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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아베)①화려한 6개월..성공과 실패의 갈림길
닛케이 1만3000선 붕괴 · 달러·엔환율 96엔까지 추락
무역수지 10개월째 적자..에너지 수입가격 급등
아베겟돈 공포..실물경제 회복이 관건
2013-06-10 10:00:00 2013-06-13 08:26:13
2007년 낙마한 아베 신조 일본총리가 지난해 12월 다시 일본의 수장으로 취임하면서 옛날 일본 무사가 아들들에게 '한개의 화살은 부러뜨리긴 쉽지만 세 개를 한꺼번에 부러뜨리기는 힘들다'는 점을 보여주며 힘을 합쳐 가문을 세우라고 한 일화를 언급했다. 이후 아베 총리는 절치부심 끝에 아베노믹스로 불리는 양적완화(QE), 재정지출 확대, 성장전략 추진 정책을 공개했다. 엔저 정책에 잃어버린 20년을 딛고 부활조짐을 보이는 듯 하던 일본경제는 국채금리가 일본은행(BOJ)의 통제범위를 벗어나 치솟고 수입물가 상승에 따른 부작용까지 겹치며 실물경기 회복은 점점 멀어지는 듯 하다. 일본경제를 살릴 세가지 화살은 이렇게 무력화 되어가고 있다. 아베총리의 세가지 화살은 부러진 화살이 되는 것일까? 아베노믹스의 세가지 화살 효과를 점검하고 실패 가능성이 높은 이유와 세계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본다. [편집자註]
 
[뉴스토마토 김진양기자]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야심찬 경제 성장 정책, 이른바 아베노믹스가 출범 이후 최대 위기를 맞았다.
 
70% 이상 급등했던 증시는 보름새에 3000엔 가까이 하락했다. 달러당 120엔을 바라보던 환율 역시 한 달 여 만에 100엔 아래로 내려왔다.
 
아베노믹스가 일본 경제를 디플레이션의 늪에서 건저내고 명목 3%대의 성장 궤도에 올려놓을 수 있는 묘약인지, 아니면 일본의 재정위기 리스크를 더욱 증대시키는 독약인지에 대한 논란이 여전하다. 
 
'아베의 저주'라는 표현까지 사용하며 일본 경제 전망을 비관하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20년 가까이 침체된 경제를 단 몇 개월만에 살리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는 주장도 눈길을 끈다. 아직 아베노믹스를 평가하기에는 시기 상조라는 설명이다. 
 
◇'잃어버린 20년' 되찾기..아베노믹스 시동에 증시·환시 '훨훨'
  
아베노믹스는 오랜 시간 침체됐던 일본 경제를 회복시키기 위한 거시·산업 정책이다. 20년에 걸친 저성장과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 일본 경제의 활력을 되찾겠다는 것이 최종 목표다. 
 
아베노믹스는 크게 대규모 양적완화를 핵심으로 하는 금융정책, 사회자본 확충을 핵심으로 하는 재정정책, 기업투자 확대를 유도하기 위한 성장정책 등 세 가지 축으로 구성돼있다.
 
◇아베노믹스 주요 내용
 
아베노믹스는 BOJ의 과감한 통화정책으로 시작을 알렸다. BOJ는 2년 안에 물가 상승률을 2%까지 끌어올리겠다고 약속하고 대규모 양적완화 계획을 밝혔다. 
 
시장은 이에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다. 
 
지난해 11월 8600엔에 불과했던 닛케이225 지수는 한 달여 만에 1만엔을 돌파하더니 지난 3월에는 리먼브라더스 사태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이후에도 일본 증시는 상승 랠리를 이어가며 5년 반만의 최고점을 경신했다.
 
외국인들 역시 그간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일본 증시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5월말 기준으로 일본의 외국인 주식 보유 총액은 91조엔으로 추산됐다. 전체 일본 주식시장의 23%에 이르는 수준이다. 이 중 약 10%에 해당하는 8조엔이 올해 들어 유입된 것으로 시장 매력도가 그만큼 높아졌음을 방증했다.
 
◇아베노믹스 시행 후 증시·환율 추이(자료=마켓워치, 뉴스토마토)
 
그간 일본 수출 기업들의 발목을 잡았던 엔고는 아베노믹스 시행으로 빠르게 조정됐다. 달러대비 엔화 환율은 6개월만에 25%나 상승했다. 지난달 초에는 심리적 마지노선이었던 달러 당 100엔을 훌쩍 넘었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엔화 약세 기조는 당분간 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며 달러·엔 환율이 120엔까지 오를 수 있다는 낙관적인 전망을 내놨다.
 
20년에 가까운 디플레이션으로 침체됐던 부동산 시장에서도 회복의 조짐이 포착됐다. 지난 3월21일 일본 국토교통성이 발표한 2013년도 전국 공시지가는 1.5%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년도의 2.6% 하락에서 낙폭이 감소한 것이다. 또 도쿄, 오사카, 나고야 등 3대 주요 도시권에서는 땅 값과 주택 가격이 상승세를 보였다.
 
부동산투자신탁(REIT)의 2013년 2월 말 수탁액은 1조3000억엔으로 사상 최대 기록했고, 도쿄 시내 오피스빌딩 공실률은 작년 평균 10%대에서 8%대로 하락하며 임대 수요도 회복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일본의 대표 수출기업들의 실적도 대폭 개선됐다.
 
소니는 2012회계연도(2012년 4월~2013년 3월)에 430억엔의 순이익으로 5년만의 흑자 전환을 알렸다.
 
같은 기간 세계 최대 자동차 메이커인 도요타자동차는 9621억엔의 순이익을 전했다. 전년 동기대비 240% 가량 급증한 결과다.
 
이들 기업의 주가도 두 배 가까이 상승하며 실적 개선의 효과를 증명했다. 30년만에 주가가 1000엔을 하회하며 굴욕을 맛봤던 소니는 2000엔 돌파를 눈앞에 두고있으며, 도요타 역시 6700엔까지 오른후 최근 소폭의 조정을 거치고 있다.
 
◇때이른 축포였나..금융 시장 출렁·경제지표 여전히 '부진'
 
승승장구하던 아베노믹스에 제동이 걸린 것은 지난달 23일이었다. 6개월간 숨가쁘게 달려온 시장이 국채 금리 상승을 빌미로 조정에 나선 것이다.
 
지난 4월 BOJ가 양적·질적 완화를 발표한 이후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사상 최저 수준인 0.45%까지 떨어졌다. 시장의 예상보다 훨씬 과감했던 결정이 시장을 자극했다.
 
하지만 국채 금리가 일시적으로 1%를 상회하는 급격한 변동성을 보이자 투자자들은 동요하기 시작했다. 일본의 부채 규모가 국내총생산(GDP)의 240%에 이르는 만큼 금리 상승은 재정 건전성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증시는 7% 넘게 폭락하며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간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이후 보름 간 증시는 급등과 급락을 반복하는 널뛰기 장세를 보이고 있다.
 
환율도 마찬가지였다.
 
단기간에 걸쳐 큰 폭으로 절하됐던 엔화는 조정이 불가피했다. 달러 당 엔화 환율은 96엔까지 하락했다.
 
환율 하락이 일시적이란 의견이 다수를 차지했지만 일각에서는 "엔저 조정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며 "연말에는 89엔까지 내릴 수도 있다"고 점치는 이도 있었다. 
 
경제지표는 여전히 만족스럽지 못했다.
 
BOJ의 물가목표치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 일본의 소비자물가지수(CPI)는 반년째 마이너스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무역수지는 10개월 연속 적자다. 오일쇼크로 유가가 급등했던 1979년 7월~1980년 8월 이후 가장 긴 흐름이다.
 
4월달 수출은 전년 동기대비 3.8% 증가하며 두 달 연속 개선의 모습을 보였지만 수입이 9.4% 늘어나며 수출보다 빠른 증가세를 보이는 것이 문제였다.
 
엔화 약세로 기업들의 수출 경쟁력이 제고됐지만 동시에 에너지 수입 가격이 상승한 것이 무역적자를 유발했다는 평가다. 
 
◇아베노믹스 논란 여전..아베겟돈 vs 시기상조
 
아베노믹스에 환호하던 투자자들은 점차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아베노믹스의 성공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국제신용평가사들은 일본의 재전건전성 악화를 이유로 신용등급이 강등될 가능성이 33% 이상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아베노믹스가 실물 경제를 살리지 못하고 장기 국채 금리의 상승만을 유발할 경우 신용등급에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극단적인 경우 일본 경제가 파국에 치달을 것이란 시나리오도 등장했다.
 
알렉스 프리드먼 UBS자산운용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자산 가격이 상승하는 가운데 실질 성장은 전혀 없는 스태그플레이션 시나리오를 예상할 수 있다"며 "궁극적으로는 실질 성장이 훼손받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어 "경제가 성장하지 못할 경우 종말을 의미하는 '아마겟돈'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며 "이를 '아베겟돈'이라 부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같은 시나리오가 단기간 내에 현실화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아베노믹스를 평가하기에는 아직 시기 상조라는 주장도 팽팽히 맞선다. 20년 가까이 침체됐던 일본 경제가 단순히 통화정책이나 재정정책에 기대 단기간에 회복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했다는 의견이다.
 
전민규 한국투자증권 선임이코노미스트는 "지금까지의 시장 호황은 기대감에 의한 것"이었다며 "이제는 실질적인 경기 회복을 기다릴 차례"라고 진단했다.
 
최근의 조정은 아베 내각의 야심찬 포부에 시장이 빠르게 움직였던 것에 대한 반작용일 뿐 실패를 우려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설명이다.
 
세간의 비판에도 일본 정부가 아베노믹스의 성공에 강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는 점도 '시기상조론'을 뒷받침한다.
 
아베 총리는 지난 주 장기 성장전략 발표 후 일본 언론과 처음으로 가진 인터뷰에서 "세번째 화살이 발사됐다는 사실이 중요하다"며 "시장의 기대와 편차가 존재한다면 내용을 수정·보완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경제가 이미 회복 궤도에 올라섰다"고 거듭 강조하며 가을을 전후로 구체적인 성장 전략 법안을 국회에 제출하겠다는 계획이다.
 
◇성공의 열쇠는 실물 경제의 회복
 
아베노믹스에 대한 시각은 엇갈렸지만 전문가들은 향후 아베노믹스의 성패를 가늠할 수 있는 열쇠는 실물 경제의 회복이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2%의 물가상승률 목표치 달성을 위해서는 소비자들이 쓸 돈이 많아져야 하고, 개인 소득이 늘어나기 위해서는 기업의 임금이 그만큼 인상돼야 한다는 분석이다.
 
전 이코노미스트는 "엔저가 수출 개선 효과를 이끌기위해서는 최고 10개월에서 1년의 시간이 필요하다"며 "내년 3월까지는 아베노믹스의 추세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전문가들은 일본이 장기적인 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구조적인 개혁을 주문했다. 
 
전 이코노미스트는 "우리나라가 외환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관치경제의 습성에서 벗어나 획기적인 체질 개선에 성공했기 때문"이라며 "일본에게도 이러한 변화가 요구된다"고 말했다. 
 
지금 일본은 새로운 성장 전략이 필요한 시점인데, 과거의 패러다임에 의존해 경제를 운용하다보니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야마다 히사시 일본리서치센터 수석이코노미스트 역시 "아베의 성장 전략에는 노동시장 개혁 등 근본적인 해결방안이 부재하다"며 "실질 수요를 진작시킬 수 있는 대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마틴 슐츠 후지츠리서치센터 선임연구원도 "아베노믹스의 성공과 일본 경제 성장은 규제 완화 정도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며 "기업은 이를 통해 잠재 성장률을 높일 수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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