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기자
닫기
권익도

세계 음악계 'AI 빅뱅'…K팝 향방은

2023-11-30 00:02

조회수 : 2,936

크게 작게
URL 프린트 페이스북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최근 미국 팝스타 라우브가 한국어로 부른 '러브 유 라이크 댓(Love '이 세계 음악시장을 놀래켰습니다. 이제는 언어에 관계 없는 초국적 제작 환경이 음악 생태계를 완전히 바꿔놓을 것이라는 걸 가시적으로 보여준 셈인데요. 전문가들은 올해 '수퍼톤 기술'을 선보인 방탄소년단(BTS) 기획사 하이브를 중심으로 'AI 빅뱅'이 K팝 시장까지 재편할 수 있다고 내다봅니다. 초상권과 비슷한 법적 개념의 음성권에 대한 이슈도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세계 음악계 'AI 빅뱅' 시대에 K팝의 향방은 어떻게 될까요.
 
우선, 라우브의 '러브 유 라이크 댓((Love U Like That·한국어 버전)'이 시사하는 바는 큽니다. "췌했나봐~"로 시작해 '영미권 사람들 특유의 그 빠다 성조'처럼 들리는 이 노래는 라우브가 한국에서 어학연수라도 하고 부른 듯한 착각을 일으킵니다. 실제로는 K팝 그룹 유키스 출신의 케빈이 부른 노래에, 라우브의 목소리를 학습한 인공지능(AI) 필터를 입히는 방식으로 제작했다고 합니다. 세계 팝 역사상 미국 팝스타가 AI(인공지능) 모델링 기술을 활용해 영어 이외의 언어 음원을 발매한 첫 사례라는 의미도 새겼습니다.
 
라우브, 미국 싱어송라이터. 사진= Lauren Dunn
 
'음악계 AI 빅뱅'…아델의 한국어 노래가 멜론 상단에?
 
AI 기술을 활용한 다국어 음악 제작·개발의 신시장이 열렸다는 점에서 가히 'AI 빅뱅'이라 할 만한 사건으로 업계 전문가들은 평가합니다. 최근 브루노 마스가 부른 뉴진스의 ‘Hype Boy’, 아이유가 부른 피프티 피프티의 ‘Cupid’처럼 인기를 끌고 있는 유튜브 상의 AI 커버곡들과는 비슷하면서도 묘하게 다릅니다. 글로벌 초거대 음반사인 유니버설뮤직의 공식 유통망을 활용한 점이라든지, 실제 공식 음원으로 제작돼 음악 시장에 공식적으로 자리잡았다는 점 등이 주목할 만하다는 겁니다.
 
이런 현상은 가장 먼저 작곡가와 프로듀서들에게 즉각적이고 심대한 영향을 끼치리라는 예상으로 이어집니다. 임희윤 음악평론가는 "이를테면, 한국의 작곡가가 미국 시장에 어울릴 만한 뛰어난 곡을 쓴 뒤, 피칭 단계에서부터 AI 필터를 이용해 완벽한 영어 버전을 글로벌 퍼블리싱 컴퍼니에 던질 수도 있을 것"이라며 "더 나아가 한국 가수에게 한국어로 부르게 한 뒤 각국의 언어 필터를 입혀 전 세계에 유통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시장'이 한국어권에서 전 세계로 확장되는 것"이라고 봅니다. 
 
임희윤 평론가는 "한국의 음악 종합 차트에 언어 장벽을 넘어 영미권의 팝송 '인베이전'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이라며 "예를 들어, 지금껏 우리가 아델의 노래들을 분위기 좋은 팝송 정도로 소비해왔다면, 이제는 실제로 아델의 신곡이 아델의 그 목소리로 호소력 짙은 한국어 버전으로 발매 됐을 때 우리는 완벽한 감정이입을 통해 '혼코노'에 가서 그 곡을 목이 터져라 열창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테일러 스위프트나 도자캣, 드레이크 같은 미국 빌보드 점령 가수들의 한국어 노래가 멜론 등 국내 차트 상단을 휩쓰는 것도 불가능한 상상만은 아닐 겁니다.
 
세계 음악계 'AI 빅뱅' 시대에 하이브는 최일선에 있습니다. 앞서 지난 5월, 하이브는 ‘에이트’ 출신 가수 이현이 ‘미드낫(MIDNATT)’으로 발표한 데뷔곡 ‘Masquerade’를 6개 국어(한국어, 영어, 일본어, 중국어, 스페인어, 베트남어)로 동시에 선보인 바 있습니다. 6개의 다국어 음원으로 출시된 것은 세계 최초의 기록이었습니다. 당시 하이브는 자체 인수한 AI 오디오 기업 ‘수퍼톤’의 기술을 활용해 원어민의 발음 데이터를 결합해 발음과 강세를 보강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보이스 디자인’ 기술을 통해 이현의 목소리를 여성 버전으로도 바꾸는 시도까지 선보였습니다. 
 
지난 8월, 서울 올림픽공원 케이스포돔(KSPO DOME·옛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세계적인 팝스타 라우브의 첫 내한 단독 공연. 사진=라이브네이션코리아
 
세계 음악 시장 패러다임 바꿀까
 
AI기술을 활용한 노랫말 다국어 변용은 K팝, 더 나아가 세계 음악 시장의 패러다임 자체를 완전히 바꿔놓을지 모릅니다. 임희윤 평론가는 "한 마디로 얘기하면, 전 세계 작곡가들이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에 돌입하게 되는 것"이라며 "특히 K팝은 춤, 외모, 뮤직비디오, 일상 소통 콘텐츠 등을 통해 가히 종교적이라고 할 수 있는 충성도 높은 팬덤을 일구는 것이 특징이다. AI 발달로 인해 전 세계 누구든 어떤 언어로도 호소할 수 있는 음악의 시대가 온다면 IP의 힘, 브랜드 파워가 더 중요해질 것이고, 그런 면에서 K팝은 유리하다"고 짚습니다.
 
"가창자나 스타마저 점차 AI로 대체될 'AI 빅뱅'이 본격화하기 전에 충성도 높은 '인간 IP', '회사 IP'를 최대한 키워놓는 것이 가요기획사들 입장에서는 급선무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임희윤 평론가는 내놓습니다.
 
그러나 일각에선 아직까지 시장에 큰 영향은 주지 않고 있어 지켜봐야한다는 의견도 나옵니다.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는 "AI를 통한 다국어 버전 발표는 하나의 진출 수단이자 좋은 부가 상품 단계로, 아직까지 시장에 큰 영향을 주고 있진 않아보인다"며 "창작의 오리지널리티가 인간 DNA에 잠재돼 있는 한, 그 본능의 심리적 저항선을 넘는 것이 'AI 음악'이 지닌 현재의 한계"라고 봅니다. 또 "K팝의 경우도, 배우기 힘든 낯선 언어로 그 현지 시장을 공략한 신곡으로 내는 경우가 아니고서는 아직 섣불리 볼 수 없는 단계"라고 진단합니다.
 
최근 AI음악 시장이 열리면서 초상권과 비슷한 법적 개념의 음성권에 대한 이슈도 해외에선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구글은 발 빠르게 유니버설뮤직과 협상에 들어가면서 음성권에 선제적 대응을 하려하고 있습니다. 다만, 아직까진 개별 기업 단위의 조율인 데다, 음성권은 그 범위가 넓어 기존 음악 저작권의 개념보다 정착되는 게 오래걸릴 것이란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김작가 평론가는 "(저작권 판별에 대해) 명확한 소스가 있는 '샘플링'도 70년대 이미 있었지만 법으로 규정된 게 80년대였다"며 "음성권은 AI의 학습 대상 유무에 따라 사용 가능한 소스의 범위가 상대적으로 훨씬 넓다. 음성 창작자들에게 크레딧을 어떻게 줄 것인가가 결국 핵심 쟁점이 될 것"이라 내다봤습니다.
 
그룹 방탄소년단(BTS)을 발굴한 17년 차 가수 이현의 음악에 AI 기술을 접목한 프로젝트 ‘미드낫’. 사진=하이브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 권익도

  • 뉴스카페
  •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