들 직무 연수 교육 같은 곳에서 강연을 하기도 한다.
 
- 다시 옛날로 돌아가보자. 종이접기를 시작한 계기가 있었을 것 같은데
 
젊은 시절 직장 생활을 하다가 광고 에이전트 사업을 하려고 했다. 동료들을 모으고 투자자도 만들었다. 그런데 그 투자자가 다른 곳에 투자 손실을 크게 보고 내 모든 사업도 수포로 돌아갔다. 일본에 있을때 였는데 졸지에 그곳에서 노숙자 신세가 됐다. 다행히 당시 일본에 있던 친구가 "할 일도 없는데 한국 가지 말고 같이 머물다 가라"고 하더라.
 
그렇게 그곳에 머물던 와중에 친구의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곤 했는데 일본 유치원에서 종이접기를 하더라. 그리고 얼마 후 귀국 해서 우리나라 유치원에 갔더니 종이접기와 관련된 커리큘럼이 전혀 없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이제 드는 생각이지만 광고 에이전트 사업이 잘 됐더라면 종이접기와 인연도 없었을 것이다. 황무지였던 종이접기 문화를 전파하게 됐고 방송과도 인연을 맺게 돼 1988년, KBS 'TV유치원'을 6년째 출연하며 종이접기 아저씨로 기억될 수 있었다.
 
- 종이접기는 어떤 효과가 있는지 궁금하다
 
지금은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종이접기 커리큘럼이 대부분 있다. 초등학교 1학년 미술 교과서에도 들어가 있다. 바람직한 일이긴 하다. 말씀드린고 싶은건 종이접기는 아이들의 인지발달 영역이다. 손가락이 발달되면 뇌신경까지 연결이 되고 창의력 발달에도 큰 도움이 된다. 최근 아이들이 스마트폰 문화에 이미 너무 빠져 있다. 어머니들에게도 간혹 한번씩 종이접기도 하고 아날로그 적인 배움의 기회를 주는 것을 늘 권하곤 한다.
 
- 코딱지들이 이제 성인이 되서 많은 부침을 겪고 있다. 응원메시지가 있다면
 
젊은 친구들을 대상으로 강연 다니면서 늘 하는 말이 있다. 첫번째 '포기하지 말라'는 것이다. 많은 젊은이들이 도전도 없이 포기하는 모습을 많이 보게 된다. 2030세대 코딱지들이 힘 내고 도전을 즐겼으면 한다. 응원하는 많은 어른들이 있다. 많은 젊은이들이 나 밖에 없다. 외롭다는 생각을 많이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기댈 곳도 많이 있다. 도전을 두려워 할 이유가 없다. 코딱지들이 힘을 냈으면 좋겠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픔을 모르고 가는 것이 청춘이다. 
 
-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강연 위주로 계속 다닐 것 같다. 그 외에 재능기부를 많이 하는 편이다. 종이문화재단과 함께 지난해에는 일본을 찾았고, 그 이전에는 몽골이나 필리핀 등을 찾아 그 곳 아이들과 종이접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보육원 등을 찾고 있는데 앞으로 더 많은 재능기부 활동을 하고 싶은 바람이다. 코딱지들 응원도 받았으니 더 열심히 해야겠다.
 
김영만 종이문화재단 평생교육원 원장. (사진제공=종이문화재단)
 
이광표 기자 pyoyo81@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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