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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어주는기자)소녀, 은밀하게 음란해도 괜찮을까?
<가시내> 마리 다리외세크 지음 | 최정수 옮김 | 열린책들 펴냄
2014-11-22 09:10:57 2014-11-22 09:10:57
 
 "살아 있는 소녀들에 대해 사람들이 아무것도 모를 수가 있을까."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글로 시작하는 소설 <가시내>는 표면적으로 1970~80년대 프랑스의 소도시 클레브에 사는 소녀 솔랑주가 초경를 겪고 첫 경험에 이르는 과정을 그린 성장 소설이다. '프랑스의 가장 논쟁적인 작가'로 꼽히는 저자 마리 다리외세크가 쓴 이 책은 그녀가 14~17세 때 녹음한 일기를 소설로 만들어 생동감을 더했다.
 
소설은 사춘기 성을 다룬 다른 책들보다 구사하는 표현이 대단히 강렬해 주목받기도 했다.  강렬한 표현을 통해 욕망을 욕망하고 금기를 금기하라고 외치는 것 같다. 프랑스 주간지 <렉스프레스>가 책에 남성의 성기를 뜻하는 비속어가 63회 출현하는 것은 과하다고 지적할 정도였다. 작가는 글쓰기에 대해 "말해지지 않은 것을 말하기"라고 했다. 글은 말하듯이 써야 한다던 프랑스 계몽사상가 볼테르가 "사람들은 할 말이 없으면 욕을 한다"고도 했다는 게 함께 떠오른다.
 
그러나 이 소설의 진국은 그런 '비속한' 단어를 쓰면서 기성 사회와 관계하려는 청소년과 그 단어의 정확한 의미를 가르치지 않는 사회를 드러냈다는 점에 있다. 말이 있으나 말하지 않는 사회의 억압에 대한 청소년 나름의 판단과 도전 정신이 책에서 읽히기 때문이다. 1980년대 프랑스는 성적으로 가장 개방됐던 시기였으나, 즐기는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성을 정확히 알려주지 않았다고 한다.
 
은밀한 곳에 숨은 것은 썩기 마련이다. 책 속으로 들어가 보면, 마리화나를 말면서 겉멋을 한껏 부리는 한 남자는 헤겔이나 장 폴 사르트르의 '멋진' 말과 고대 그리스인의 문화가 그랬다며 한 수 읊고는 소녀의 옷 단추를 풀고 구강성교를 강요한다. 사람은 선택할 자유가 있고 후진할 수 없다는 남자의 말에 소녀는  넘어가 준다. 소녀는 발랄하지만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자"며 약속하는 그들만의 은밀한 세상 속이기에 걱정된다. 
 
반면, 마사지를 해주겠다며 사타구니 사이에 대롱대롱 매달린 욕망을 푸는 남자들에 대해서는 "자본주의 사회에 공짜가 없으니까"라고 소녀의 친구가 말하는 장면을 보면 걱정이 기우였던 것 같다. 오히려 소녀들은 남자를 긍휼하게 여긴다. 릴케가 "당신에게 벌어지는 일이라면 믿고 받아들이십시오. 다만 당신의 의지에서, 혹은 당신 내면의 그 어떤 필연에서 비롯되는 것이어야 하며, 미워하지 마십시오"라고 하고 "남성들은 잉태와 산고로 인해 단 한 번도 삶의 하층까지 내려가 보지 못했으며, 오만하고 경박하고 성급하여 자기가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조차 낮게 평가하는 무리가 아닙니까"라고 쓴 것을 소녀들이 읽었나. 게다가 프랑스어 사전에서 성을 스스로 익히고 삶과 미래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는 등 자의식도 상당히 갖춘 소녀들이다. 그러면서 "저항은 상업적인 거짓말이야. 그럴싸한 말을 붙여서 뭔가를 파는 거지. 네가 세상을 제대로 볼 줄 안다면, 거짓말이 이 사회의 기반을 이룬다는 걸 알 수 있을 거야"라는 그들만의 해석까지 내놓는다.
 
작가는 소녀들의 성 경험담을 소개하면서 남자들의 수작에 당하지 말라는 건지 알아서 선택하라는 건지 명확하게 밝히지는 않는다. 다만, 소녀의 아버지가 딸에게 콘돔을 선물하면서 "첫 번째 멍청이는 이게 아무짝에도 소용없다고 말할 것"이라며 "그 병(에이즈)에 걸리면 2년 안에 죽게 돼. 죽는 건 금지"라고 말하는 대목에서는 약간 짐작이 간다. 청소년의 판단과 도전이 위험한 것은 그들이 질풍노도의 시기에 있어서가 아니라, 사회가 올바르게 가르쳐주지 않아서는 아닌지. "왜?"냐고 묻거나 몰래 알아보고 있는 이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하면 되느냐는 얘기다. 이 소설이 청소년의 성(性)과 언어 그리고 사회의 관계를 다룬 책인 이유다.
 
한편으로는 책이 성관계 장면을 입체적이고 정밀하게 묘사하다가 "나라면 노동자 계급인 뤼트에게 투표했을 거야. 사회주의자들은 위선자야. 결국 거대 자본가에게 봉사하지"라며 정치 문제가 훅 들어오는 대목에선 하고 싶은 얘기를 하려고 그랬나 싶기도 하다. 안네 프랑크는 생리에 관해 쓴 세계 최초의 작가라며 그녀의 일기가 강제 수용소로 이송됐을 때 끝났다고 지적하는 지점은 보고 싶은대로 보는 시선을 꼬집는 것 같다. 미해결된 어린이 익사 사건을 지적하는 대목은 짧지만 강렬하게 다가온다. 소설은 두서없는 전개로 독자를 혼란스럽게 하면서도 하고 싶은 말을 여기저기 심어 놓은 것으로 보인다. 하고 싶은 말을 자유분방하게 하고 살아야 한다는 주장인지도 모른다.
 
작가는 다른 작가의 소설에서 영감을 얻은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이 소설의 프랑스어 제목 '클레브'는 라 파예트의 소설 <클레브 공작 부인>을 개작하겠다는 작가의 소망에서 비롯했다. 17세기에 나온 <클레브 공작 부인>은 클레브 공작과 결혼한 여주인공이 다른 남자를 사랑하면서 고민하는 심리를 다뤘다. 수년 전 언론 보도를 보면 프랑스 대통령이었던 니콜라 사르코지가 공무원 시험 문제에 이 책이 등장한 것에 대해 "변태 성욕자가 시험 문제를 출제한 것"이라고 비난해 '저항의 상징'으로 유명해진 바 있다. 책 서문에 등장한 릴케는 이런 현실에 어떻게 답할까? 소설은 "그녀에겐 생각할 것들이 너무나 많다"며 끝난다. 생각 거리를 많이 남기는 책이다.
 
▶ 전문성 : 어떻게 이렇게 생생하게 어린 시절의 목소리를 글로 만들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
 
▶ 대중성 : 성을 지나치게 묘사했다는 이유로 어린 자녀에게 읽히고 싶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그러나 알고 대비하는 게 낫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 참신성 : 청소년의 성은 참신한 소재가 아니지만, 그것을 둘러싼 사회적 환경이 어떤지 짚은 점이 참신하다.
 
 
줄거리
 
10대 소녀 솔랑주와 친구들의 관심은 성에 쏠려 있다. '입에 팬티를 씌워 놓은 것처럼 더러운 말'을 무기로 팬티 속 경험을 두고 경쟁한다. 어른들은 그런 것에 대해 알려주지 않는다. 소녀들은 사전과 친구, 무엇인가 얻으려는 나이 많은 남자에게 배운다. 이런 과정을 통해 남자와 여자가 키스하는 모습이 괄태충을 먹는 장면으로 느껴졌던 소녀들은 "스무 살에도 처녀인 여자들이 있다니! 진짜 공포스럽다"며 비웃게 된다. "이건 네가 나를 믿는다는 증거야."라고 말하는 소년들도 냉소의 대상이 됐다. 소녀는 더 나은 남자를 선택하면서 스스로 버린 성인 남자에게 "지저분하게 굴 생각 마요. 그러면 사람들에게 다 이야기할 테니까"라며 말할 정도로 성장한다.
 
책 속 밑줄 긋기
 
호모는 병이 아니야. 타고나는 것도 아니야. 그건 미묘한 차이가 있는 나름의 질서지.
 
첫 번째 멍청이는 이게 아무짝에도 소용없다고 너에게 말할 거다. 그 멍청이를 나에게 보내면 내가 두들겨 패주마. 너는 그 멍청이한테 이걸 끼우도록 반드시 요구해야 돼. 그 멍청이한테. 내 말 알아듣겠어? 만약 그 병에 걸리면 2년 안에 죽게 돼. 이걸 바나나에 끼우면서 연습해라. 죽는 건 금지다. 알아듣겠어?
 
네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잘 생각해봐. 네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 말이야. 결혼하기 전에, 솔랑주. 결혼하기 전에.
 
존중받으려면 먼저 존중해야 한다. 관계를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되는 거다.
 
질투하면 정말로 비참해질 것이다. 질투는 힘들어할 가치도 없는 감정 때문에, 그야말로 모양이 안 나는 감정 때문에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표정을 짓자. 스튜어디스처럼.
 
네 나이 땐 당연한 거야. 난 네 나이 때 스스로를 과대평가했어. 지금보다 사는 게 더 힘들었지. 우린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자신을 규정할 수 있기 때문이야. 우리는 의식을 지니고 태어나지 않아. 그래서 정해진 성격도 없고 결정된 것도 없었지. 이 말을 한 사람은 사르트르야. 네가 외롭다는 생각을 한다면, 그건, 그건 훌륭한 거야. 완전 훌륭하지. 그건 내가 누구인지 알기 위해 내 정신을 괴롭혔다는 뜻이야.
 
잘 들어봐. 넌 너 자신이 되어야 해. 그게 가장 좋아. 우리는 무슨 일이 일어나든 늘 선택을 할 수 있지. 항상 선택을 하고, 전적으로 자유로워.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은 모두 선택에 의한 거야.
 
우리 아버지가 그러는데, 멍청한 짓을 그만두게 하는 건 자기가 나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도움이래. 갑자기 스스로를 우스꽝스럽다고 느끼게 되니까.
 
어린 자아를 잊고 삶과, 현실과 대면해야 해. 너는 후진할 수 없어. 진짜야.
  
우리는 훨씬 중요한 일도 잊어버리고, 자기가 경험한 강렬한 감동의 순간을 영원히 기억할 거라 생각하며 간직하지만 나중에는 까맣게 잊어버리기도 하니까. 아니면 아주 사소한 것들을 이상하게도 선명히 기억하기도 하지. 예를 들면 아우디의 창 너머로 바라본 풍경 한 조각 같은 것.
 
나라면 노동자 계급인 뤼트에게 투표했을 거야. 사회주의자들은 위선자야. 결국 거대 자본가에게 봉사하지.
 
일부일처제는 나에게 맞지 않아. 일부일처제로 살기엔 인생이 너무 짧다고. 음악가들이 음계 하나만 사용하니?
 
일부일처제에 관해서는 그 남자애 말이 옳아. 그런 남자애가 정절을 지키기를 기대할 순 없어. 그러니 넘겨버려.
 
안네 프랑크는 생리에 관해 쓴 세계 최초의 작가야. 그것에 더러운 점은 없어. 안네 프랑크의 일기는 정확히 그녀가 강제 수용소로 이송되었을 때 끝났어.
 
네 투쟁이 뭔데? 난 인종 차별에 반대해. 그리고 원자폭탄에 반대해. 동물 멸종에도 반대해. 그래, 그것에 반대해서 넌 뭘 하는데? 그걸 생각해.
 
중요한 건 배우는 게 아니라, 자기가 가진 결점을 인정하는 거야. 반드시 양심에 거리낌이 없어야만 하는 건 아니지.
 
감동이다 솔랑주. 이건 네가 나를 믿는다는 증거야. 또 어떤 증거냐 하면…. 그가 입을 다물지 않으면 그녀는 그를 죽일 것이다.
  
별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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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훈 문화체육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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