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니 아부지 어디 사시노"
입력 : 2020-07-15 06:05:00 수정 : 2020-07-15 10:15:16
한국 사람이라면 딱히 궁금하지 않아도 흔히들 하는 질문이 있다.
“어디 사세요?” 혹은 “댁이 어디세요?”.
 
그저 “밥은 먹었냐” 식으로 던진 질문인데, 상대방이 혹여 “강남 산다”고 답하면 분위기는 사뭇 달라진다. 거의 대부분은 흠칫 놀라며 질문 이전과는 다른 시선을 보낸다.
“와, 성공하셨구나.” “아니, 전세 사는데요. 뭘.” “그래도 거기 전세면 차원이 다른 거죠.” “평수도 작아요.” “아이, 그래도 강남인데…”
 
우리 사회 성공의 기준이 ‘강남 살이’가 된 건 이미 오래 전. “니 아부지 모하시노”와 같은 직업적 인간 차별의 시대를 넘어 “니 아부지 어디 사시노”가 잣대가 된 세상. 한국 사람들에게 집은 단순히 먹고 자는 공간이 아니다. 꿈이자, 최종 목적지이며, 덫이자 멍에다. 평생을 짊어지고 가야 한다.  
 
집값이 또 우리 사회를 흔들고 있다. 몇 년에 한 번쯤은 꼭 찾아오는 부동산 불패라는 이름의 도가니. 그 속에 풍덩 빠지면 서울이라는 이유로 쪼그만 아파트 값이 10억원을 훌쩍 넘고, 강남이라는 이유로 30년 된 낡은 아파트가 30억이 된다. ‘영끌 대출’에 ‘청포족’, ‘마용성’ 듣도 보도 못한 부동산 신조어들이 쏟아진다. 집을 파네, 마네 난리가 난다. 집 없는 사람들은 없는 사람들대로, 있는 사람들은 있는 사람들대로 북새통이다.   
 
“그렇습니다. 한국 사람은 결국 집이에요. 애들도 집, 어른들도 집.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집집집. 그놈의 집 타령. 중장년 세대라면 집주인 잔소리 들어가며 달동네 셋방살이하던 기억 때문에 한이 맺혀 그럴 수 있죠. 그런데 요즘 초등학생들 꿈도 건물주랍니다. 연예인 돼서 돈 많이 벌고 그 돈으로 건물 사겠다고. 아니, 어쩌다 이런 지경이 됐습니까. 어릴 적 꿈은 대통령에다, 소방관, 선생님, 간호사 뭐 그런 거 아니에요? 그런데 죄다 건물주라니. 다양성이라곤 눈곱만치도 없는 사회가 됐어요.” 
 
지금은 고위공직자가 된 한 지인이 몇 달 전 술자리에서 했던 말이다. 요즘 하루가 다르게 집값, 전세값이 오르니 새삼 그의 말이 떠올랐다.   
 
“한국 사람은 집이 없으면 불안한 겁니다. 엄밀히 말하면 노후 생활이 불안한 거죠. 나이 먹어 은퇴하면 먹고 살 길이 없으니까. 가뜩이나 고령화에 저출산이니 믿을 건 집 밖에 없는 것이에요. 그러니 평생 집 장만 하려 다른 기회비용은 포기하죠. 먹고 싶은 거 못 먹고, 갖고 싶은 거 못 갖고, 하고 싶은 거 못 하고…. 뭔 인생이 이래요. 그래도 그렇게 집 한 채 마련한 가장은 체면이 서지요. 집 없는 가장은요, 자식들에게 죄인이 되는 세상이에요.”
 
그러자 영화 ‘빠삐용’에서 누명을 쓰고 억울한 옥살이를 한 주인공에게 상상 속 판사가 한 말이 생각났다. “너의 죄는 다름 아닌 젊음을 낭비한 죄다.” 아니, 판사 너는 틀렸다. 그렇지 않다. 나는 별로 낭비한 것도 없는데 집이 없다. 그런데 죄인이 됐다. 그럼 이 옥살이는 어떻게 끝내야 하나.
 
“미국이나 유럽인들 대부분 집 안 사고 월세 살아요. 연금으로 노후 보장이 되기 때문이죠. 결국 안정적인 노후 생활이 관건입니다. 집세를 내고 생활비를 충당할 만큼 넉넉한 수준의 연금 보장. 그럼 그 돈이 어디서 나오느냐…. 그건 세제 개혁을 통해 가능하다고 봅니다. 솔직히 지금 우리 세금 체계 엉망이에요. 제대로 된 개혁만 하면 충분히 가능해요.”
 
그런데 그의 말대로 아무런 사회적 저항 없이 세제 개혁이 가능할까. 설사 가능하다 해도 과연 집에 모든 것을 거는 이 세태가 사라질까. 과연 강남 불패, 부동산 불패라는 천민자본주의적 용어들이 사라질까. 집 살 돈으로 우리 가족들이 좀 더 여유 있는 삶을 즐기게 될 수 있을까. 무엇보다 우리 아이들의 꿈이 더 다양하고 풍족해지는 날이 올 수 있을까.
 
이렇게 오늘도 집 없는 사람, 아니 죄인의 쓸 데 없는 고민이 이어진다. 그런데, 정말이지, 그런 날이 올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이승형 산업부 에디터 sean1202@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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