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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산업 전망)회장님은 '부재중'..요동치는 재계
2014-12-29 11:00:00 2014-12-29 14:23:55
[뉴스토마토 이상원기자] 유가는 바닥을 모른 채 폭락하고, 환율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급격한 대외적인 경영환경 변수만큼이나 재계의 집안 정리도 해법을 찾기가 어려울 만큼 복잡하다.
 
회장님은 병상에 있거나 수감 중이고, 3세로의 경영권 이전은 아직 미완성이다. 일부에서는 경영권을 놓고 형제 간의 암투까지 벌어지고 있다. 내년에도 이 같은 상황은 지속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건희 회장 일어설까
 
재계를 대표하는 삼성부터 중대한 고민을 내년까지 끌고 가게 생겼다. 이건희 회장의 건강문제다. 이는 경영권 승계와 직접 맞닿아 있어 고민의 폭이 크다.
 
이 회장은 지난 5월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이후 7개월째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쓰러진 직후 비서진의 메뉴얼 대응으로 심폐소생술과 막힌 혈관을 넓혀주는 스텐트 시술까지 마쳤지만, 생명에만 지장이 없을 뿐 더 이상의 진척은 없는 상황이다.  
 
신체기능이 회복됐을 뿐 사람을 알아본다거나 손짓 혹은 눈짓 등으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인지능력은 여전히 되찾질 못하고 있다. 
 
ⓒNews1
 
이 회장의 회복 여부는 그의 존재감 만큼이나 삼성의 사활이 달려 있는 중차대한 문제다.
 
장남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사실상 후계구도를 완성하면서 경영 전면에 나서고 있지만, 부친의 존재 자체를 대신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의 경영능력에 대한 의문도 여전하다. 이 부회장이 연말 인사에서 친정체제 구축보다는 조직의 안정을 택한 이유다. 그만큼 이 회장의 그늘은 크고도 짙다.
 
만약의 상황이 발생할 경우 상속문제도 큰 파장을 가져올 수 있다. 유언의 유무가 쟁점이 되거나, 혹여 자녀들 사이에서 갈등이 발생할 경우 삼성가의 상속문제가 국가경제 전체로까지 번질 우려도 있다.
 
상속재산 자체의 규모도 이 회장 와병 이전과는 상당히 달라졌다. 그간 시장의 상장설을 극구 부인하던 삼성SDS와 제일모직(구 에버랜드)이 잇달아 시장에 공개되면서 이건희 회장 일가의 주식만 지난해의 두 배 수준인 26조원 가치를 지니게 됐다. 이중 절반이 이 회장의 몫이다.
 
◇회장님들 특사에 관심 집중
 
죄값을 치르느라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없는 회장님들도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이재현 CJ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등이 주인공.
 
최태원 회장은 횡령 및 배임 혐의로 지난해 1월 징역 4년의 실형을 받고 법정구속됐다. 현재 재벌총수 최장기간 수감생활 기록을 경신 중인 최 회장은 내년 1월이면 형기의 절반을 채우게 된다. 동생인 최재원 수석부회장마저 옥중생활을 이어가면서 SK그룹은 수장들을 잃었다.
 
이재현 회장 역시 횡령과 배임, 탈세 혐의로 지난해 7월 구속기소된 후 실형과 싸우고 있다. 1심에서 4년, 2심에서 3년으로 형량은 줄었지만, 집행유예를 얻어내지는 못했다. 현재 대법원의 최종 판단만을 남기고 있는 상황. 이 회장은 신장이식 수술 후유증에 근육이 수축되는 유전병까지 앓으며 병마와도 힘겹게 싸우고 있다.
 
김승연 회장은 지난 2월 집행유예로 풀려나면서 신체적인 자유를 얻었으나 대표이사직 복귀를 제한받는 등 유죄판결의 후유증에서는 벗어나질 못했다. 경영활동에 제약이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
 
ⓒNews1
 
한 가지 희망적인 것은 연말 정치권발로 시작된 '사면' 바람이다.
 
사면 얘기가 '가석방'이라는 단어로 제한되면서 대상이 최태원 회장으로 좁혀지고 있지만, 사면 폭이 커질 경우 대상은 다른 회장들에게까지 확대될 수 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내각에서 사면 총대를 멘 가운데 여야도 지원사격에 나섰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경제를 살리는데 나서라는 차원에서라도 기회를 줘야 한다. 사면이든 가석방이든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하자, 박지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도 "기업인을 불이익주는 것도 안 된다"며 맞장구를 쳤다.
 
앞서 9월 기업인 사면론을 처음으로 제기한 최경환 부총리와 황교안 법무부장관이 쌍수를 들고 환영하고 나선 것은 당연했다. 청와대는 "가석방은 법무부장관의 권한"이라며 이후 있을 책임론에서 한 발 빼는 모양새를 취했다. 수순밟기라는 해석이 즉각 나왔다. 
 
그동안의 관례를 보면 연말을 넘길 경우 사면이 가능한 가장 빠른 시점은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 2주년인 2월25일이나 3.1절이 될 공산이 크다. 다만 재벌가 3세의 부도덕이 그대로 드러난 '땅콩 회항' 파문이 연말 우리사회 전체를 떠들썩하게 되면서 유탄을 맞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만은 없게 됐다. 회장님들의 명운을 가를 카운트다운은 이미 시작됐다.
 
◇'3세경영' 개막..축포는 아직
 
회장들의 부재가 계속되고, 2세대의 고령화마저 진행되면서 재벌가 3세들이 경영 전면에 나서는 모습도 심심찮게 나타나고 있다. 3세 시대의 개화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 5월 이건희 회장이 쓰러진 이후 경영 전면에서 얼굴을 내밀고 있다. 백혈병 문제나 삼성전자서비스 위장도급 논란 등 물밑에서 그룹의 최대 고민거리를 해결하는 한편, 밖으로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응우옌푸쫑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 등 해외 정상들을 만나며 광폭적인 경영외교를 펼치기도 했다. 지난달 한화그룹에 정유·화학과 방위산업 계열사 4곳을 넘기는 빅딜을 성사시킨 것도 이 부회장의 작품이다.
 
아울러 경영권 승계 작업에도 가속도를 냈다. 그룹 차원에서 단행된 지배구조 재편의 중심에는 이재용 시대가 자리하고 있다. 이 회장의 와병생활이 해를 넘기는 내년에는 이 부회장의 경영활동이 더욱 과감하게 진행될 가능성도 크다.
 
현대차그룹 역시 정의선 부회장의 활동범위가 확대되는 모습이다. 한전 부지 입찰과정에서 보듯 정 회장의 카리스마가 여전히 괴력을 발휘하고 있지만, 정 부회장을 중심으로 한 승계구도의 밑바닥 다지기도 차근차근 진행되는 모습이다. 삼성이 경영권 승계로 여론의 중심에 설 때 현대차도 함께 진행해야 시선이 한 곳으로 쏠리는 현상을 막을 수 있다.
 
정 부회장의 경영력은 이미 검증됐다는 게 안팎의 일치된 평가다. 기아차 사장 시절에는 피러 슈라이어 현 현대기아차 디자인 총괄사장을 영입해 디자인 경영을 성공적으로 이끌었고, 최근 BMW 고성능차 개발 총괄책임자인 알버트 비어만 부사장을 영입해 현대차그룹의 고성능 자동차 브랜드 'N'의 시동을 걸었다. 올해부터 현대차가 '월드랠리챔피언십(WRC) 랠리'에 참가하는 것도 정 부회장의 뜻이 적극 반영된 결과다.
 
경영권 승계를 위한 사전정리도 상당한 진척을 이뤘다. 정 회장의 측근으로 분류되던 박승하 현대제철 부회장과 최한영 현대차 상용차담당 부회장, 설영흥 부회장이 올해 물러난 것도 정 부회장 체제를 탄탄히 하기 위한 정지작업으로 해석된다.
 
이재용, 정의선 부회장처럼 승계구도를 이른 시간에 그려 놓지는 못했지만 그룹에서의 입지를 빠른 속도로 확대해 가는 3세들도 적지 않다. 대부분 올해 임원으로 발탁돼 내년의 활동이 더욱 주목받게 됐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장남인 구광모 그룹 시너지팀 부장은 지난달 말 상무로 전격 승진했다. 차장 승진 2년 만에 부장으로, 다시 부장 승진 2년 만에 기업의 '별'이라는 임원으로 승진했다. 지난 26일에는 (주)LG의 주식 190만주를 추가로 취득해 그룹 지주사 3대 주주로 자리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장남 김동관 실장 역시 지난 24일 있었던 그룹 임원인사에서 상무로 승진했다. 2010년 (주)한화 입사 이후 5년만의 초고속 승진이다. 김 상무는 그룹 내 태양광사업을 총괄하고 있다. 경영능력에 대한 평가가 달려있는 만큼 그룹 차원에서 전격적 지원이 진행되고 있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외아들인 선호씨는 CJ제일제당 영업점에서 평사원으로 근무 중이지만 최근 신설된 CJ올리브네트웍스의 주주명단에 올라 눈길을 끌었다. CJ올리브네트웍스는 지난 2일 그룹 시스템통합(SI) 업체인 CJ시스템즈와 헬스·뷰티 스토어 CJ올리브영의 합병으로 재탄생한 회사다. 전통적인 대기업들의 승계구도에서 SI업체의 역할을 감안할 때 이번 주식이동 역시 승계과정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 '형제의 난'은 계속된다
 
이미 승계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한 곳도 여럿 있다. 효성그룹은 조석래 회장 아래로 아들 삼형제가 사이좋게 지분을 배분받았지만 둘째 아들이 그룹을 박차고 나오면서 일이 터지시 시작했다.
 
조 회장의 차남인 조현문 전 효성 부사장은 형인 조현준 사장, 동생인 조현상 부사장과 후계자 자리를 놓고 치열한 물밑 경쟁을 펼치다가 지난해 2월 돌연 회사 경영에서 물러났다. 효성과의 단절을 선언하고 국내 로펌으로 자리를 옮기며 변호사의 길을 걷기 시작한 그가 돌연 친정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조 변호사는 지난 7월 형과 동생을 직접 겨냥해 100억원대 횡령 및 배임 혐의를 수사해 달라고 검찰에 고발했고, 10월에도 형과 계열사 임원 8명을 배임 및 횡령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조 변호사는 효성을 바로 잡기 위해 노력했지만 내부 비리세력의 모함을 받아 회사에서 쫒겨났고, 잇단 형사고발은 이를 바로잡기 위한 행동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급기야 조 변호사가 자신을 설득하기 위해 찾아간 조석래 회장을 문전박대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면서 '형제의 난'은 폐륜 논란으로까지 확대됐다.
 
연말 잠잠했던 효성가 형제의 난은 연초에 다시 확전 양상을 보일 전망이다. 조 변호사가 자신이 주주로 있는 효성 계열사 3곳의 회계장부를 열람할 수 있게 됐기 때문.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23일 조 변호사가 트리니티에셋매니지먼트와 (주)신동진, 노틸러스효성 등을 상대로 낸 회계장부 등 열람 및 등사 가처분 신청을 일부 받아들였다.
 
조 변호사는 지난 여름 형제들을 고발하기에 앞서 이 세 회사를 상대로 회계장부 등 열람 및 등사 가처분신청을 제기한 바 있다. 트리니티와 신동진은 효성그룹의 부동산을 관리하는 계열사로 형인 조현준 사장과 동생인 조현상 부사장이 최대주주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 간의 금호가 '형제의 난'은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2006년 대우건설, 2008년 대한통운을 인수한 이후 유동성 위기에 빠진 금호그룹을 두고 형제 간 이견이 드러났고, 이후 금호아시아나그룹과 금호석유화학그룹으로 갈라섰지만 싸움은 계속하고 있다.
 
올해 3월 아시아나항공이 정기 주주총회에서 박삼구 회장을 사내이사로 선임하자 박찬구 회장 측이 주총결의 무효화와 박삼구 회장의 직무집행을 정지해 달라는 소송을 냈고, 금호아시나아그룹은 금호석유화학에 아시아나항공주식을 금호산업에 매각하라는 소송으로 맞불을 놨다.
 
급기야 지난 9월에는 박찬구 회장이 박삼구 회장을 배임혐의로 고발했고, 이는 검찰의 비자금 수사로까지 확대됐다. 형제 간 싸움이 그룹 간 전면전으로 비화되면서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 아시아나항공 등 연말 주요 계열사들이 워크아웃에서 졸업했음에도 박삼구 회장은 새해에도 웃을 수만은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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