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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짱)④김성근 주요성과 : 'SK 왕조' 구축보다 값진 꼴찌 쌍방울 2위 견인
입력 : 2015-06-23 오전 6:00:03
◇김성근 한화 감독이 지난달 21일 SK와 경기에서 승리 직후 관중석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사진=뉴시스)
 
리더십에 목마른 사회적 분위기 때문인지 최근 프로야구에서도 100여명에 가까운 선수단을 이끄는 감독의 리더십에 대한 관심이 높다. 보스 식의 지휘·통제 대신, 선수를 살피고 이끄는 진정한 리더십을 구사하는 감독에게 관중은 아낌 없는 박수를 보낸다. 대표적인 감독으로는 류중일 삼성 감독과 김성근 한화 감독을 들 수 있다. 류중일 감독은 KBO리그 최초 통합 4연패를 기록하며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올 시즌 프로에 복귀한 김성근 감독은 '야신'이라 불리며 일찌감치 특유의 리더십을 발휘해왔다. 두 감독의 리더십을 비교해보고 각각의 장단점은 무엇인지 짚어본다(편집자).
 
'야신'이라 불린다. 야구를 위해 한 평생을 바쳤다. <리더는 사람을 버리지 않는다>에서 신윤호(전 SK 투수)가 전한 일화를 보면 김성근 감독은 9·11 테러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도 "(테러로 인해) 메이저리그가 진행되지 않는가"라고 신윤호에게 되물었단다. 야구만을 위해 살았고 야구만을 생각해온 뼛속까지 야구인이다.
 
1942년 일본 교토에서 태어난 김 감독은 1959년 한국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 1959년 8월 '재일교포 학생야구단' 선수 자격으로 한국을 찾았다. 지연과 학연이 없는 한국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오직 야구뿐이었다. 야구로 승부를 걸었다. 1962년 중소기업은행 야구팀 창단 멤버로 입단했고 다음해 11월 추계실업야구연맹전 인천시청과 경기에서는 삼진 13개를 뽑아내며 노히트를 달성했다. 1969년 팔꿈치 부상 때문에 선수생활을 그만뒀다.
 
지도자로 접어들었을 때 나이는 27세였다. 젊은 감독은 마산상고 감독으로 지도자의 길을 시작했다. 1976년 충암고 지휘봉을 잡아 팀을 정상에 올려놓았고 1980년에는 신일고를 화랑기 전국대회 우승으로 이끌었다.
 
1981년 OB(현 두산) 투수코치에 임명돼 프로 지도자로 거듭나게 된다. 1983년 말 감독으로 부임해 1988년까지 OB를 지휘했다.
 
1996년 쌍방울 감독 시절에는 창단 6년 만에 팀을 포스트시즌에 진출시켰다. 쌍방울은 70승 54패 2무 승률 5할6푼3리로 정규리그 2위를 차지한다. 지도자로 가장 보람된 해였다. 김 감독은 'SK 왕조'를 구축한 2007~2010년보다 1996년 정규리그 2위를 더 값지게 평가한다.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1990년 창단한 쌍방울은 1991년 1군 시즌에 데뷔한 이래 1995년까지 꼴찌인 8위 3차례, 7위 두 차례를 기록했다. 창단 후 줄곧 암흑기였던 팀을 단번에 정상급으로 올려놓았다.
 
2007년과 2008년 SK를 정상에 올려놓은 뒤 2009년 준우승, 2010년 우승을 일궈내며 감독 시절 정점을 찍는 듯 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구단과 마찰로 인해 믿음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2011년 시즌 도중 경질됐다. 영광에는 그늘도 있었다. 2001년 LG를 준우승으로 이끌었지만 구단과 마찰로 인해 경질됐다. 김 감독의 리더십을 인정하지 못한 구단들은 우승과 준우승을 차지한 감독을 잘랐다.
 
지난 시즌까지 통산 2327경기 1234승 1036패 57무 승률 5할4푼4리를 기록했다. 김응용 전 한화 이글스 감독에 이어 통산 최다경기·최다승 2위다.
 
이우찬 기자 iamrainshine@etomato.com
 
이우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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