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기자
닫기
조성은

secho@etomato.com

조성은 기자입니다
기자, 기자님, 기레기

2024-05-02 18:30

조회수 : 640

크게 작게
URL 프린트 페이스북
기자는 그나마 일상적으로 존대 받는 몇 안 되는 직업입니다. 속으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일단 출입처나 취재원으로부터 기자'님'이라 불리고 당연스럽게 대접받습니다. 이런 직업 흔치 않습니다. 사회가 기자를 아직까지 그래도 예우하는 이유는 권력의 감시자로서 사회의 부조리를 꼬집고 변혁을 이끄는 기자의 역할 때문입니다.
 
물론 과거와는 달리 요즘 기자들은 '기레기'라는 멸칭으로 표현되며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했다는 불평이 난무한 것도 사실입니다. 상당수의 기자들이 위 같은 이유로 긍지가 꺾여 '탈기자'를 하게 됩니다.
 
일각에서는 기자의 사회적 위상이 저하된 이유를, 정보권력을 쥐고 선민의식에 도취돼 사명을 다하지 않고 힘을 남용한 일부 기자들의 일탈에서 찾습니다. 실제로 어떤 기자들은 기자의 권위를 이용해 취재원들로부터 각종 민감정보를 취합하면서도, 자신의 실수나 잘못이 발생했을 때는 여간해선 인정하지 않으려 하기도 합니다. 
 
최근 근로복지공단이 직장 내 괴롭힘으로 2022년 사망한 모 언론사 기자에 대해 산업재해를 인정한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시민사회는 '어떻게 사회 부조리를 고발한다는 기자가 지위를 이용해 부하직원을 괴롭혀 죽음으로 내몰 수 있냐'며 인권의식이 부재한 기자사회의 조직문화에 비난을 쏟아냈습니다. 고인은 지속적인 상사의 폭언, 공개적 모욕, 차별적 업무 형태 강요, 무리한 업무지시에 시달리다 스스로 세상을 등지는 선택을 했습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직장 내 괴롭힘 근절 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해당 언론사는 "근로복지공단의 (산재가 인정된다는)판단은 존중하지만 직장 내 괴롭힘을 인정하지는 않는다"는 이해하기 힘든 옹색한 답변을 하며 직장 내 괴롭힘 사실을 부정했습니다. 자체 조사한 사내 괴롭힘 조사 결과에 대해서도 '비밀유지 협약'이라는 이유를 들어 유족에 끝내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그 여파로 기자사회는 또 한 번 일렁였습니다. 
 
뭇 기자들은 내집단의 부조리엔 눈 감고 쉬쉬하면서, 외부를 비판하는 위선적인 조직에 환멸을 느낀다고 토로했습니다. A기자는 "상사의 인격 모독으로 사람이 죽었는데 이걸 유야무야 덮으려 한다"며 "그런 회사를 믿고 계속 다닐 수 있겠냐"고 말했습니다. 수년 전 직장 내 성희롱 피해를 회사에 알렸다가 좌절하고 전직한 경험이 있는 전직 기자 B씨도 "언론사라 부정을 용납하지 않고 상식적인 조처를 할 것으로 믿었지만 사건을 은폐하려 하더라"면서 "내 인권이 침해당한 상태에서 타인의 인권을 부르짖는 기사를 써야만 했다, 그런 현실에 절망해 퇴사했다"고 호소했습니다.
 
많은 기자들이 사회적 평가 하락으로 직업만족도가 떨어지고 사기가 저하된다고 하소연합니다. 하지만 냉정하게 돌아볼 부분이 있습니다. 직업적 책임은 다하지 않으면서 필력을 이용해 허물을 감추는 등의 잘못된 관행이 용인되는 면이 있었고, 이것들이 켜켜이 쌓여 사회적 평가 하락이란 결과를 만들어낸 것은 아닌지 말입니다. 추락한 위상을 회복하기 위해선 냉철한 성찰과 통렬한 반성이 필요합니다. 다행히 아직 희망은 있습니다. 
 
기자사회의 부조리와 소명의식의 미비가 신랄하게 비난받는 건, 여전히 대중들에게 기자란 '아무나 할 수 없는 직업', '아무나 해서는 안 되는 직업'이라 여겨진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기자는 부정을 좌시하지 않고 바로 잡을 것이며, 사안에 대한 엄격한 팩트 체크를 거쳐 기사로 풀어낸다'는 기대가 남아 있는 것이죠. 그래서 법원도 기자가 쓴 기사를 증거로 채택하는 것일 테고요.
   
이봉수 한국미디어리터러시스쿨 원장은 "기자는 하고자 하면 못 할 것이 없고, 안 된다고 생각하면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했습니다. 김성재 시민언론 민들레 에디터도 "늘 당당한 자세로 권력을 감시하며 부끄러운 기사는 쓰지 말라"며 기자에게 부여된 사회적 책임을 잊지 않을 것을 당부했습니다. 
 
공감합니다. 기자가 존경받는 대체 불가 인력이 되느냐, 누가 해도 상관없을 노동자로 남느냐는 우리 하기 나름이라 믿습니다.
 
  • 조성은

조성은 기자입니다

  • 뉴스카페
  • email
  • faceb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