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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그래미, K팝 외면한 이유

"패턴화된 K팝, 음악성·예술성 미흡하다는 방증"

2023-11-14 11:10

조회수 : 4,6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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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전 세계 음악계 '에베레스트'로 꼽히는 대중음악 시상식 '그래미 어워즈(Grammy Awards)'의 벽은 여전히 가팔랐습니다. 올 한 해 전 세계를 휩쓸며 ‘음반 판매 1억장 시대’까지 내다보고 있는 상황에서도 K팝은 이 고산(高山)의 문턱엔 닿지 못했습니다. 
 
10일(현지시간) 그래미상 어워즈를 주관하는 미국 레코드 예술과학아카데미(NARAS)에 따르면, 내년 2월 열릴 '제66회 그래미 어워즈' 후보 명단에 K팝 가수들은 하나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특히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지난 2020∼2022년 3년 연속으로 '베스트 팝 듀오 그룹 퍼포먼스' 부문 후보에 올랐었던 만큼, 기대감이 컸던 상황이었습니다.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차트 '핫100'에서 '라이크 크레이지'와 '세븐'으로 각각 1위를 차지한 지민과 정국 등 BTS 솔로 후보 지명이 조심스레 예상됐으나 현실화되진 못했습니다.
 
빌보드 '핫100'에 동시 3곡을 올린 걸그룹 '뉴진스'도 제너럴 필즈(본상) 중 하나인 '베스트 뉴 아티스트(Best New Artist)' 부문에 후보가 될 수 있다는 예상이 미국 대중음악 매체 '롤링스톤' 등으로부터 나왔으나 역시 불발됐습니다.
 
올해는 K팝의 새 분기점이라 할 만큼 한국 대중음악 사상 음반 판매의 초유 기록이 연일 경신되는 해로 예상됩니다.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음반 판매가 1억장을 넘어설 것이란 예상은 상반기부터 일찌감치 나왔습니다. K팝 최초로 한 해 동안 1000만장의 판매고를 올린 세븐틴, 올해 미국 빌보드 메인 앨범차트 '빌보드 200' 정상에 두 개의 앨범을 올린 '스트레이 키즈', 미국 스타디움 콘서트를 성사시킨 '트와이스', '큐피드'로 '핫100'에서 장기 성적을 이어간 '피프티 피프티' 등이 모두 고배를 마셨습니다.
 
2022년 4월 64회 그래미어워즈에 참석했던 방탄소년단(BTS). 사진=뉴시스·AP
 
1958년 시작된 그래미 어워드는 빌보드 뮤직 어워즈(1990년 시작),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1974년 시작)와 함께 미국 3대 음악 시상식으로 꼽히지만, 세 시상식 중 음악성, 역사적 측면에서 가장 큰 권위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대중 투표 방식으로 전환한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 빌보드 차트 성과를 기반으로 두는 빌보드 뮤직 어워즈와는 기준 자체가 다릅니다. 차트 성적이나 음반 판매량 등 상업적 성과보다는 음악성과 작품성, 사회적 영향까지 시상에 포괄합니다. 실제로 보수적인 40대 이상 백인 남성이 주 선정위원으로, 실제 회원 가운데 아시아 지역 비중은 10%도 채 되지 않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나마 최근 몇 년 간 새로운 위원단 유입과 투표 방식의 변화는 특정 성별, 인종, 소수 장르 등에 치우쳐있던 무게 추를 소폭 이동시켜왔습니다. 2021년부터 기존 비밀 위원회를 철폐하고 레코딩 아카데미 회원 중심의 수상 행보를 보이면서, 의외의 인물들이 최종 수상까지 가는 분위기도 나오고 있지만, 아직 K팝에는 그 개방의 문을 열지 않고 있습니다.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는 "K팝은 전 세계에서 '대첩'이라 할 만한 성과를 거둔 것이 사실이나, 그래미의 이번 결과는 역설적으로 'K팝이 음악적, 예술적으로 미흡하다'는 방증일 수 있다"며 "이미 세계 시장에서 초특급 대우를 받고 있는 데 반해, 퍼포먼스와 음악 구성 면에서 '너무나도 패턴화된 K팝'의 현 상황이 현지 음악 평단과 산업 관계자들에게 읽혔다고 보여진다"고 봤습니다.
 
임희윤 음악평론가도 "1만명 이상의 투표인단 의견이 모아진 결과를 두고 그 의도를 객관적으로 읽어낸다는 것이 어불성설이긴 하지만, 어쨌건 미국의 대중들이 보편적으로 좋아하는 음악이 아니라는 방증으로 해석될 순 있을 것"이라며 "실제로 운전하면서 듣거나 라디오에서 듣는 '일상의 음악'이 아닌, '팬덤 화력에 의한 음악'이란 걸 미국 현지 음악 업계와 평단도 분위기를 인지한 것 같다"고 봤습니다.
 
그래미어워즈 고유의 상징성인 축음기 모양의 트로피(그라모폰·Gramophone)을 들고 있는 빌리 아일리시와 친오빠이자 그의 음악적 동지 피니어스 오코넬. 사진=뉴시스·AP
 
사상 최대의 판매량에도 K팝 위기론이 나오고 있는 현 상황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최근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한 방시혁 하이브 의장과 박진영 JYP 총괄 프로듀서의 진단대로 "K팝은 강렬한 팬덤 기반의 진입장벽이 큰 시장"이라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기 때문입니다. 방송에서 방시혁 의장이 "라이트 팬덤도 많이 붙을 수 있는 구조로 가야 한다. 니치에서 시작해 흥했던 장르들이 일정 팬덤을 못 넘고 없어진 경우가 많다"고 본 것은 K팝 위기론에 힘을 실어줍니다.
 
임희윤 평론가는 "K팝은 소셜미디어(SNS)를 활용한 MZ, 잘파세대 주도로 2010년대 후반부터 2020년대 초반까지 '코리안인베이전'이라 표현이 있을 정도로 폭발 성장했다"며 "미국 음악계의 새로운니즈를 충족시켜주며 미국 시상식과 TV, 매체의 주목을 이끄는 데 성공했지만 방시혁 하이브 의장이 정확히 본대로 라이트한 팬덤을 늘리는 데 실패하며 이 같은 한계에 직면했다"고 봅니다.
 
미국 현지 매체인 USA투데이에서는 그래미 후보 발표 뒤 K팝 배제에 관한 기사를 다루기도 했습니다. "K팝은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장르 중 하나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미 투표자들은 놓쳤다"며 "일반 카테고리에서 K팝 장르를 무시한다면, 전문분야를 추가해야 할 것"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이에 대해 임희윤 평론가는 "국가 측면의 로컬리즘이 해체되는 오늘날 소셜미디어 환경에선 그래미도 충분히 고려할 만한 사항일 것"이라며 "K팝 별도 부문이 빛도 나고 수익성도 난다면 '라틴 그래미'처럼 시상식의 서브개념으로 새롭게 정립하는 방향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라 봤습니다.
 
K팝의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음악 자체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임진모 평론가는 "오히려 BTS의 솔로 활동 이후 K팝이 보여주던 집단적 파괴력이 조금은 약화됐다고 본다. 자신감을 담은 언어들로 BTS가 성공을 했다면, 그 이후 다양하게 변화하는 K팝의 모습이 나와야한다"고 지적합니다.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도 "테일러 스위프트처럼 결국 자신의 곡을 쓰는 송라이터가 K팝 부문에서 활발해야한다"며 "이번 그래미 결과는 결국 영미권의 평단과 산업 내부에서 인정하는 가치있는 음악적 기준에 K팝이 미달한 것을 보여준 결과"라고 짚었습니다.
 
2022년 4월 64회 그래미어워즈에서 '버터' 무대를 하고 있는 방탄소년단(BTS). 사진=뉴시스·AP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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