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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진실을 밝히기 위한 소년의 외로운 싸움
'싸우는 소년' | 오문세 지음 | 문학동네 펴냄
2015-06-12 08:00:00 2015-06-17 15:02:32
'싸우는 소년'. 제목이 도발적입니다. 소년이라는 단어 앞에 으레 요구되는 착하고 바른 가치 대신 '싸우는'이라는 수식어가 붙었습니다. 게다가 이 책에는 문학동네 청소년 시리즈라는 타이틀도 붙어 있습니다. 제목에서 짐작 가능하듯 질풍노도 시기를 온 몸으로 겪는 청소년이 이 책의 주인공입니다.
 
'싸우는 소년'은 작가 오문세의 두번째 소설입니다. 저자는 첫번째 소설 '그치지 않는 비'로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을 수상하며 신형철 문학평론가로부터 "언젠가는 한국어로 씌어진 '호밀밭의 파수꾼'의 저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평을 듣기도 했습니다. 청소년 소설 같지 않은 청소년 소설, 어른과 청소년이 함께 읽으며 공감할 수 있는 소설 '싸우는 소년'을 소개합니다.
 
◇싸워야 할 때는 싸워야 한다고 말하는 소설
 
소설은 병원에 누워 있는 소년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됩니다. 교통사고로 다쳐 호흡기에 의존하고 있는 소년은 병실에서 운동부 학생인 안승범에 대한 전의를 다집니다. 교복 안주머니에 간직한 소년의 유서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무에게도 발견되지 않았고 그저 트럭의 뺑소니 사고로만 결론이 나 버렸습니다.
 
소년이 치료를 받는 동안 병원이라는 작은 세계가 소년의 눈 안에 들어옵니다. 누군가를 때려주기 위해 복싱을 시작한 산이 누나, 산이 누나더러 예쁘다는 말을 달고 사는 트레이너 주 관장, 맥락 없는 질문을 던지는 박 할아버지, 사람들의 숨은 특질을 간파해 새로 묘사하는 도도새 아줌마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아, 규칙적으로 찾아와 노트를 던져주는 얼굴 예쁜 반 친구 양아영도 있습니다. 병원에서 만난 이들은 소년에게 성장의 계기를 제공합니다.
 
퇴원 후 소년은 주 관장의 권투 도장을 찾아갑니다. 머릿속으로만 수 없이 내뻗던 펀치를 실현하기 위해, 싸움의 결말을 내기 위해 소년은 고군분투합니다.
 
'싸우는 소년'은 작가의 두 번째 소설이지만 사실 첫 소설보다 먼저 쓰고자 했던 글이라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제목도 쉽게 지어졌다고 하네요. 작가는 "보통 '싸우지 말아라, 사이 좋게 지내라' 라는 말들을 하는 데 학교 다닐 때부터 그런 말이 너무 싫었다"며 웃었습니다. 이 책은 싸움에 대한 개념을 명확히 해보고 싶었다는 작가의 오랜 생각이 마침내 구체화된 책입니다.
 
아이들에게 '스스로 나서서 행동하라'는 메시지를 은연 중에 던지는 작가의 글을 보며 자연스럽게 4.16 참사가 떠올랐습니다. 책에는 4.16과 관련한 구절이 단 하나도 등장하지 않는데도 말이죠. 오 작가는 "4.16 전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고 4.16 이후 많은 분들처럼 오랫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4.16 이후의 생각이 반영된 부분은 있을 것"이라면서도 "특정시간을 대변하는 글을 쓰고 싶지는 않다. 10년, 20년 후에 읽어도 지금의 일처럼 읽히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이 책의 장점은?
 
학원 강사를 했었다는 오문세 작가. 현실 속 아이들을 많이 만나봤기 때문일까요. 학교 현장이 현실감 있게 그려진 점도 눈길을 끕니다. 작가는 "어른들이 생각하는 청소년의 깊이는 사실 편협할 때가 많다"면서 "소설을 쓸 때 굳이 청소년 눈높이에 맞춰 '이 정도면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쓰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영화 블로거로도 활동하는 작가답게 영화의 컷 구성을 연상시키는 소설의 흐름도 눈길을 끕니다. 병원과 학교, 분식집 등 여러 공간들을 표현할 때 마치 카메라를 특정 장소에 위치시키고 렌즈로 공간과 그곳의 사람들을 바라보듯 특정 시각에서 구도를 그리고 이야기를 전개하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무엇보다도 '싸우는 소년'은 청소년 문학으로 분류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 전반에 대한 일종의 비유처럼 읽혀 흥미를 끕니다. '진실을 밝히기 위해 싸워야 한다'는 내용이 세대를 불문하고 울림을 주지요. '싸우는 소년'을 통해 결국은 나를 돌아보게 하는 소설입니다.
 
김나볏 기자 freenb@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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