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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혁

(스포츠에세이)삼성 스포츠단의 변화와 '자생력'

2016-02-17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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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임정혁기자] 국내 프로스포츠 구단은 해마다 적자를 보전하기 위해 모기업으로부터 돈을 받아 쓰는 것을 당연히 여겨왔다. 모기업들도 수익성에는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고 홍보 차원에서의 스포츠단 운영만 생각했다. 일종의 사회 환원 명목으로 구단 예산을 책정해 돈을 풀었다. 프로스포츠는 모기업의 든든한 지원과 팬들로부터의 인기를 바탕으로 국내 경제 환경과는 전혀 무관한 무풍지대로 취급되며 거대 자금을 쏙쏙 빨아들였고 마침내 선수들의 억대 연봉 시대를 열어젖혔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이러한 흐름에 변화가 생길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스포츠계의 큰손으로 불리는 삼성이 최근 변화의 신호탄을 쏘아올렸기 때문이다. 양대 프로스포츠로 불리는 야구와 축구의 시즌이 시작되면 삼성의 이러한 행보가 본격적으로 실험대에 오른다. 삼성발 변화의 핵심은 "프로스포츠단도 자생력을 키우자"는 것이다.
 
삼성은 지난 2014년부터 변화를 꾀했다. 각 계열사가 관리하던 스포츠단의 지분을 제일기획으로 통합해 나갔다. 특히 지난 1월1일에는 가장 큰 규모의 삼성 라이온즈(야구)까지 제일기획 산하에 들어갔다. 이로써 제일기획은 수원 삼성(축구), 서울 삼성(남자농구), 삼성생명(여자농구) 삼성화재(남자배구)를 포함해 5대 프로스포츠 구단을 보유한 기업이 됐다.
 
스포츠계가 이러한 변화에 주목하는 이유는 삼성이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국내 스포츠계를 선도해온 기업이기 때문이다. 삼성은 뛰어난 선수가 있으면 어김없이 영입해 늘 우승에 도전하거나 오랜 기간 정상을 차지했다. 삼성 라이온즈의 경우 지난해까지 사상 최초의 정규 시즌 5년 연속 우승이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일부 선수들의 해외 원정 도박이 아니었다면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통합 5연패까지 이룰 수 있었을지 모른다.
 
막강한 투자를 바탕으로 한 삼성의 독주는 국내 프로 스포츠산업 환경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프로스포츠계가 '성적지상주의'에 빠져 있는 가운데 다른 기업들까지 돈을 풀게 하는 파장을 일으켜왔다. 그러던 중 제일기획으로의 스포츠단 통합이 발표됐다. 모기업의 지원을 끊고 자생력을 강화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일대 변화를 예고한 셈이다.
 
비시즌 기간 동안에도 프로야구와 프로축구에서 이미 달라진 태도가 감지됐다. 삼성 라이온즈는 FA시장에서 주축 선수인 박석민을 NC에 내줬다. 기존의 다른 선수들과 재계약에서도 예전과 같은 '연봉 대폭 인상' 등의 소식이 없었다. 심지어 최근에는 팀 내 에이스급의 선발 투수를 트레이드 시장에 내놨다는 소리도 들린다.
 
수원 삼성도 마찬가지다. 이번 K리그 겨울 이적시장에서 이렇다 할 대어급 선수 영입이 없었다. 전북 현대나 FC서울이 전력 보강에 힘쓰고 있지만 삼성은 그간의 행보와 다르게 조용하다. 유망주 위주의 육성으로 내실을 다지는 데 집중하겠다는 방침이다. 그간 활발한 투자를 했던 것과 대조되는 분위기다. "프로스포츠단도 2~3년 이내에 독립경영 체제로 운영될 것"이란 예측이 현실화되는 모양새다.
 
특히 삼성은 스포츠단을 제일기획으로 통합하는 과정에서 과감히 허리띠를 졸라매기도 했다. 비교적 비인기 종목에 속하는 삼성중공업 럭비단과 삼성증권 테니스단 등 2개 팀을 없앴다. 한때 "아무리 스포츠단이라도 매년 적자만 기록하는데 돈을 푸는 게 맞느냐"는 지적이 기업 내에서 나왔다고 한다. 인기 종목에 투자하되 그마저도 자생력을 다지겠다는 의지가 여러 사안에서 읽힌다. 
 
어렵게 자생력이라는 화두를 던진 삼성이 과연 국내 스포츠를 거대 엔터테인먼트 산업으로 거듭나게 하는 주춧돌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통합 이후 제일기획 매각설이 나오면서 분위기가 뒤숭숭하긴 하지만 삼성이 어쨌든 스포츠단을 버리기는 힘들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만큼 삼성 스포츠단의 자생력 강화는 여전히 유효한 화두다. 봄부터 본격 가동될 삼성 스포츠단의 변화가 유의미한 결과물들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임정혁 기자 komsy@etomato.com
 
◇지난달 11일 경북 경산볼파크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 시무식 및 사장 이취임식'에 참석한 삼성 선수단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삼성 라이온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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