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부당해고 소송 중 정년 됐더라도 법원이 재판해야"
"해고기간 임금 받을 필요 있다면 중앙노동위 재심판정 다시 판단"
종래 대법원 판례 모두 변경…'근로자 구제받을 기회 확대' 의의
입력 : 2020-02-20 15:49:58 수정 : 2020-02-20 15:49:58
[뉴스토마토 정해훈 기자] 근로자가 부당해고를 취소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한 후 근무하던 회사의 규정상 정년에 도달해 복직할 수 없더라도 임금을 받을 필요가 있다면 법원이 재판에서 부당해고인지를 판단해야 한다는 대법원판결이 나왔다. 이번 판단은 근로관계가 종료되면 부당한 해고인지에 대해 재판하지 않았던 기존의 판례를 뒤집은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조희대 대법관)는 20일 조모씨가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을 상대로 낸 부당해고 구제 재심판정 취소 소송에 관한 상고심에서 대법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원고 청구를 각하한 1심을 인정한 원심을 파기했다. 재판부는 1심판결을 취소하고, 사건을 서울행정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근로자가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해 해고의 효력을 다투던 중 정년에 이르거나 근로계약 기간이 만료하는 등의 사유로 원직에 복직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된 경우에도 해고 기간 중의 임금 상당액을 지급받을 필요가 있다면 구제 신청을 기각한 중앙노동위원회의 재심판정을 다툴 소의 이익이 있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이와 달리 근로자가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기각한 중앙노동위원회의 재심판정에 대해 소를 제기해 해고의 효력을 다투던 중 다른 사유로 근로관계가 종료한 경우 소의 이익이 소멸한다고 본 종래의 대법원 판례를 모두 변경한다"고 밝혔다.
 
조씨는 지난 2016년 7월 잡지사 J사와 근로 계약을 맺고 부소장으로 일하던 중 그해 12월 근무 태만 등을 이유로 해고 통보를 받았다. 조씨는 해고가 부당하다고 주장하면서 2017년 2월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복직 대신 금전으로 보상해 달라는 내용의 구제 신청을 했지만, 서울노동위는 이를 기각했다. 이에 불복해 같은 해 6월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신청했지만, 이마저도 기각되자 소송을 제기했다.
 
취업 규칙에 정년 규정이 없던 J사는 2017년 9월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얻어 취업 규칙을 개정하면서 근로자의 정년을 만 60세로 하는 정년 규정을 신설했다. 이 규칙은 그해 10월 1일부터 시행됐으며, 시행일 이전에 입사한 직원에게도 적용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1957년 4월 출생한 조씨는 규칙 시행일 이전에 이미 만 60세를 넘은 상태였다. 
 
이 사건은 조씨가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해 해고의 효력을 다투던 중 정년에 도달해 원직에 복직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된 상황에서 구체 신청을 기각한 중앙노동위의 재심판정을 다툴 소의 이익이 있다고 볼 것인지가 쟁점이었다.
 
김명수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사기, 배임과 부당해고구제재심판정취소 관련 전원합의체 선고를 위해 대법정에 자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1심은 "이 사건 재심판정의 취소를 구할 소의 이익이 소멸했으므로 소송이 부적법하다"며 조씨의 청구를 각하했다. 각하는 소송이 제대로 된 요건을 갖추지 못했을 때 해당 사안에 대한 구체적인 심리 없이 사건을 끝내는 재판을 의미한다.
 
재판부는 "J사가 시행하는 개정 취업 규칙의 정년 규정은 근로자 과반수 동의를 얻었을 뿐만 아니라 정년을 만 60세로 정한 것이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다고 볼 수도 있으므로 소속 근로자에게 적용될 수 있다"며 "그 정년 규정은 개정 취업 규칙 제96조에 의해 그 시행일 이전에 입사한 직원에게도 적용되므로 시행일을 기준으로 '정년이 아직 도래하지 않은 직원'은 물론 '정년이 이미 도래한 직원'에게도 적용되고, 후자의 경우 정년 도래로 당연퇴직하는 날은 개정 취업 규칙 시행일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결했다.
 
또 "이와 같은 취지의 정년 규정은 시행일부터 장래의 근로관계를 규율하는 것으로서 시행일 이전 이미 완성된 사실이나 법률관계를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므로 헌법상 불소급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며 "또 정년규정의 내용에 비춰 볼 때 정년 규정 시행 당시 J사에 소속된 직원이 종전 정년에 관한 취업규칙 규정이 없었을 때 가질 수 있었던 '그 이상 근무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 이익'이 그 정년 규정의 시행으로 정년에 관한 근로관계를 명확히 하는 등 공익상 요구보다 더 보호 가치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이 정년 규정은 유효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사건 청구를 받아들여 재심판정을 취소하더라도 앞서 본 법리와 사실인정에 따르면 원고는 J사 취업 규칙의 정년 규정 시행일인 2017년 10월1일 정년의 도래로 당연퇴직함에 따라 종전 근로자 지위를 회복하거나 이를 대신하는 금전 보상 명령이 불가능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2심도 조씨의 청구를 각하한 1심판결이 정당하다고 판단해 조씨의 항소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근로자의 집단적 동의를 받아 적법한 절차에 따라 개정된 취업 규칙에서 도입한 정년제도의 공익이 근로자의 신뢰에 비해 가볍다고 볼 것은 아니다"라며 "따라서 조씨는 개정 취업 규칙의 시행일인 2017년 10월1일 정년으로 근로관계가 종료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원고가 당연퇴직했으므로 원고에게 소의 이익이 없다고 봐 이 사건 소를 각하한 1심판결을 정당하다고 판단한 원심판결에는 소의 이익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지적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부당해고를 당했지만, 부당해고 구제 신청을 한 후 정년이 되거나 근로계약 기간이 만료돼 원직에 복직하는 것이 불가능한 근로자들도 해고 기간 중의 임금을 지급받기 위해 재심판정 취소 소송에서 부당해고에 관한 본안 판단을 받을 수 있게 됐다"며 "대법원이 전원 일치 의견으로 종래의 판례를 변경해 부당해고를 당한 근로자가 부당해고 구제명령제도를 통해 구제받을 기회를 확대했다는 데 이번 판결의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사기, 배임과 부당해고구제재심판정취소 관련 전원합의체 선고를 위해 착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정해훈 기자 ewigjung@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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