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기자
닫기
유지훈

(인터뷰)신승훈 “데뷔 30주년, 뮤지션의 전환점이죠”

8일 스페셜 앨범 ‘My Personas’ 발매

2020-04-08 12:12

조회수 : 2,786

크게 작게
URL 프린트 페이스북
[뉴스토마토 유지훈 기자] 한 분야에 통달한 사람에게 대중과 미디어는 황제라는 칭호를 선물한다. 신승훈은 오랫동안 발라드의 황제로 군림했다. 한 장르에 머무르기 싫어 전설 속의 누군가처럼’ ‘엄마야’ ‘로미오와 줄리엣과 같은 색다른 장르의 노래를 발매하고 이미지 변신을 꾀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중은 다시 그를 다시 발라드의 황제왕좌에 앉혔다. 비록 스스로의 의지는 아닐지라도 이제 신승훈은 발라드 그 자체다.
 
신승훈은 발라드의 황제라는 수식어에 대해 참 사랑스러운 말이지만 내겐 애증이라고 뱉었다. 늘 새로운 시도를 갈망하는 그에게 세상은 발라드를 불러달라고 요구했으니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대목이다. 2020년 데뷔 30주년을 맞이한 그는 이 요구를 고스란히 받아들여 8일 오후 6시 데뷔 30주년 기념 앨범 ‘My Personas(마이 페르소나스)’를 발매한다. 앨범 명이 나의 분신 같은 음악들이라는 뜻을 담은 만큼 신승훈은 발라드 황제라는 타이틀에 부합하는 여덟 트랙을 눌러 담았다.
 
첫 번째 트랙 여전히 헤어짐은 처음처럼 아파서’, 두 번째 트랙 그러자 우리가 더블 타이틀곡으로 선정됐다. 그 중 여전히 헤어짐은 처음처럼 아파서는 신승훈의 발라드를 5분으로 압축한 특별한 감상을 안긴다. ‘전주가 길면 리스너가 외면한다는 공식은 보란듯이 무시했다. 그의 목소리가 들리기까지는 30초가 소요된다. 대신 애잔한 스트링 사운드가 그 기다림을 달래고, 그 기다림 끝에 들려오는 신승훈의 음색과 심현보의 담백한 가사는 더욱 빛을 발한다. 그 시절의 발라드는 그랬으니까. 신승훈은 그 시절 발라드 그 자체니까. 자연스레 감탄하게 만드는 신승훈의 ‘Personas’.
 
신승훈. 사진/도로시컴퍼니
 
‘My Personas’ 발매 소감은?
데뷔 30주년이 됐어요. 10주년, 20주년 때처럼 지금까지 열심히 했고, 앞으로도 열심히 하겠다는 이야기보다, 이제는 제 속에 있던 이야기도 하고 소회도 말씀 드려야 할 것만 같아요. 10주년 인터뷰 당시에 이제 터닝포인트가 온 것 아니냐는 질문을 받았고 의아했어요. 저는 그냥 음악만 하고 살 생각이라 터닝포인트라는 건 없었거든요. 그런데 30주년은 좀 달라요. ‘이제 터닝포인트가 왔어요라고 말할 수 있어요. ‘앨범을 낼 때마다 작은 점을 찍고, 멀리서 봤을 때 그 점들이 모여 한 선으로 보이는 가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었어요. 이제 보니 선이 되긴 한 것 같아요. 물론 아직 큰 획까진 아니에요(웃음). 음악적으로는 터닝포인트라도, 인생은 터닝포인트가 아니에요. 지나온 삶을 돌아갈 수는 없잖아요. 앨범이 나왔고 공연이 준비되어 있으니 인생은 앞으로 나가야죠.”
 
30주년 기념 앨범이다. 직접 소개를 해주자면?
봉준호 감독이 나의 페르소나는 송강호다라고 했었어요. 그래서 저도 내 페르소나는 뭘까했어요. 제가 감독이라면, 제 음악에 송강호가 있다면 그걸 어떻게 표현할까? 이런 생각에 빠졌어요. 30년간 해왔던 제 음악을 다 설명할 수 없기에 명함 같은 앨범을 내고 싶어요. 그게 ‘My Personas’에요. ‘신승훈의 발라드는요라고 자신 있게 내밀 수 있는 노래를 더블 타이틀로 선정했어요.”
 
여전히 헤어짐은 처음처럼 아파서’ ‘그러자 우리가 바로 그 명함이다.
한 곡만 밀어도 시원찮을 판에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이 갈렸어요. 마케팅 담당하시는 분이 하나라도 빛을 봐야 하는데하셨을 거에요. 하지만 이제 30주년 된 가수가 무엇에 연연하겠어요. ‘여전히 헤어짐은 처음처럼 아파서의 전주는 32초가 넘어요. 앞에 30초 들었을 때 목소리가 안 나오면 꺼버리는 게 요즘 시대인데 말이에요. 반항심은 아니고 그냥 이 노래는 전주가 이렇게 길어야 했어요. 30년된 가수가 30년동안 했던 음악을 정리 해봤다는 느낌으로 들어주셨으면 해요. 아마 신승훈스럽다는 이야기를 하시게 될 거예요.”
 
각 트랙들을 간략히 소개해주자면?
첫 트랙은너 울어? 내가 더 울려줄게하는 음악, '그러자 우리'너 울어? 난 가만히 있을 게하는 음악이에요. 신승훈의 발라드를 표현했어요. 가끔 정규앨범을 내면 빈지노, 에일리, 비와이 이런 분들과 작업했었어요. 이번에 실험정신은 없어요. 감사를 전하자는 개념이 커요. 신곡을 계속 내고 싶었어요. 제가 만든 6곡이 수록돼있고, 나머지 두 트랙은 선배 입장에서 빚을 보지 못해 아쉬운 후배의 노래를 불러주고 싶었어요.”
 
신승훈. 사진/도로시컴퍼니
 
신승훈의 발라드를 기다리는 팬들을 위한 노래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변화를 주긴 했는데 제가 보기엔 다르지 않아요. 팬들은 제게 예전 그 감성의 노래를 해주세요말해요. 개인적으로는 팬들도 저와 같이 나이가 들어서 감성이 무뎌진 게 아닐까 싶어요. 저는 그냥 그대로 만들 뿐인데, 그래서 억울한 게 있어요. 그래도 이번 노래는 '이게 제가 원했던 거에요'라고 하실 거라는 자신이 있어요.”
 
30년 동안 활동했는데 참 구설이 없다.
가요계의 수도승, 주지스님이라는 말이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무교에요(웃음). 인간 신승훈은 뾰족한 곳 없이 평탄해요. 부모님은 좋아하실 거에요. ‘애먹이지 않고 잘 살아왔다하시겠죠. 하지만 미디어 입장에서는 심심하실 거예요. 노력해볼게요. 어떤 노력을 할진 모르겠지만, 그래도 음악부터 열심히 하면서 그 사이에서 인간미가 있는 소식을 전해드리고자 해요.”
 
눈 여겨 보고 있는 후배 가수가 있다면?
제가 발라드 가수라 발라드 가수를 이야기할 것 같지만, 지코를 꼽고 싶습니다(웃음). 비주얼도 좋지만 음악 자체만 놓고 봐도 참 잘해요. 트랙을 만드는 것, 볼륨감, 배치 등 이런 게 다 잘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앞으로 더 잘됐으면 좋겠고, 음악적으로 사랑 받는 가수로 남아줬으면 좋겠어요.”
 
데뷔 30주년으로 반환점을 맞았다고 했다. 돌아봤을 때 씁쓸함 같은 건 남지 않는가.
제가 몇 살까지 음악을 할지 정하지는 않았어요. 무대에서 노래할때 반키는 용서가 되는데, 나이 떄문에 그럴 수 있다고 보는데 한키 반을 내려서 노래한다던지, 이럴때면 저도 내려가야죠. 원곡을 제대로 못부르면 아닌 거 같아요. 씁쓸하기보다는 연륜으로 커버가 될수 있을까요. 30년만큼 노래는 못할거에요. 대신 연륜으로 무언가를 보여줄 수 있을거에요. 제 목표는 LET IT BE 같은거 쓰는거에요. 화려하지 않은데 먹먹한 감성이 오는 노래요. 신인이 렛잇비를 부르면 안먹힐거에요. 30년 했으니, 무게감이 있는 노래로 대중에게 리프레시를 줄수있을거에요. 씁쓸한데 연륜, 노하우, 스토리로 커버해보겠습니다.
 
30년 활동기간 동안 수많은 히트곡을 발표했다. 가장 애착이 가는 곡은 무엇인가.
매년 변해요. 다 제게는 효자 같은 노래에요. 하지만 30주년에는 가장 의미 있는 노래를 꼽을 수 있어요. ‘미소 속에 비친 그대에요. 그래서 30주년 투어 타이틀도 이 노래 제목이고요. 제게는 가장 의미 있는 노래에요.”
 
발라드의 황제로 군림 중이다. 지겨울 것도 하다.
누누이 말씀 드리지만 저희 집안에 왕족은 없어요. 영의정이 한 분 계시긴 할거에요. 그리고 발라드 황제가 저 혼자가 아니더라고요. 연인과 헤어지고 나서 애틋함을 느끼는 게 좋았던 기억들 때문이잖아요. 제가 여러 장르를 했는데 발라드의 황제라고 불러주는 건, 제 발라드가 대중에게 좋았던 기억이라서 인 것 같아요. 애증의 수식어지만 제 색을 만들어줬어요. 여전히 이 프레임 안에 갇혀서 앞으로 음악을 하고 싶진 않아요. 생각나는 게 있으면 새로운 칭호를 붙여주세요.”
 
신승훈. 사진/도로시컴퍼니
 
발라드의 황제가 싫다면 국민 가수는 어떤 가.
어떤 칼럼을 봤어요. ‘신승훈의 노래는 내 와이프도, 처제도, 다섯 살 딸도, 우리 어머니도 좋아한다. 신승훈은 국민가수다이런 내용이었어요. 그래서 이 타이틀은 반납했어요. 요즘 어린 친구들이 제 노래를 몰라요. 그러니까 국민가수가 될 수는 없어요. 이제는 저를 사랑해주셨던 분들, 제게 추억을 주셨던 분들과 음악을 공유하며 나아가고 싶어요.”
 
30년간 노래만 불렀던 것은 아니다. 로시를 제작했고 프로듀서로서도 활동했다.
제 본업이 가수인데 작곡가 협회, 프로듀서 협회, 제작자 협회에서도 저를 찾아줘요. 돌아보니 정말 많은 일을 했더라고요. 혜안까지는 아니지만, 다양한 시각이 생겼어요. 데뷔 했을 당시 90년대 초반이었고 당시 가요는 연예계의 중심이었어요. 방송사 프라임 시간대에 모두 가요 프로그램을 편성했어요. 이슈를 끌었고, 앨범이 나오면 사람들이 서로 공유하며 입소문을 탔고, 레코드점에 줄을 서던 시기였죠. 앨범을 사기 위한 노력을 많이들 했어요. 아날로그지만 정감 있는 가요계였죠.”
 
오래 활동한 만큼 시장의 변화도 몸소 체험했을 것 같다.
음원 시장으로 바뀌면서노래를 듣자가 아니라노래나 들을까가 됐어요. 다들 바쁜 일상에 지내고 있어요. 예전에는 음악 감상하는 곳에 돈을 내고 들어가기도 했거든요. 지금은 그저 BGM이 된 것 같아요. 저는 유재하, 김현식 이런 분들 때문에 인생이 바뀌었어요. 요즘은 누군가의 삶을 바꾸기보다는 즐거움 그 자체에요. 씁쓸하지 않아요. 편리성도 중요하니까요. 대신 전문성이 강해졌어요. 활동 초기에는 가수들이 다양한 장르를 소화했어요. 지금은 각자 자기 장르 안에서 더 발전해요. ‘음반 시장이었는데 이제는음악 산업이에요. 체계화되고 산업화되고 투명성이 강조됐어요. 지금의 음악은 아날로그 감성은 없더라도 디지털 안에서의 역할은 정말 충실해요. 그 두 가지가 더해진 게 뉴트로겠죠. 참 재미있는 세상이에요.
 
훗날 어떤 가수로 기억되고 싶나
존레논이나, 퀸은 어쩔 수 없는 죽음이라는 것 때문에 신화가 된 거예요. 폴 메카트니처럼 함께 나이 들어가며 호흡하는 사람이지 않을까 싶어요. 그런 사람이 될 것 같아요. 물론 아직 먼 얘기에요. 나이를 먹어가도 신승훈은 항상 옆에 있었고, 그래서 가끔은 잊고 지냈을 정도로항상 곁에 있었다는 말을 듣고 싶어요.”
 
유지훈 기자 free_from@etomato.com
 
  • 유지훈

  • 뉴스카페
  •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