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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완벽히 진화한 '시민행동' 문화의 새 장 열다
'190만 촛불집회' 풍자·해학 어우러진 축제의 장으로
입력 : 2016-11-27 오후 9:43:37
[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 체감온도가 영하권인 추운 날씨에 진눈깨비까지 몰아쳤지만 촛불은 활활 타올랐다. 1500여개 시민사회단체 모임인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26일 주최한 '박근혜 즉각 퇴진 5차 범국민행동(촛불집회)'에는 이날 오후 940분 기준으로 서울만 150만명, 지방40만명 등 총 190만명(주최측 추산)이 참여했다. 서울의 경우 경찰추산은 오후 740분 기준으로 총27만명, 전국은 33만명이었다. 경찰은 이 시간대에 최대 인원이 광화문광장 등 세종로 일대에 모였다고 발표했다. 100만명 이상 차이가 나지만 두 집계 모두 역대 최대다.
 
26일 오후 서울 중구 태평로 서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퇴진 제5차 범국민행동 촛불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광화문 광장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애초 주최측과 경찰은 악천후로 이만큼의 시민이 참여할 것으로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난 20일 검찰 중간수사 결과 발표 이후 박근혜 대통령이 이번 국정농단의 주범으로 드러나면서 성난 민심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삼성·롯데·SK 등 재벌기업들과 박 대통령, 최순실(60·개명 최서원·구속기소)씨 사이에 오간 부정한 청탁과 그를 대가로 한 뇌물 수수 정황이 점점 짙어지면서 재벌기업에 대한 심판론까지 제기됐다. “박근혜 퇴진”, “새누리당 해체재벌도 공범이라는 구호가 새로 붙었다.
 
역대 최대 인원이 서울 광화문 광장 등에 집결했지만 단 한건의 형사 사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경찰은 이날 280개 중대 총 25000명의 경비 병력을 투입해 청와대 인근 행진과 집회 지점 안전통제를 진행했다. 서울행정법원이 이날 청와대 반경 200m까지 행진을 허용하면서 물리적 충돌이 우려됐지만 기우였다. 청운동사무소로 행진한 시민들과 경찰간 마찰이 있었지만 평화적이고 비폭력적이었다. 삼청동 방향 행진로에서는 경찰과 행진 시민들간 적정 거리를 두고 약 1시간 정도 대치를 했으나 이날 오후 6시부터 광화문광장에서 본행사가 시작되자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발길을 돌려 광화문으로 향했다. 경찰 병력은 시민들이 안전하게 광화문광장까지 돌아갈 수 있도록 질서를 유지했다. 이날 박근혜 퇴진촉구 집회에 맞서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등 박 대통령을 지지하는 세력도 맞불집회를 열었지만 상호 충돌 없이 끝났다. 집회가 끝난 뒤 전단지 등 주변 쓰레기를 줍는 모습은 이제 새로울 것이 없었다.
 
이날 광화문 광장은 축제의 장처럼 시민들이 어우러졌지만 박근혜 퇴진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컸다. 청와대 너머 북쪽에 있는 구기동 주민들도 시민들의 함성이 들렸다고 전할 정도였다.
 
본 집회는 이날 오후 6시부터 시작됐지만 이미 오전부터 광화문 광장에는 여러 시민단체와 자유발언 모임으로 북적댔다. 오후로 접어들면서 집회 시간이 임박하자 박 대통령과 최씨를 소재로 한 각종 패러디물까지 등장해 흥을 더했다. 여기에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푸른색 고래 풍선이 띄워졌고 이 고래는 행진 시민들과 함께 청와대 200m 앞 청운효자동 주민센터까지 옮겨졌다. 민중 미술가들은 초대형 천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소를 끌고 나와 박 대통령을 풍자한 시민도 있었다.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제5차 범국민대회에서 한 농민이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며 소를 타고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오후 4시가 되면서 청와대를 향한 시민들의 본격적인 행진이 시작됐다. 시민 20만명(주최측 추산)은 세종로 사거리에서 청와대 포위 행진출정식을 연 뒤 각각 정부 서울청사 창성동 별관과 새마을금고 광화문지점, 삼청로 세움 아트스페이스 앞, 신교동 로터리 등 청와대 인근을 지나는 4개 경로로 이어졌다.
 
서울행정법원이 이날 청와대 반경 200m까지 행진을 허용하면서 물리적 충돌이 우려됐지만 기우였다. 다만 청운동사무소로 행진한 시민들과 경찰간 마찰이 있었지만 평화적이고 비폭력적이었다. 청와대로 접근 가능한 삼청동 행진로에서는 경찰과 행진 시민들간 적정 거리를 두고 약 1시간 정도 대치했으나 이날 오후 6시부터 광화문광장에서 본행사가 시작되자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발길을 돌려 광화문으로 향했다. 경찰 병력은 시민들이 안전하게 광화문광장까지 돌아갈 수 있도록 질서를 유지했다.
 
본 행사가 시작되면서 시민들의 함성과 열망은 절정에 다다랐다. 특히 암투병으로 힘든 시기를 보냈던 가수 안치환씨와 가수 양희은씨가 깜짝 등장하면서 시민들은 더욱더 결집했다.
 
안씨는 자신의 노래 광야에서를 부른 뒤 이어진 발언에서 저는 제 음악인생에서 가장 귀중하고, 소중하고, 아름답고, 부담스럽지만 영광스러운 무대에 서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제가 전 세계에서 봤던 그 어떤 바다보다도 아름답고, 장엄하고, 평화롭고, 숭고하고, 엄격한 촛불의 바다가 제 눈앞에 펼쳐져 있다고 말했다. 제가 오래 전 킬리만자로와 아프리카를 다녀왔는데, 해발 4000m 이상 올라갔을 때 고산증으로 죽을 뻔 했지만 비아그라를 쓰지 않았다. 그냥 아팠다. 그러니까 시간이 지나면서 해결됐다산에도 안 가는 사람이 왜 비아그라가 필요했는지 정말 궁금하고, 창피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자신의 히트곡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개사해 시민과 같이 하야가 꽃보다 아름다워를 불러 흥을 더했다
 
안씨에 앞서 자유발언에 나선 김영호 전국농민회총연맹 회장은 우리는 밭농사 논농사도 짓지만 잘못된 나라를 바로잡기 위해서 역사농사도 짓는다썩은 나라를 바로세우기 위해 농민은 목을 걸었다. 이것이 바로 농민이고, 우리의 민족성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회장은 또 우리는 여러분께 농기계를 몰고 청와대로 진격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경찰의 저지선을 뚫지 못해 전봉준트랙터가 평택시내에 멈춰있다. 죄송하다고 말했다. 이어 정의 앞에 목숨을 걸고, 불의 앞에 물러서지 않았다. 평택에 멈춰서 있는 트랙터에 다시 시동을 걸고 성큼성큼 청와대로 가겠다고 외쳤다.
 
26일 지방에서 화물차를 끌고 상경한 한 농민의 차량이 세종대로 길가에 주차돼있다. 사진/최기철 기자
 
 
자유발언의 하이라이트는 김수빈(17)양 등 전남에서 올라온 여고생들의 발언이었다. 전남에서 6시간 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다는 김 양은 정치에 관심도 없고 잘 모르면서 오늘 피같은 시간에 제가 집에서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서 치킨을 뜯는 대신 이 자리에 나와서 여러분 앞에 선 것은 대한민국에서 전 국민이 국민의 대표자에게 농락당한 아주 역설적이고 심각한 전대미문의 사건이 벌어지고 있음을 저 역시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해 호응을 끌었다.
 
김양은 길라임씨라고 불러야 할지 고민이 되지만, 박 대통령은 일개 일반인에게 국정을 전부 내맡겼으므로 대통령으로서의 모든 의무를 저버린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데 왜 우리가 그를 대통령으로 불러야 하느냐다른 것은 몰라도 국민이 원하는 대통령은 연설문 하나 제 손으로 쓰지 못하는 드라마 여주인공은 아닐 것이라고 비판했다.
 
제가 지금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건지, 조선시대에 살고 있는 건지 알 수 없다서민의 손도 잡으려 하지 않는 고귀하신 공주마마가 어떻게 민심을 대변하겠느냐고 꼬집었다. 이어 우리는 공주키우기 게임을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당신의 현빈이 되어줄 수 없다. 당신이 앉은 그 자리는 당신의 자리가 아니다. 우리 국민이 박근혜가 대통령이 아닌 나라를 원한다고 말해 시민들의 박수를 받았다.
 
자유발언에 이어 사회자 소개 없이 무대에 오른 양희은씨의 아침이슬이 울려퍼지면서 집회는 절정에 달했다. 100만명이 넘는 한목소리로 부르는 아침이슬은 감동을 넘어 비장한 분위기였다. 양씨의 유도로 노래는 아침이슬에서 상록수로 이어져 시민들의 결집을 더 공고하게 했다.
 
집회와 행진이 오가는 사이 광화문 광장에서는 고교생들과 자녀들을 데리고 나온 가족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본 집회 전 삼청동으로 행진했던 신일비즈니스고 1학년 김순형(17·가명)군은 어른들은 학생들이 이런데 나오면 공부나 하지 무슨 정치에 관심이냐 하시지만 우리는 분노하고 있다. 6월항쟁 등 모든 민주화 운동의 시작은 학생들이었다. 이런 시국에도 학생들이 나서야 세상을 바꿀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당차게 말했다.
 
대통령은 국민이 뽑는데 국민의 말 아닌 일반 개인인 최순실씨 말을 듣고 국정 운영하는 것은 매우 잘못이다. 거기에 편승한 기득권과 재벌들이 빈익빈부익부 현상을 더 심화시키고 있다박 대통령은 청와대에 눌러 앉아 있지 말고, 5000만 국민들이 원하는 대로 해야 한다. 그나마 있는 지지율 4%에서 더 내려가기 전에 내려와야 한다고 했다.
 
김군은 이어 최근 막말 발언으로 논란이 된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에 대해서도 김 의원은 노골적으로 청소년을 비하하고 집회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모두 종북이다. 빨갱이다고 단정짓고 있지만 우리는 민주주의를 실현하려고 하는 것이다. 바람이 불면 촛불이 꺼진다고 했는데, 꺼지는 것이 아니라 횃불이 될 것이라며 김 의원은 자신을 뽑아준 춘천시민들에게 창피함을 주지 말고 가만히 있었으면 좋겠다고 꼬집었다.
 
김군과 함께 집회에 참석한 무원고 2학년 장윤정(18·가명)양은 국민이 믿고 대통령으로 뽑아서 권력을 줬는데, 국민의 기대와 국민에게 지킨 약속을 저버리고 일반 개인에게 준 것부터 잘못이 있다. 국민을 속였다고 박 대통령을 비판했다. 이어 “(박 대통령)국민에게 미안하거나 죄책감이 든다면 그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 박 대통령에게 권력을 준 사람들은 국민이다. 이제 국민이 옳지 않은 행동을 한 대통령으로부터 권력을 빼앗을 차례다. 그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고 말했다.
 
26일 '박근혜 퇴진 촉구' 촛불집회 본행사가 끝나고 귀가하는 시민들이 쓰레기를 한 곳으로 모아놓고 있다. 사진/최기철기자
 
 
 
정치권에 쓴소리를 하는 시민들도 적지 않았다. 경기 용인 수지에서 2~3세 돼 보이는 자녀들과 함께 오전부터 집회에 참여한 이기화(40)씨 부부는 정치권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야당에서도 대안을 내놓지 못하면서 결국 국민이 대안을 제시해야 하는 상황이 안타깝다고 개탄했다. 일산에서 온 친구와 함께 집회에 참여한 박모(50·)씨는 정치권에서 거론되고 있는 하야나 탄핵은 정치권이 당리당략으로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하야나 탄핵을 결정할 권한 역시 국민에게 있다. 국민이 탄핵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대구와 새누리당 표밭인 부산 등을 포함한 지방 곳곳에서도 촛불이 타올랐다. 특히 우리나라 최서남단 흑산도에서도 주민 100여명이 모여 박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했다. 퇴진행동은 다음달 36차 촛불집회를 열 예정이며, 민주노총은 오는 30일부터 총파업에 들어간다.
 
한편, 주최측과 경찰 집계에서 큰 차이를 보인 이날 집회 참여인원은 주최측 추산이 더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시에 따르면 이날 오후 8시를 기준으로 광화문역, 서울역, 시청역 등 도심 12개역의 승하차 인원수를 집계한 결과 1026232명이 지하철역을 이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승차 인원 378624, 하차 인원 647608명이었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최기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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