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기자] 엔화 가치가 1년 5개월 만에 최고치로 치솟았다. 글로벌 증시가 급락하고 미국의 금리인상이 지연될 것이라는 관측이 확산되며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커진 탓이다. 또 일본 정부의 정책에 대한 불신감도 높아져 전문가들은 올해 말까지 강세 기조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달러·엔 환율, 장중 110엔 붕괴
달러화 대비 엔화 환율은 5일(현지시간) 뉴욕 외환시장에서 장중 한때 달러당 109.94엔까지 하락했다. 110엔을 밑돈 것은 ‘아베노믹스’의 일환으로 대대적인 양적완화가 시행됐던 지난 2014년 10월 말 이후 처음이다.
6일에도 도쿄 외환시장에서 엔화는 110.24~110.50구간대에서 움직였다. 오후 4시 기준 달러·엔 환율은 전일보다 0.03엔(0.03%) 내린(엔화가치 상승) 110.30엔을 기록했다.
달러화 대비 엔화는 일본은행(BOJ)이 사상 첫 마이너스 금리 도입 결정을 발표했던 올해 1월29일 121엔 선까지 치솟은 이후 2월부터 110~114.58엔 사이를 오가고 있다.
이날 엔화와 함께 대표적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독일 10년물 채권금리도 장중 0.08%까지 떨어지며 1년여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고 미국 10년물 채권금리도 장중 1.715%까지 하락해 5주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글로벌 증시 급락·미 무역적자가 주요인
이날 엔화 가치 급등의 주된 요인은 전날 일본을 포함한 글로벌 증시가 동반 하락하면서 안전자산 매입 심리를 부추겼기 때문이다.
전날 일본 증시는 엔화 강세 영향에 2% 이상 급락했고 이에 5일(현지시간) 뉴욕과 유럽 증시도 일제히 하락 마감했다.
이날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에 따르면 세계 증시 흐름을 보여주는 MSCI 전 세계 주가지수(MSCI AC INDEX)는 전날에 비해 1.4% 하락해 지난 2월 초 이후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미국 경제 지표 부진에 금리 인상 지연 기대가 확산된 것도 엔화 강세에 영향을 미쳤다.
5일(현지시간) 미국 상무부에 따르면 미국의 2월 무역수지 적자는 471억달러로 전월에 비해 2.6% 증가했다. 최근 6개월간 무역 적자 규모가 가장 큰 수준으로 전문가들은 1분기 무역 불균형이 심해져 미국 경제 성장률이 하향 조정될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시장에서는 지난달 29일 재닛 옐런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의장의 비둘기파적인 발언 이후 이번 지표가 미국의 금리인상 지연 관측에 더욱 힘을 실어줬다고 평가하고 있다.
브라이언 데인저필드 RBS증권 전략가는 “미국 성장률 둔화는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지연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투자자들은 불안 심리에 안전자산인 엔화 자산 매입을 늘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6일 일본 시민들이 도쿄 한 증권거래소의 전광판 앞에서 환율 추이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로이터
당국 정책 불신에 105엔선 전망도
전문가들은 최근 투자자들이 일본 당국의 정책도 불신하고 있어 향후 엔화 강세 움직임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실제로 5일(현지시간)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모순적 발언도 엔화 가치에 크게 영향을 줬다. 이날 아베 총리는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각국 정부가 경쟁적인 평가절하에 나서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아베노믹스의 일환으로 엔화 약세를 유도해왔던 그간 행보와 명확히 대비되는 언급으로 오히려 시장의 신뢰를 뒤흔들었다.
캘빈 셰 모건스탠리 전략가는 “시장은 현재 BOJ의 정책을 평가하는 상황에 있다”며 “올해 말까지 엔화는 1달러당 105엔선까지 갈 것으로 예상한다”고 내다봤다.
우치다 미노루 미쓰비시도쿄UFJ은행 전략가도 “BOJ의 금융완화정책이 엔화 약세를 이끄는 구도는 이미 무너졌다”며 “BOJ가 추가 부양책을 펼치더라도 엔고에 제동을 걸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라 마어 HSBC 이코노미스트는 “글로벌 금융시장에 우려가 있을 때마다 엔화는 강세를 보였다”며 “현재 110엔선을 ‘심리적 저항선’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또 “향후 일본 정부가 수출기업 실적 타격을 우려해 5년 만에 외환시장 개입에 나설 가능성도 크다고 본다”고 전망했다.
다만 지나친 우려를 경계하는 일부 시각도 있다.
리 하드만 미쓰비시도쿄UFJ은행 전략가는 “올해 엔화의 강세 기조가 뚜렷하지만 최근 5년간 달러·엔 평균 환율이 99엔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여전히 약한 수준”이라고 언급했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