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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다혜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10월 17의 목소리

우리가 사는 세상

2015-10-19 18:09

조회수 : 6,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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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빼곡히 계단에 앉아 있었다. 앳된 모습의 청년이 나타났다. “저들은 지금 역사 전쟁이라고 말하면서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저들이 전쟁이라고 하는데 우리도 그에 걸맞게 싸워야 되지 않겠습니까?” 격양된 분위기에 알맞은 빠른 리듬의 말. 마이크를 들고 외치는 그에게 청중은 연신 “옳소”라 답했다. 
 
시위대 앞에서 발언하는 대학생. 그는 연세대 노동자연대의 일원이라고 했다.사진/바람아시아
 
2015년 10월 17일. 서울 중구 파이낸스센터 앞에서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시위가 열렸다. 민중 총궐기 투쟁본부의 주최였다. 같은 날 집회가 이미 여럿 열린 가운데 700여 명의 사람은 또 한 번 모였다. 중 · 고등학생부터 대학생, 그리고 가족 단위의 참가자까지, 시위대 세대는 폭이 넓었다. 정부의 노동개혁을 막겠다는 의미도 있었으나 골자는 ‘국정화 저지’였다.
 
오후 7시 30분경. 그 앳된 청년은 정부에 맞서 적극적인 반대 행동을 보이자는 말로 발언을 끝냈다. 사회자는 박수를 끌어냈다. 그 자신의 발언이 이어졌다. “새누리당은 김일성 주체사상이라는 것을 현수막에 거는 순간 그 프레임을 요구합니다. 그 프레임의 핵심은 뭡니까? 종북입니다. 국정화를 반대하는 사람은 종북입니다.” 그는 새누리당의 현수막 해프닝을 지적하며 뭇 문제 제기에 종북주의자 낙인을 찍는 수법이 이번에도 쓰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회자가 지적한 현수막. YTN 방송. 캡처/바람아시아
 
오후 7시 33분, 또 다른 청년이 나왔다. 그는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 자리에 섰다고 했다. 민중 총궐기 서울 준비위원회 활동가였다. 그는 ‘노동개혁을 통해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준다는 말의, 또 앞서 나온 ‘새누리당 현수막’ 해프닝의 오점을 드러냈다. 노동개혁이 아닌 재벌개혁이 필요하다고 외쳤다. 이어서 시민들이 만든 현수막과 대자보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자기네 단체가 만든 현수막이 네티즌에게 반응이 좋았다며 자랑하기도 했다. 앞선 발언들과 달리 담담한 어조였다.
 
분위기가 무르익어갈 무렵, 가수 ‘이수진’이 등장했다. 그녀는 “먹고 사는 일이 바빠 늦었다”며 말문을 열었다. 여러 농담을 던져 장래의 분위기를 바꾸더니 기타 반주가 흐르자 노래를 시작했다. 첫 번째 곡 제목은 ‘못 살겠네.’ “우리가 가장 많이 하는 말. 못 살겠네, 미치겠네.” 흥겨운 가락에 청중은 박수로 리듬을 맞췄다. 두 번째 곡은 고(故) 김광석의 ‘일어나’였다. “일어나, 일어나. 다시 한 번 해보는 거야.” 첫 곡에서는 드문드문 들린 것과 달리 둘째 곡엔 청중의 흥얼거림이 꽤 있었다. 두 번째 곡은 ‘잘 아는 노래’ 일 거라던 그녀의 말은 과연 맞았다. 
 
 ‘일어나’를 부를 때의 청중. 가운데 흰 상의를 입은 사람이 가수다. 사진/바람아시아
 
노래를 끝으로 발언 시간은 마무리됐다. 사람들은 행진을 위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행진은 청계 1로를 따라 보신각을 거쳐 종로까지 움직인 뒤, 을지로로 내려와 국가인권위로 이동하는 순이었다. 이동 직전 사회자는 “모르면 앞사람을 졸졸 따라가라”고 했다. 함성과 더불어 음악이 흘러나왔다. 
 
 청계광장으로 이동하던 도중. 깃발이 바람에 나부낀다. 사진/바람아시아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청계광장을 지나 종로까지 걷는 동안 줄곧 사람들은 외쳤다. 앞말을 누군가 크게 던지면, 뒷말을 다수가 받았다. 왼편의 도로가 눈에 들어왔다. 경찰은 지나가는 버스가 시위대를 해하지 않도록 안내했다. 버스 속 한 아주머니는 시위대를 찌푸린 얼굴로 쳐다봤다. 찰나의 순간이었다. 시위대는 그저 문구를 잘 보이게 하려고 자꾸만 손을 위로 올리고 옆으로 틀었다. 그들이 걷는 길가에는 다양한 생각이 겹쳤다, 멀어졌다.
 
 
종로에 도착한 시위대. 사진/바람아시아
 
오후 8시 20분. 구호가 바뀌었다. “친일·독재”, “국정화 반대!” 종로를 거쳐 을지로로 이동하던 중이었다. 새로운 구호가 입에 익지 않았는지 몇 차례 혼선도 있었다. 두 번째 구호는 앞에서, 첫 번째 구호는 뒤에서 들려왔다. 웅얼웅얼, 소리는 겹쳤다. 8시 30분 세 번째 구호가 시작됐다. “유신 부활”, “집권 중단!” 경찰은 첫 번째로 고지했다. “여러분들은 지금 허가되지 않은 불법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을지로 입구에 다다른 무렵이었다. 
 
시위대는 결국 시청에 도착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근방 국가인권위원회 건물 앞에 도착했다. 전경이 건물을 둘러싸고 있었다. 건물 위에는 두 명의 노동자가 보였다. 8시 43분, 시위대는 기아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2분 뒤 인도로 올라가라는 경찰의 마지막 고지가 흘러나왔다. 미리 마련된 자리에 있던 발언자는 계속 외쳤다. 그는 며칠 전의 ‘용역 습격’ 사건을 설명했다. 용역업체 사람들은 그들을 끌어 내리려 폭력을 저질렀다고 했다. 높은 곳의 그 두 노동자는 120여 일간 투쟁하던 중이었다. 
 
국가인권위원회 앞. 기아자동차 비정규직 해고자들을 위한 구호가 외쳐졌다. 사진/바람아시아
 
8시 55분.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를 중단하라는 구호가 다시 시작됐다. 발언자는 뒤이어 11월 14일 있을 ‘민중 총궐기’에 나와 투쟁하자고 했다. 사람들은 몇 차례의 함성으로 답했다. 연대하겠다는 다짐, 노동자 두 명에게 보내는 응원 같은 것이었다. 슬슬 차도에는 사람들이 빠져나갔다. 인도에 대다수가 머물렀다. 전반적으로 시위대의 규모가 줄었다. 발언자는 목이 쉰 모양이었다. 목소리가 탁했다. “참여하라”는 그의 말은 또렷하지 않았다.
 
2시간 남짓의 시위 행렬은 마무리되었다. 투쟁 노동자 두 명에게 힘내라는 외침을 보낸 것이 마지막이었다. “최정명 힘내라.”, “한규협 힘내라.” 그리고 이어지는 함성. 2015년 10월 17일 토요일의 집회는 이것으로 끝이 났다.
 
지난 12일 ‘중 · 고등학교 교과용 도서 국 · 검 · 인정 구분 안’을 교육부는 행정예고 했다. 그 날로 20일이 지나 11월이 되면 고시는 확정된다. 내달 초 ‘국정화 교과서 집필진’을 꾸리겠다고 교육부는 이미 밝혔다. 17일 집회는 시민과 경찰 사이 큰 충돌 없이 끝났다. 이 평화(?)가 얼마나 갈지는 의문이다. 이판사판의 정부 탓에 시민의 인내심도 곧 다할 듯하다. 시위에서 들었던 그들의 목소리는 아직도 우렁차다.
 
 
정연지 기자 baram.asia  T  F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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