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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현대 위험 사회와 국가의 역할
2015-07-07 06:00:00 2015-07-07 06:00:00
김인회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메르스 사태는 우리에게 현대 사회의 문제점을 다시 한번 보여주었다. 일회적이고 국지적인 사건이 국가적 재난이 되어 버리는 현대 사회의 위험성이 그것이다. 현대 사회는 구조적으로 엄청난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사람과 물자, 자본과 정보가 이동하고 있으며 엄청난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동거리와 사용 에너지의 증가는 네트워크의 증가를 의미한다. 네트워크의 증가는 그 자체로 위험의 증가를 의미한다. 좁은 도로와 하늘에 더 많은 차량과 비행기가 다니고 동일한 통신망에 더 많은 자본과 정보가 오가므로 위험이 늘어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 위험이 일시적이고 국지적인 것이 아니라 항상적이고 전국적 혹은 전 세계적 재난으로 될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의 문제점은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간다.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더 위험하다. 그 이유는 첫째, 물적 장비의 노후, 둘째, 구조조정으로 인한 숙련 인력의 부족, 셋째, 규제 완화의 열풍 때문이다. 박두용 한성대 교수의 지적이다.
 
물적 장비의 노후화는 IMF 이후 투자의 부진으로 새로운 장비가 투입되지 않아 비롯된 것이다. 대표적으로 세월호는 도입 당시 18년된 배였다. 숙련인력의 부족은 비정규직화, 고령화, 외주화로 인한 것이다. 책임감 있는 숙련인력 부족은 위험을 현장에서 대응하지 못하게 만든다. 세월호 참사시 살아남은 선장은 승객에 대한 책임보다는 선사에 대한 책임이 앞섰다. 그는 1년짜리 계약직이었다.
 
메르스 사태에서는 병원의 비정규직이 검사의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규제완화 역시 한국 사회의 위험을 증가시킨 주범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규제를 쳐부숴야 할 원수, 암 덩어리로 불렀다. 박 대통령이 2014년 3월 20일 주재한 제1차 규제개혁장관회의가 열린 이후 1달이 되지 않아 세월호 참사가 터졌다. 메르스 사태에서는 규제에서 벗어난 삼성서울병원이 초기의 대응을 좌우했다. 심지어 삼성의 실패를 국가의 실패라고 강변했다.
 
현대 사회의 구조적 위험성은 국가와 공동체의 역할변화를 요구한다. 먼저 외부의 침입을 지키는 안보 중심의 국가가 아니라 사건과 위험으로부터 개인과 사회를 지키는 국가가 필요하다. 민간 사회 역시 사건과 위험으로부터 개인을 지키는데 부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그만큼 현대 사회의 위험은 국가와 공동체, 개인의 존속 자체를 위협하는 중대한 문제이다.
 
국가와 민간이 모두 현대 사회의 위험에 대응해야 한다면 국가와 민간의 관계설정이 중요하다. 이번 메르스 사태는 국가와 민간의 관계설정이 완전히 파탄 나면서 사건을 참사로 만들어 버렸다. 대형 참사, 대형 위험에 대한 대응에서 중요한 역할분담은 세 가지가 있다. 첫째, 과학과 행정의 역할분담, 둘째, 현장과 중앙의 역할 분담, 셋째, 공공과 민간의 역할분담 등이 그것이다.
 
첫째, 현대형 재난은 과학으로 분석하고 예측할 수 있다. 하지만 과학이 전부는 아니다. 과학에 기반하면서도 과학이 예측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다. 이번 메르스 사태에서는 의학이 확률적으로 예측하지 못한 부분에 대한 창조적, 예방적 대응이 없었다. 국가는 자신의 책임을 의학이라는 좁은 틀에 맡겨버렸다. 과학을 신뢰하면서도 과학이 예상하지 못한 부분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다.
 
둘째, 현대형 재난은 현장과 중앙, 지방과 중앙이 모두 충분히 작동되어야 대처할 수 있다. 국가적인 초대형 재난이기 때문이다. 시급한 결정은 현장과 지방이 내려야 한다. 이렇게 하려면 중앙은 지휘체계를 유지하면서도 권한을 현장과 지방에 이양해야 한다. 이번 메르스 사태에서 중앙은 권한만 가지고 있었지만 실제적인 결정을 내리지 않아 사건을 참사로 만들어 버렸다.
 
셋째, 현대형 재난은 공공과 민간이 협동해야 대처할 수 있다. 이 관계는 책임의 정도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중심을 잡고 민간 영역과 협조하고 공동 활동을 해야 한다. 이번 메르스 사태에서도 민간 병원과 전문가들의 도움 역시 필요했다. 그러나 역시 민간의 활동은 제한적이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중심을 잡고 재난을 해결했어야 했다. 공공서비스를 자본의 논리로 접근하는 민간보다는 공공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더 안전한 판단을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메르스 사태는 대표적인 현대적 재난이다. 세월호와 유사하다. 국가가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해 일회성의 사건을 국가적 재난으로 만들었다는 점에서도 유사하다. 국가가 과학과 행정, 현장과 중앙, 공공과 민간의 역할분담에서 길을 잃고 책임을 지지 않는 최악의 길을 선택했다는 점에서도 유사하다. 세월호에 대한 진상규명이 필요한 것처럼 메르스 사태에 대한 국가의 역할에 대한 진상규명과 대책마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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