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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어주는기자)노인, 사랑에 빠지고 고독하게 죽다
2014-10-25 08:54:58 2014-10-25 08:54:58
<모나코> 김기창 지음 | 민음사 펴냄
 
 
돈 많고 냉소적 유머가 넘치는 노인이 미혼모와의 사랑을 꿈꾸다 쓸쓸하게 죽어가는 과정을 그린 소설 <모나코>는 우울할 때 읽으면 아무 생각 없이 웃다가 다시 우울해지는 책이다. 노인의 참신한 표현을 읽으면서 웃다가도 고양이 두 마리를 제외하곤 노인의 죽음을 지켜본 이 없는 장면을 읽을 땐 노년기의 죽음을 생각해보게 한다.  
 
▶ 전문성 : 작가는 이 소설을 쓰기 위해 특별한 취재를 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이 책과 관련된 취재는 작가가 최근 2~3년 전부터 죽음을 다룬 책을 읽은 게 전부. 다만, 작가가 10년 이상 모은 다양한 분야의 자료가 이 작품에 녹아든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다양한 소재로 웃음을 유발하고 있다. 예컨대 이런 대목이다. "프로이트가 누군데요?" 큰 남자 아이가 말했다. "우리 편." "우리 편요?" "사랑과 성욕은 구분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거든."
 
▶ 대중성 : 통계를 보면 50세부터 남녀 성비가 뒤바뀐다. 태어날 때는 남자가 여자보다 많지만, 50세를 넘어서면 남자 사망자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65세 이상 황혼 이혼이 10년 사이 28배나 늘었고, 60세 이상 1인 가구 비중은 전체 가구의 30% 수준이다. 이 책의 주제 고독사는 이런 현실과 다가올 미래를 반영하고 있다. 노인 고독사는 남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 참신성 : 이 작품은 영화 시나리오와 기사, 라디오 드라마 대본을 썼던 작가의 첫 소설이라서인지 아닌지 알 수 없으나, 호랑이와 바람난 사자의 내면을 다루듯 당돌한 시도들이 참신하다.
 
 
가사도우미 '덕'과 아내·친구·딸 같은 관계를 유지하던 부유한 노인은 유부남의 아이를 낳은 미혼모 '진'의 잘빠진 다리를 본 뒤 사랑에 빠진다. 노인이 사랑에 빠지는 이유를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서 담백하다. 사람을 좋아하는 것에 구체적 이유가 있는 게 더 어색하다.
 
어쨌든 돈을 많이 벌고 아들에게 사업을 물려준 뒤 죽음을 기다리던 노인에게 살아갈 이유가 생겼다. 진을 만난 덕이다. 노인은 적당히 살다 가라는 타인의 충고에도 "화끈하게 살 날도 얼마 없는데 왜 그래야 해?"라고 묻는다. 노인에게 욕망의 불꽃이 퍼지는 과정을 소설은 천천히 음미하게 한다. 그것도 웃기게. 배고프고 춥다며 집 안으로 들여보내 달라는 진에게 노인은 "5분만 추위에 떨고 서 있어."라면서도 그녀에 대한 걱정의 끈을 놓지 않는다.
 
둘은 우연을 가장해 마트에서 자주 만난다. 서로에 대한 관심을 확인하는 것이다. 이에 앞서 노인은 진을 만나기 위해 그녀가 밖으로 나오는 시간을 집요하게 파악해냈다. 진도 그런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70~80대로 추정되는 노인과 젊은 미혼모의 사랑은 평범하지 않은 풍경이다. 그러나 노인은 타인들이 자신과 진을 어떻게 볼지 걱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을 색안경 끼고 볼 사람을 어떻게 볼지 생각한다. 노인은 이런 점에서 '욕망과 사유의 주체'인 셈이다.
 
이처럼 노인의 내면을 천착한 점이 독특하다. "세월이 빨리 가는 이유가 있었어. 망할 놈의 해가 너무 빨리 뜨고 너무 빨리 지는 탓이야" 라고 중얼거리는 노인은 내일이라도 당장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으나 유머를 잃지 않는다. 노인이 비아그라를 자신의 고급 저택에 진열해둔 것도 그 때문이다. 비아그라는 자신을 걱정하는 사람들을 웃기기 위해 산 것이다.  노인은 젊은 남자로부터 욕을 먹으면서 소크라테스를 떠올린다. "그게 내 소원이야. 떨어져서 끽 죽는 거."라며 죽음도 유희의 대상으로 삼는다.
 
노인은 철학과 역사·음악·미술·요리·육아 등의 지식을 유머와 실생활에 써먹고 수영과 복싱도 배워 젊은 사내를 때려눕힐 정도로 지덕체(智德體)에서 '지체' 정도는 갖춘 사람이다. 하지만 진과의 정사는 꿈에서도 이룰 수 없었다. 자신감이 없어서다. 여러 의미로.
 
진은 유부남과 다시 만난다. 덕이 휴가를 떠난 사이 아들의 소식이 뜸한 사이 노인은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한다. 죽음을 지켜본 이는 노인이 키우던 고양이 두마리 뿐이다. 악어의 눈물을 흘리는 도둑들이 그의 집에 침입해 사체를 봤으나 지나친다. 고양이들은 노인의 죽음이 세상에 알려진 뒤 노인의 집을 떠난다. 책은 "노인은 희망 없는 낙천주의자, 쾌락 없는 쾌락주의자, 절망 없는 비극주의자. 사는 것이 시작이고 끝이며 전부였다."고 전한다.
 
민음사가 만든 제38회 '오늘의 작가상'의 수상작인 <모나코>의 작가 김기창 씨(36)는 좋아하는 서양문학을 필사했던 경험 탓인지 영어식 표현이 더러 있었다고 고백했다. 노인이 사랑에 빠지는 진, 독특한 관계인 덕의 내면은 구체적으로 묘사하지 않았다고 했다. 잘 모르는 여성보다는 노인을 더 깊숙하게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고독사라는 사회적인 문제를 다루면서도 개성 있는 인물과 표현에 집중한 점이 이 작품을 독특하고 재미있게 만든 힘이다.
 
책 속 밑줄 긋기
 
먹는 것의, 사는 것의 의미는 조난당한 선원의 수영복처럼 부질없었다.
 
약을 보고 있으면 낙관주의자의 일기장처럼 헛된 희망이 가득 찼다.
 
젊은 남자의 입에서는 소크라테스의 산파법에 충실한 말이 흘러나왔다. 꼬리를 무는 질문의 연속이었다. "죽고 싶어? 죽으려면 집구석에 처박혀 곱게 죽지 왜 나왔어? 꼴에 더 살아 보겠다고 기어 나왔어? 그럼 기어 다니지 왜 두 발로 걸어?" 노인은 어리둥절했다. 부모가 슈트 살 돈도 주고 철학도 열심히 가르친 것 같았다.
 
노인은 인류가 이제까지 쌓아 온 지적 유산을 다 뒤져도 지금 이 순간에 마땅한 대답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사형수의 손에 들린 마지막 담배를 뺏는 놈은 죽어서 유다와 안면을 터야 할 것이다.
 
"세상이 늙은이들은 밀어내는 게 아니라 스스로 세계의 변방으로 돌진하는 거야. 단순하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는 세계로 말이야. 늙은 철학자들의 말이 다 왜 개소리인지 알아? 인과관계 말고는 어떤 관계도 생각하지 못해서 그래. 세상의 절반도 설명하지도 못하고 나머지 절반 역시 오해 아니면 곡해라고!"
 
거실 밖은 어린 자식 버리고 도망가는 여자의 짐 가방처럼 어수선했다.
 
18남 4녀를 둔 세종대왕은 수탉 고환을 밥처럼 먹었다. 비스마르크, 나폴레옹, 카사노바는 굴이라면 환장을 했다. 수탉 고환과 굴의 대용으로 비아그라를 산 것은 아니었다. 덕과 담당 주치의를 웃기기 위해 샀다.
 
서로인은 소의 등허릿살인데 영국 국왕이었던 찰스 2세가 좋아해 기사 작위까지 수여한 부위였다. 권력을 가진 남자들이 어처구니없는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것은 인류 공통이었다.
 
별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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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훈 문화체육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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