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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다혜

다시 보는 국정교과서 문제 - 시민사회 움직임을 이어보다

우리가 사는 세상 / 가능 사회

2016-05-27 11:42

조회수 : 6,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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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확정 고시가 내려진 지 7개월이 되어간다. 교육부는 집필진을 공개하지 않은 채 역사 교과서 집필을 진행 중이다. 올해 3월 교육부는 초등학교 사회 국정교과서가 5 · 18민주화운동을 왜곡 서술했다는 의혹으로 여론의 질타를 받은 바 있다. 2017년 3월이면, 중학교 역사교과서와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역시 단일 배포된다. 학생들은 대한민국 역사를, 하나의 교과서에 서술된 내용으로 접하고, 익히며, 외우게 된다.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가 낸 국정교과서 반대선언에 따르면, “국정화는 제2의 유신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현 정부의 기조를 놓고 볼 때 국정화 추진은 형용모순이라는 지적이다.
 
국정화 강행을 저지하기 위해 지난 7개월간 학교와 거리에서 시민사회는 일관된 목소리를 냈다. 대학교수들은 국정화 교과서 집필 거부 선언을 냈고, 한국역사연구회 등 역사학 관련 학회도 국정화를 공개 반대했다. 학생부터 중장년층까지 세대 구분 없는 시위가 산발적으로 일어났고, 국정화 반대 서명에는 10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참여했다. 국정화 문제는 시민사회 대부분이 정부와는 반대의 목소리를 내었다 평가해도 과하지 않다. 작년부터 7개월간, 시민사회의 움직임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있었나. 잊혔을지 모를 그간의 노력을 사안별로 추렸다. 과거를 반추하는 일은 언제나 미래의 결정에 도움이 되기에.
 
1) 시위의 현장 - 2015년 9월부터 2016년 2월까지
 
지난 9월 10일 교육부는 국회 업무보고를 통해 2017년 3월 중학교와 고등학교의 역사 교과서를 국정 도서로 배포하는 사업에 착수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10월 12일, 이를 행정 예고한다. 반대 여론은 일파만파로 커졌다. 9월부터 있었던 1인 시위 · 집단 성명의 불이 더 크게 옮겨붙었다. 10월 17일 서울 세종로공원에서는 처음으로 범국민대회가 열렸다. 주최 측 추산 2,000여 명의 참가자가 모였다. 청소년 모임 ‘국정교과서반대청소년행동’의 청소년 거리 행동도 있던 날이었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역사교육은 죽었다”는 피켓을 손에 들었다. 24일엔 역사 교수와 연구자들의 집회가 열렸다. 300여 명의 교수와 교사들이 서대문 독립공원에서 집회를 가진 뒤, 마스크를 쓰고 거리를 행진했다. 
 
11월 3일, 교육부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확정 고시했다. 황교안 총리는 국민 앞에서 현 검정 교과서의 문제점을 들며, 이를 보완하기 위해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것이라 설명했다. 시민사회는 동의하지 않았다. 확정 고시 당일 보건의료 학생들의 국정화 반대 기자회견이 있었다. 600여 명이 광화문 광장으로 모였다. 전국적 규모의 집회도 열렸다. 서울 · 인천 · 부산 · 고양 · 광주 · 청주 등에서 촛불을 들었다. 범국민대회는 11월 7일 네 번째 대회가 열렸다. 시민 1,000여 명이 모여 비가 오는 날씨에도 국정화 철회를 외쳤다. ‘국정교과서반대청소년행동’도 계속된다. 그들은 12월 12일의 열 번째 거리 행동에서 UN에 청원서를 제출했다. 이는 10월 참여연대의 청원에 이은 두 번째 청원이었다. 
 
이후, 올해 2월까지 세대와 집단의 경계를 넘은 시위와 거리행진이 계속되었다.
 
10월 30일의 시위 현장. 사진/ SBS 뉴스 영상 캡처.
 
2) 헌법소원 청구 - 2015년 12월
 
12월 22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인모임(이하 민변)과 한국사국정화저지네트워크(480여 개 시민단체 연대조직, 이하 국정화저지넷)는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헌법소원을 청구하기 위해서다. 민변은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가 헌법을 침해한다고 지적했다. 헌법 전문(자유민주적 정신) · 헌법 제1조(국민주권의 원칙) · 헌법 제31조 제4항(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 · 헌법 제31조 제6항과 제75조(교육제도 법률주의와 포괄위임금지 원칙) · 헌법 제21조(사전검열 금지) · 헌법 제22조 제1항(학문과 예술의 자유) 등을 들어, 역사 교과서 국정화가 헌법에 위반된다고 보았다. 
 
민변은 이미 12월 1일 기자회견을 열어 헌법소원 제기 온라인 청구인단을 모집한다고 밝힌 바 있다. 청구인 모집은 같은 달 15일까지 이어졌다. 학부모와 학생, 교사, 검정 교과서 집필자 등 총 3,374명의 대리인이 모였으며 47명의 변호사가 이를 대리 청구하였다.
 
헌법소원 청구, 사진/국정화저지넷 제공
 
3) 국정화 저지 거리 역사 강좌 - 2015년 11월부터 2016년 1월까지
 
‘거리’에서의 노력은 시위와 거리 행진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지난 11월 21일부터 올해 1월 30일까지 광화문 파이낸스 빌딩 앞에서는 거리 ‘강연’이 열렸다. 국정화저지넷이 마련한 거리 강좌였다. 국정화 찬성 관점의 허구성을 지적하고, 헌법 정신에 비추어 국정화 교과서의 문제점을 짚었다. 
 
국정화저지넷 방은희 사무국장은 강좌의 기획 의도를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는 끝없이 반대 선언을 했다. 범국민대회도 4차까지 진행되었고, 이외에도 다양한 시위에 참여했다. 해외에서도 반대 성명을 보내오는 등 여론이 비판적이었지만 정부는 국정화를 추진했다. 이런 상황에서, 시민들과 만날 수 있는 접점을 생각했다.” 방 사무국장은 교수님과 원로 선생님들이 직접 거리로 나가자는 아이디어를 냈다고 했다. 일반 세미나처럼 소수의 인원만을 위한 강좌 말고, 거리에서 시민과 직접 만나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시민들이 역사에 대해 높은 관심을 가진 상황이었고, 교수님들께서 책임의식을 가지고 계셔 거리에서의 강연을 마다치 않으셨다.” 
 
거리 강좌 당시 날씨는 매우 혹독했다. 방 사무국장은, “정말 추웠다. 강좌를 시작하면 한 시간도 안 되어서 그늘이 확 져서 더욱 추웠다.” 고 말했다. 그러나 날씨와 반대로, 현장의 반응은 뜨거웠다. “강의를 들으려고 한 번 자리에 앉으면 그곳을 떠나는 분이 없었다. 모두 열심히 들어주었다. 날씨를 걱정해 질문을 조금 받으려고 해도, 시민들이 질문을 많이 해주셔서 강의 시간이 예상보다 길어졌다.” 
 
책상과 마이크만으로 시작된 그 거리 강좌엔 한계가 없었다. 오가는 모든 사람이 학생이 되었고, 그들이 서 있는 땅이 교실이 되었다. 팩트TV는 거리 강좌를 실시간 중계했다. 방 사무국장은 이 중계방송을 보고 지방의 한 시민이 “나중에 우리 지역에도 강의를 와주면 안 되느냐”고 문의했다고 전했다. (팩트TV의 거리 강좌 영상은 유튜브에서 전 강의를 다시 보기 할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6LwUDImh4mQ)
 
거리 역사강좌 현장. 사진/팩트TV 방송 캡처
 
강좌의 내용은 지난 3월 23일 책으로 출간되었다. ‘거리에서 국정교과서를 묻다’란 제목이다. 10강의 거리 강좌 중, 논란이 있는 고대사 관련 이야기가 빠진 9개의 강의가 실렸다. 건국절 수립의 문제점이나 우리나라 헌법 정신에 비춘 교과서 국정화 문제, 독립운동사와 외국의 교과서 발행제도 등 폭넓은 주제가 실렸다. 방 사무국장은 “(거리 강좌의) 좋은 내용이 사람들에게 많이 읽혀야 한다고 생각했다. 책은 원래 아주 느린 매체이나, 이미 거리 강좌 내용이 있으니 거기에 자료를 보완해 출판했다. 강좌 내용에 덧붙여 독일의 보이텔스바흐 합의, 유엔총회 보고서, 헌법소원 제기 이유를 부록으로 넣었다”고 전했다. 그녀는 시민들이 읽기 쉽도록 자료를 만드는 데에 많은 노력을 했다고 강조했다.
 
'거리에서 국정 교과서를 묻다' 표지. 사진/네이버 책 캡처
 
4) 총선 낙선 운동 - 2016년 2월부터 4월까지
 
2016년부턴 시민사회의 관심이 20대 총선에 모였다. 자연히 국정화 저지 노력도 총선과 관련한 양태로 변했다. 2월 17일 ‘2016총선시민네트워크(이하 총선네트워크)’가 발족했다. 역사정의실천연대, 반값등록금실현및교육공공성강화를위한국민본부, 국정화저지넷,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등 총 1,000여 개의 시민사회단체가 함께 하였다. 총선네트워크에서도, 역사 관련 의제가 가장 먼저 발표되었다. 총선네트워크에서 활동한 국정화저지넷은 3월 1일 ‘역사범죄 관련 20대 총선 집중 심판 대상자 명단’을 발표했다. 명단에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황우여 전 교육부 장관, 김을동 새누리당 역사교과서개선특별위원장, 이정현 새누리당 최고위원, 나경원 새누리당 의원의 이름이 올랐다. 
 
3월 15일에는 민주주의국민행동(상임대표 함세웅)과 민족문제연구소의 주최로 ‘리멤버 카’ 캠페인이 시작됐다. 세월호 참사와 일본 위안부 문제, 국정화 교과서 문제의 해결을 위해 20대 총선 참여를 잊지 말자는 게 골자였다. 리멤버카는 서울 · 경기 · 인천 일대의 대학가와 지역 120여 곳을 순회했다. 
 
리멤버 카 캠페인. 사진/페이스북 포스팅 캡처
 
일련의 노력은 4월 6일, 총선 일주일 전 총선네트워크의 ‘Worst 10 후보’와 ‘Best 10 정책’ 발표로 이어졌다. 4월 3일부터 사흘간 이루어진 온오프라인 설문조사를 통해 총 35명의 낙선 후보자 중 10명을 선정했으며, 낙선 명단 선정 기준에는 국정교과서 추진이 포함되었다. 이 활동은 선관위의 제지를 받은 바 있으나 네트워크 측은 “해당 활동은 여론조사가 아니라 선거운동”이라 설명하며 발표를 진행했다. Worst 후보자에는 김석기(경북 경주시), 김무성(부산 중구영도구), 나경원(서울 동작구을), 김진태(강원 춘천시), 김을동(서울 송파구병), 윤상현(인천 남구을), 오세훈(서울 종로구), 황우여(인천 서구을), 최경환(경북 경산시), 김용남(경기 수원시병) 후보가 뽑혔다. 해당 후보 중 김을동 · 오세훈 · 황우여 · 김용남 후보가 20대 총선에서 낙선했다. 
 
5) 복면집필자 제보 패러디 영상물 - 2016년 5월부터, 바로 지금
 
총선 결과는 현 정부에 비판적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이 새누리당보다 많은 의석수를 확보했고, 국민의당이 제3당으로서의 입지를 다지며 여소야대 국회가 완성됐다. 국정화 문제는 바뀌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금 같은 교과서로 배우게 되면 정통성이 북한에 있으므로 북한에 의한 통일이 될 수밖에 없다”며 국정화의 의지를 다시 강조했다. 교육부는 국정역사교과서 초안을 완성했다고 밝혔다. 집필진과 편찬기준은 공개하지 않았다.
 
이에 국정화저지넷은 공익 제보 운동을 시작했다. 지난 5월 4일 ‘복면집필자 제보 독려 패러디 영상물’을 제작·배포한 것이다. 해당 영상은 SBS의 탐사보도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를 패러디한 것으로, 교과서 집필진을 공개하지 않는 교육부의 행태를 돌려 지적했다. 영상은 집필진이 세 가지 유형 중 하나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졸린 자, 떠는 자, 거만한 자’가 그것이다.
 
‘그들이 알고 싶다’ 영상 컷. 사진/국정화저지넷 제공
 
방은희 국정화저지넷 사무국장은 패러디물의 기획 의도에 여러 이유가 있다고 밝혔다. “먼저 국정교과서에 대한 시민의 관심을 다시 환기하는 것에 목적이 있다. 국정화를 막으려면 시민들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한데, 우리나라에 이슈가 너무 많다 보니 시간이 지나면 잊기 쉽다. 그래서 우리는 할 수 있는 선에서 관심을 지속시킬 만한 일들을 기획했다.” 또한 “교육부가 꼭꼭 숨기고 있는 교과서 집필진을 집단 제보로 찾아내고자 했다. 교육부는 역사학자뿐 아니라 정치학자, 법학자, 경제학자 등 인접 학문의 학자까지 집필진에 포함하겠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집필진이 누구인지 밝히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집단 제보라는 힘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실질적 성과가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방 사무국장은 “그렇다”고 답했다. “물론, 집필진이 맞는지 추적하는 과정은 철저하게 진행할 것이다.” 그녀의 덧붙임이다.
 
20대 국회의 지형이 달라지면서, 국정교과서를 막을 수 있을 거란 기대감 역시 높아졌다. 새누리당을 제외하고 더불어민주당 · 국민의당 · 정의당 모두 20대 총선 공약으로 ‘역사 교과서 국정화 저지’를 들었다. 이미 19대 국회에 국정화 저지 발의안이 계류된 상태다. 그러나 20대 국회에서 야당의 공조가 이루어지더라도, 저지 법안이 통과되려면 국회 출석의원 과반의 표를 얻어야 한다. (20대 국회 구성은 다음과 같다 : 더불어민주당 123석, 새누리당 122석, 국민의당 38석, 정의당 6석, 무소속 11석) 또 그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박근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법안은 다시 국회로 돌아온다. 
 
해당 기사에선 총 5개의 사안 별로 ‘시민사회’의 움직임을 이어보았다. 물론 국정교과서 저지 노력에 이것만이 있다고 볼 수는 없다. 대안교과서를 제작하려는 시도 교육청도 있다. 전라북도 교육청, 세종시 교육청, 서울시 교육청을 포함한 총 6개 시 · 도교육청과 한국역사연구회 및 전국역사교사모임 등이 그 주체다. 이어지는 기획기사에선, 교육부의 국정교과서에 대한 대안을 찾는 민관합작 (유사) 교과서 제작에 관해 이야기한다. 
 
 
 
정연지 baram.asia  T  F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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