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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 뿌리깊은 비리·부패관행 바꿀까?
사립교원·언론사 등 '갑질' 사각지대 해소 기대
평등권·과잉금지원칙 위배 등 위헌요소 여전
2015-03-03 18:00:41 2015-03-03 18:00:41
[뉴스토마토 박민호기자] 3일 숱한 논란끝에 국회를 통과한 이른바 '김영란법'은 우리 사회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위헌 소지와 수사기관의 악용 가능성 등 여러 우려들이 있지만, 어쨌든 그동안 법망을 피해 살아남아온 '뒷돈 거래'나 '정(情)'이라는 미명 아래 이뤄진 검은 거래 등 뿌리깊은 관행이 근절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많다. 우리 사회의 '투명성'이 획기적으로 제고될 것이라는 기대다. 
 
김영란법이란 지난 2012년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처음 추진했던 법안으로, 정확한 명칭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다.
 
이 법은 우선 공무원이 직무 관련성이 없는 사람에게 100만원 이상의 금품이나 향응을 받으면 대가성이 없어도 형사처벌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하고 있다.
 
특정직무를 수행하는 공직자에게 법령을 위반하게 하거나 지위 또는 권한을 남용하게 하는 부정청탁과 알선 행위도 모두 처벌 대상이다.
 
현행법은 대가성과 직무관련성 모두 입증해야 형사처벌을 할 수 있었지만, 김영란법은 이를 피해가는 교묘한 부정부패를 완전히 뿌리 뽑자는 게 입법 취지다.
 
법적용 대상자는 국회, 법원, 정부와 정부 출자공공기관, 공공유관단체, 국공립학교 뿐 아니라 사립학교 교직원 그리고 모든 언론사로 확대됐다.
 
여야 합의 막판에 과잉 입법 논란이 있어 법 적용 대상 가족 범위는 배우자로만 한정됐지만 여전히 범위는 상당하다. 현재 추산으로는 약 300여만명이 법적용 대상이다.
 
법적으로 김영란법은 특정인만을 대상으로 하는 이른바 신분범으로, 가장 많은 잠재적 범죄집단을 가진 셈이다.
 
김영란법은 어떤 경우에 누구에게 적용될까. 또 본래 입법 취지대로 부정·부패가 곳곳에 만연한 우리 사회를 변혁시킬 수 있을까.
 
우선 가상 문답으로 풀어보자.
 
-일반 행정직 공무원이 증권업계에 종사하는 친구를 만나 1년간 200만원 상당의 저녁자리를 제공받았다면.
 
▲이런 경우가 모호한 경우다. 법상 공무원이 1회에 100만원 이상, 1년에 300만원 이상의 금품을 받았다면 직무관련성과 관계없이 형사처벌된다. 1회 100만원 이하, 1년 300만원 이하의 금품을 받았다면 직무와 관련 있는 경우에만 액수에 따라 과태료가 부과된다.
 
다만, 식사나 술자리처럼 자기 외에 다른 참석자가 있다면 소요된 금액을 참석자별로 나눠야 한다. 공무원이 단 둘이 1년간 만나 200만원어치가 넘는 식사를 대접받았다면 100만원 상당의 금품을 수수한 것으로 간주돼 형사 처벌된다.
 
그러나 200만원이 채 되지 않는다면 직무와 관련 있는 경우에만 액수에 따라 과태료가 부과된다. 불과 몇만원 차이로 형사처벌과 행정벌인 과태료 대상이 된다. 공무원이 마음만 먹으면 형사처벌은 피할 수 있다.
 
-국회의원 보좌관이 피감기관 직원으로부터 축의금을 받으면.
 
▲결혼 축의금은 금품수수의 예외다. 김영란법은 금품수수와 부정청탁 행위에 대해 각각 7개씩 예외를 두고 있는데 경조사비, 음식물, 선물은 향후 시행령으로 정하는 범위 내에서 예외로 인정된다. 현행 공무원 행동강령은 식사 대접과 선물은 3만원, 부조는 5만원까지 인정된다.
 
또 공직자 등과 관련된 직원상조회, 동호인회, 동창회, 향우회, 친목회, 종교단체, 사회단체 등이 정하는 기준에 따라 제공하는 금품도 상당한 수준 내에서는 법 적용이 제외된다.
 
이와 함께  소속 구성원 등 공직자와 특별히 장기적·지속적인 친분관계를 맺고 있는 자가 질병·재난 등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는 공직자에게 제공하는 금품, 공직자의 직무와 관련된 공식적인 행사에서 주최자가 참석자에게 통상적인 범위에서 일률적으로 제공하는 교통숙박 음식물의 금품 등 역시 법 적용 대상이 아니다.
 
다만 공무원직에 있는 보좌관이 자신이 보좌하고 있는 의원의 세를 이용하거나 직무와 관련된 일을 언급하면서 과도한 부조금을 요구한다면 액수에 따라 과태료나 김영란법에 따른 형사처벌, 형법상 뇌물수수 등으로 기소될 수 있다.
 
-공공기관에 근무하는 직원의 며느리가 150만원어치 백화점상품권을 하도급 업체 직원에게서 받으면.
 
▲처벌받지 않는다. 당초 며느리가 시아버지와 동거하는지 아닌지 여부에 따라 처벌이 달랐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국회 여야 협상을 통해 김영란법의 적용 대상을 공직자와 그 배우자로만 한정했다.
 
배우자가 수수 금지 금품 등을 받거나 요구하거나 제공받기로 약속한 사실을 알고도 신고하지 않은 공직자는 김영란법에 의해 처벌된다. 다만 공직자 등 또는 배우자가 수수금지 금품 등을 반환 또는 인도하거나 거부의 의사를 표시한 경우는 제외한다
 
그러나 김영란법상 처벌대상이 아닌 며느리더라도 백화정상품권을 주고받은 액수나 경위, 사후형법상 뇌물수수나 특가법상 알선수재 혐의 등으로 기소될 수는 있다.
 
-언론사 또는 기자가 문제가 있는 기사를 덮어달라는 청탁을 받고 금품이나 향응을 받는다면.
 
▲직무관련성이 있기 때문에 처벌대상이다. 1회에 100만원 이상, 1년에 300만원 이상의 금품을 받았다면 직무관련성과 관계없이 형사처벌된다. 1회 100만원 이하, 1년 300만원 이하의 금품을 받았다면 직무와 관련 있는 경우에만 액수에 따라 과태료가 부과된다.
 
금품을 받은 경우 뿐만 아니라 향응을 대접받은 경우도 같다. 접대골프 등이 대표적인 예다. 이 외에 유가증권, 부동산 숙박권, 관람권, 골프, 교통, 숙박, 취재시 차량제공도 예외가 아니다. 받는 사람도 처벌되지만 주는 사람 역시 처벌된다.
 
-정부기관이나 업계에서 자발적인 기자간담회를 개최했을때 점심을 제공받는다면 기자는 처벌받나.
 
▲흔히 기자간담회 설명회를 통해 언론사 기자들이 기관장들이나 주요 임원들과 함께 점심이나 저녁자리를 제공받는 경우가 많다. 기존에는 해당 기관장 이름으로 법인카드로 계산하고 추후 선물이나 고가의 기념품 등도 오간다.
 
흔히 제 밥값을 내는 기자는 없기 때문에 앞으로 이런 자리가 없어지게 되고 혹은 기자들이 각자 추렴해서 계산해야 한다.
 
설, 추석 등 각종 명절에 자택으로 직접 배달되는 출입처 선물도 향후 시행령으로 정하는 범위 내에서만 예외로 인정된다. 단, 골프채나 고가의 회원권 등이 아닌 상식적으로 인정되는 범위내에서 결혼 축의금과 같은 개념으로만 인정된다.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기소됐으나 '연인'이라는 이유로 대가성과 직무관련성이 입증되지 않아 무죄를 받은 경우는.
 
▲판사출신 지역 변호사로부터 사건 청탁 등을 대가로 고가의 벤츠를 선물받은 여검사 사건에서 법원은 '사랑하는 사이에 오간 선물'이라며 무죄를 선고했다. 대가성과 직무 관련성이 입증되지 않은 현행법상 허점을 노린 것이다.
 
그러나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이런 꼼수는 허용되지 않는다. 1회에 100만원 이상, 1년에 300만원 이상의 금품을 받았다면 직무관련성과 관계없이 형사처벌된다.
 
이같은 사례를 살펴 보면 김영란법의 순기능은 당연히 인정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려를 사고 있는 것이 위헌적 요소에 대한 해결 없이 미봉책으로 법안 처리가 이뤄진 점이다.
 
우선 언론사의 경우는 공익성과 투명성을 담보하기 위한 취지에서 적용대상에 포함됐다. 그러나 공익성을 따진다면 변호사나 의사 역시 달리 볼 것은 아니다. 실제 법적용으로 처벌 대상이 될 경우 이런 문제 때문에 헌법상 평등권 침해로 위헌법률심판 및 헌법소원 심판이 봇물을 이룰 수 있다.
 
청탁 개념의 모호성 역시 해결되지 않은 상태다. 이점 역시 헌법상 명확성 원칙이나 과잉금지 원칙에 위반돼 위헌 소지가 있다는 것이 법조계 중론이다.
 
그러나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수사기관의 수사권 남용 가능성이다. 김영란법으로 공무원이나 사립교원, 언론사 등은 잠재적인 범죄집단이 됐다. 비슷한 사례에서 공무원은 형법상 뇌물죄 외에 김영란법이 동시에 또는 선택적 적용이 가능하다. 사립교원이나 언론사에 대해서 검찰은 김영란법 적용과 함께 운신의 폭이 매우 넓어졌다. 때문에 표적수사까지 가능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안을 처리 중인 국회에서도 김영란법 처리과정에서의 문제점이 지적된다.
 
3일 새누리당 홍일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간사는 "이법 처리 과정에 대해서는 반성문을 쓰지 않을 수 없다"며 "정무위를 통과한 법이 법사위에 회부됐으면 법사위가 고유권한을 발휘해서 소위 회부해서 수정을 하던가 하는 과정 밟았어야 했는데 그렇게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파장도 크고 양당 사이에 크게 걸려있는 문제다보니 소위에서 쉽게 결정할 수 없는 법"이라며 "이렇게 영향력이 큰 법일수록 더 꼼꼼하고 철저하게 따져보는 과정을 거쳤어야 했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반면 긍정적인 시각도 없지 않다. 적은 규모지만 관행적으로 진행 되어 온 우리나라의 이른바 '갑질문화'를 바로잡을 수 있는 계기라는 평가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정례적인 촌지나 과도한 거마비 등 이미 정(情) 차원에서 금품이 오고가는 문화가 이미 끝난지 오래됐지만 이를 규율하는 법이 없었다"며 "김영란법이 이런 역할을 해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에 대해 정치권에서도 대체적으로 기대와 환영의 입장을 내비쳤다.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은 "이 세상에 완벽한 법은 없다"며 "하지만 김영란법은 일종의 의식혁명이며 부작용을 최소한 하는 선에서 시행해보면서 일부 시행개정안으로 보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새정치연합 박완주 대변인은 "부분적으로 아직 완벽하다고는 볼수가 없지만 그동안 공직사회에서 만연했던 부패와 비리를 어느정도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큰 걸음이라고 본다"며 "유예기간동안 본법의 기본 취지를 훼손하지 않는 쪽에서 국민들을 설득하고 조정해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진=박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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