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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 먹고 주인 폭행한 뒤 도주…'무죄'
법원 "무인 가판대서 취식…절도범으로 보기 어려워"
2015-07-02 06:00:00 2015-07-02 06:00:00
50대 남성 최모씨는 지난해 8월 새벽 1시쯤 술에 취해 A씨가 운영하는 과일 가게에 들어갔다. 이 과일 가게는 진열된 과일이나 야채를 고객이 직접 포장해서 가져가고 그 대금은 비치된 바구니에 넣는 '무인 가판대'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최씨는 주인 A씨가 자리에 없는 사이에 진열된 토마토, 포도 등 과일 2만원 어치를 돈을 내지 않고 그 자리에서 먹었고, 계속해서 냉장고를 뒤졌다. 마침 가판대를 정리하러 온 A씨는 이 상황을 목격하고 최씨에게 "안 가면 경찰에 신고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최씨는 주먹으로 A씨의 얼굴을 때려 넘어뜨리고 옆구리를 발로 찼다. 그러면서 "너 내가 누군지 아느냐, 말 한마디면 니네 가족도 없애버릴 수 있는 사람이야. 자식이 죽어서 부모 마음이 슬픈 거보다 더 슬프게 할 수 있어. 그게 조직폭력배야. 어디 감히 신고를 한다고 그러느냐"는 등 폭언하면서 A씨를 밟고 도망쳤다. 최씨는 자신을 뒤쫓아 온 A씨를 재차 발로 차고 경찰과 통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 휴대전화를 빼앗기도 했다. 
 
A씨의 신고로 검거돼 재판에 넘겨진 최씨는 그러나 '무죄'를 선고 받았다.
 
서울고법 형사4부(재판장 최재형)는 '준강도' 혐의로 기소된 최씨에게 유죄를 선고하려면 우선 최씨가 '절도범'이라는 전제가 성립해야 하는데 최씨에게 절도의 의사가 있다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준강도죄'란 절도범이 재물을 뺏을 때 훔친 재물을 다시 뺏기지 않으려고 저항하거나 범죄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폭행이나 협박을 하는 범죄를 말한다. 범죄를 저지르기 위한 목적으로 폭행이나 협박을 가하는 '강도죄'와는 차이가 있다.
 
재판부는 "이전에도 과일 가게를 이용해 본 적이 있어 운영방식을 알고 있던 피고인이 A씨가 나왔을 때 곧바로 도망가거나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그 장소에서 계속 과일을 먹고 냉장고를 뒤지면서 약 20분 정도를 A씨와 함께 머물러 있었다"면서 "대금을 바구니에 넣지 않은 상태에서 토마토 등을 먼저 먹은 행위 자체에 대해 절도의 범의를 인정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A씨가 처음 112에 신고하면서 '모르는 사람이 음식도 훔쳐먹고 때리려고 한다'는 내용으로 신고를 하기는 했으나 줄곧 '피고인을 봤을 때 도둑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물건 값을 받을 생각도 없었으며, 가판대 정리를 위해 빨리 내보내고 싶은 생각밖에 없었다'고 진술했다"면서 토마토 값을 내라고 요구한 적도, 이에 대해 문제를 삼은 적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최씨에 대해 '처음부터 토마토 값을 내지 않으려고 A씨를 폭행·위협한 후 도주했다'는 검사의 주장보다는 '토마토 등을 먹은 후 감자를 찾기 위해 냉장고를 뒤지던 중 나가라고 요구하며 신고까지 언급한 A씨의 태도에 화가나 폭행했고 그 과정에서 의도와 달리 대금을 지불하지 못하게 된 것'이라는 주장 더 설득력 있다고 본 것이다. 
 
검사는 "피해자의 진술은 '늦은 시간에 과일 값을 받기 위해 승강이 하기보다는 빨리 정리한 후 귀가하려고 했다'는 취지의 의사표현이므로 절도의 범의를 부정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면서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문제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서라도 먹은 토마토 값을 지불하고 갔겠지만 최씨는 끝내 돈을 내지 않았다"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법원 관계자는 "만약 폭행죄로 기소했다면 선고 결과가 달라졌을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조승희 기자 beyond@etomato.com
 
자료사진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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