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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욱의 가요별점)장범준을 ‘음원 괴물’로 만든 몇 가지 법칙
2014-08-20 16:21:50 2014-08-20 16:26:16
◇첫 번째 솔로앨범을 발표한 장범준. (사진제공=CJ E & M)
 
[뉴스토마토 정해욱기자] 장범준이 첫 번째 솔로 앨범을 발매했습니다. 지난 2011년 Mnet '슈퍼스타K‘를 통해 유명세를 치렀던 팀 버스커버스커를 벗어나 솔로 가수로서 낸 첫 앨범인데요. 총 8곡이 실렸습니다.
 
앨범이 발매되기 전 팬들의 기대가 컸습니다. 장범준은 버스커버스커로 활동하던 시절 ‘벚꽃 엔딩’을 비롯해 ‘첫사랑’, ‘여수밤바다’ 등 많은 히트곡을 냈죠. 신곡을 냈다 하면 음원 차트 상위권을 장악해서 ‘음원 깡패’나 ‘음원 괴물’이란 별명까지 얻었습니다. 그래서 솔로 앨범을 통해선 어떤 성적을 거둘지 관심이 집중됐었는데요.
 
괴물은 괴물이네요. 솔로 앨범의 수록곡들도 음원 차트의 상위권에 줄세우기를 했습니다. 대형기획사인 YG엔터테인먼트의 신인 보이 그룹인 위너나 인기 아이돌 그룹인 씨스타, 블락비 등의 노래가 음원 차트에 올라있는 상황에서 장범준은 믿기 힘든 성과를 만들어냈습니다.
 
장범준은 아이돌들처럼 곱상한 외모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니고, 요즘 대세인 댄스나 힙합 음악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높은 인기를 얻고 있는 이유가 도대체 뭘까요? 이번 앨범을 들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장범준의 음악은 기본적으로 아날로그적 정서를 기반으로 하죠. 장범준이 이번 앨범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가장 고민했던 부분은 이런 것들입니다. “7080같은 느낌을 세련되게 만들려면 어떤 톤으로 표현해야 할까?”, “멜로디보다 가사가 좋은 노래는 어떻게 해야 하나?”
 
많은 것들이 빠르게 만들어지고, 또 빠르게 사라져버리는 시대입니다. 음원 차트도 마찬가지고요. 기계로 찍어낸 듯한 비슷비슷한 댄스곡들도 쏟아져나옵니다. 그런 가운데 장범준의 노래가 대중들에게 휴식처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나 할까요. 아날로그 정서를 기본으로 한 장범준의 노래를 들으면 마음이 차분해집니다. 이런 노래를 부르는 가수, 장범준의 또래 중엔 잘 없습니다. 대중들의 아날로그 정서에 대한 갈망은 ‘응답하라 1997’과 같은 드라마의 인기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죠.
 
그리고 또 한 가지 눈여겨 볼 만한 건 장범준이 아날로그 정서를 어렵지 않은 방식으로 대중들에게 전달하고 있다는 겁니다.
 
타이틀곡인 ‘어려운 여자’를 볼까요? 제목은 '어려운 여자'지만 노래는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쉬운 멜로디와 함께 “그대는 너무 예뻐요. 안아주고 싶어요. 바라보고 싶어요. 그대는 아름다워요. 안아주고 싶어요. 바라보고 싶어요”라는 쉬운 가사가 반복됩니다. 장범준은 억지로 돌려서 표현하거나 꾸미는 법이 없습니다. 이런 특징은 기존에 발표됐던 버스커버스커의 노래들과 이번 앨범의 수록곡들 모두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요.
 
 
사랑 노래인 ‘2번 트랙의 ’사랑이란 말이 어울리는 사람‘도 그렇습니다.
 
장범준은 “손을 잡고 싶은데 안아주고 싶은데. 왜 내가 조심스럽지. 왜 내가 조심스럽지. 걷다가 닿는 어깨에 내 맘이 깊게 설레네. 별것도 아닌 스킨십에 왜 내가 설레오는지. 알죠 당신의 웃음 앞에선 나도 순수해지네요”라고 노래합니다.
 
대중들의 입장에서도 “별것도 아닌 노래에 왜 내가 설레오는지”라고 장범준에게 얘기해주고 싶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이나믹한 구성이나 억지로 멋을 부린 노랫말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장범준의 노래가 특별하게 들리기 때문인데요. 단순하고 꾸밈 없는 소탈함. 그게 바로 장범준의 노래가 갖고 있는 특별함입니다.
 
그리고 장범준은 기교를 부리지 않는 창법과 언뜻 들으면 평범하게만 느껴지는 목소리로 이런 특별한 매력을 극대화시킵니다. 마지막 트랙에 담긴 ‘사랑에 어떤 말로도’라는 노래에서 장범준이 가진 목소리 본연의 매력을 잘 느낄 수 있습니다.
 
잔잔한 기타 연주가 ‘사랑에 어떤 말로도’를 이끌어나갑니다. 다른 악기의 화려한 사운드는 없습니다. 장범준은 기타 연주에만 기대 이야기하듯 노래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엔 감정을 폭발시키면서 자신이 가진 목소리의 힘을 보여줍니다.
 
장범준의 첫 솔로앨범엔 이 외에도 다양한 장르의 노래들이 수록됐습니다.
 
3번 트랙의 ‘주홍빛 거리’에서 장범준은 “저기 주홍빛 가득한 곳에서 나랑 술 한 잔만 같이 해 줘요. 예쁜 그대 그대만 있으면 좋을 것 같아”라고 노래하는데요. 밤 거리, 어느 라이브 카페에서 흘러나올 것만 같은 노래입니다. 노래를 가만히 듣다 보면 이 노래를 직접 연주하는 라이브 밴드의 모습과 그 앞에서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한 남자의 모습이 떠오르는데요. 이렇게 노래와 관련된 특정 이미지나 풍경이 떠오르게끔 느낌을 표현해내는 것 역시 장범준의 노래가 가진 강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벚꽃 엔딩’이란 노래를 들을 땐 다들 벚꽃이 흩날리는 거리가 떠오르지 않으셨나요?
 
4번 트랙의 ‘신풍역 2번 출구 블루스’는 독특한 노래입니다. 노래 자체가 아주 독특하다기 보다는 그동안 대중들에게 익숙했던 장범준식의 감성적인 노래에서 벗어나 상대적으로 강렬한 사운드를 들려주기 때문에 그런 건데요. 장범준의 목소리가 강렬한 록 사운드에도 썩 잘 어울린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내 맘을 타고 딴 여자로 갈 거야. 내 맘을 밟고 지나간 건 너잖아. 세상에 많고 많다는 게 여자야. 눈을 보고 미안하다 말해 봐”라는 표현도 다른 곡들에 비해선 좀 더 직설적이고 강렬합니다.
 
5번 트랙엔 신나는 리듬의 ‘무서운 짝사랑’이 있습니다. “우리들 사이로 요란한 Silence 심장이 쪼개져 고요한 Siren 어쩌다 마주치는 눈빛 두근대는 Heartbeat 이러다가 죽겠네 사랑을 만들어 오늘도 혼자서”라는 후렴구가 신나는데요. 록 페스티발에 딱 어울릴 만한 노래입니다. 많은 관객들과 함께 신나게 호흡할 수 있는 곡입니다.
 
6번 트랙엔 ‘벚꽃 엔딩’을 연상시키는 노래인 ‘낙엽 엔딩’이 실려 있습니다. 제목에서 가을의 쓸쓸한 느낌이 풍기죠? 이번 앨범의 수록곡 중 가장 애절한 감성이 담긴 노래입니다. 장범준은 감정을 토해내는 듯한 창법으로 “그대는 모르겠지만 이 몸은 바람이 되어 꺼지지 않는 불빛이 되어 오늘도 너를 찾아요. 그대는 모르겠지만 이 몸은 낙엽이 되어 시들지 않는 꽃잎이 되어 오늘도 너를 찾아요”라고 노래하는데요. 가사를 곱씹어 보면 이제 스물 다섯 살이 된 장범준의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진한 감성을 느낄 수 있습니다.
 
7번 트랙의 ‘내 마음이 그대가 되어’는 담백한 가사와 장범준의 창법이 돋보이는 록발라드입니다. 장범준이 이번 앨범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멜로디보다 가사가 좋은 노래는 어떻게 해야 하나?”에 대해 고민을 했다고 말씀드렸었죠? ‘내 마음이 그대가 되어’가 바로 그런 고민의 결과물을 보여줍니다. 물론 멜로디도 좋지만, 가사를 자꾸 되뇌게 되네요. “말이 없는 너는 마치 나를 잊은 것 같아. 수많은 변명에도 말이 없던 그 입술. 사랑이 중요하다며 다른 건 필요 없다며 쓸어내린 머리칼과 몰랐던 처음이 되어”란 가사인데요. 노래를 부르는 한 남자와 그 남자가 이야기하는 대상인 한 여자 사이에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에 대해 자꾸 생각해보게 되지 않나요?
 
사람이라면 자신이 한 번도 보고 듣지 못했던 새로운 것에 좀 더 관심이 가기 마련입니다. 이 때문에 가요계에 도전장을 던지는 수많은 젊은 가수들도 어떻게 해서든지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색깔을 보여주려 애를 쓰는 건데요. 장범준의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때로는 이미 알고 있었고, 익숙한 것들이 더 매력적인 때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게 바로 새로운 것 하나 없어 보이는 장범준의 음악에 수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이기도 한데요. 한동안 음원 차트에선 ‘음원 괴물’ 장범준의 강세가 계속될 것 같습니다.
 
< 장범준 정규 1집 '장범준 1집' >
대중성 ★★★★☆
음악성 ★★★★☆
실험성 ★★☆☆☆
한줄평: 2014년에 듣는 아날로그 감성의 편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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