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농단' 강요죄 무죄에 불안한 기업들
"회색지대 존재…강요 없었다고 자발적 뇌물 아니야"
입력 : 2020-02-11 17:16:53 수정 : 2020-02-11 17:16:53
[뉴스토마토 왕해나 기자] '국정농단' 사건에서 대법원이 강요죄에 대해 일관되게 무죄를 선고하고 있다. 피고인들 입장에서는 파기환송심에서 양형을 다퉈볼 수 있는 부분이다. 반면 강요죄의 대상이 됐던 대기업들은 불안해진다. 강요로 인한 '수동적 뇌물 공여'가 자칫 '자발적 뇌물 공여'로 판단될까 염려해서다. 
 
11일 법원 등에 따르면 대법원은 국정농단 사건 관련 상고심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개명 후 최서원)씨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대기업 회장에게 뇌물을 강요한 혐의, 최씨 5촌 조카인 장시호씨와 김종 전 문체부 차관이 KT가 자신의 지인을 채용하게 하고 최씨와 설립한 광고회사를 광고대행사로 선정되게 한 혐의,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등이 문체부 고위공무원들에게 사직을 강요한 혐의 등에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국정농단' 사건 상고심에서 강요죄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 판결을 받은 김종 전 문체부 차관. 사진/뉴시스
 
대법원은 이들의 행위가 강요죄의 협박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강요죄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하거나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는 범죄"라면서 "협박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발생 가능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 정도의 구체적인 ‘해악의 고지’가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다수의 법관들의 박 전 대통령 등이 기업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에 있었던 것은 맞지만 해악을 고지했다는 점을 인정하기는 어렵다고 봤다.
 
'강요의 대상‘이 됐던 대기업들은 당황하는 눈치다. 국정농단 사건에서 대기업들의 행위는 '수동적인 뇌물 공여'임을 주장해왔는데 근거가 약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실제로 KT 새노조 관계자는 "이동수 채용과 최순실 회사 광고 몰아주기는 청와대 강요가 아니라 황 회장이 연임 등 개인의 이익을 위한 정치적 줄대기 차원에서 자행됐을 가능성이 높다”라며 “회사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황 회장 자신의 입지를 위해 검증되지 않은 광고 회사에 광고를 몰아준 것이니 경영자로서 배임 횡령에 해당할 소지가 크다”고 주장했다. 삼성전자 노조 관계자 역시 "전 정부가 강요하지 않았다면 삼성전자가 자발적으로 뇌물을 공여했다는 뜻 아닌가"라면서 "이 부회장의 승계 작업에 도움을 받고자 정부가 원하는 것을 해준 셈"이라고 말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외 6명에 대한 항소심 선고 공판을 하기 위해 착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법조계에선 강요죄에 대한 대법원의 판단이 지나치게 엄격하다는 지적이다. 대법원에서도 국정농단의 주체들이 강요죄를 무죄로 보는데 대한 반대의견이 나왔다. 반대의견을 낸 대법관들은 "다수의견은 포괄적 권한을 가진 고위공직자일수록 특정한 불이익을 시사하는 구체적인 언동을 하지 않은 경우에 그 지위를 이용해 한 요구를 묵시적 협박으로 인정할 수 없게 되는 결과에 이른다"며 "이는 기존 법리보다 묵시적 협박의 인정 범위를 축소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통상적으로 봤을 때 대통령 등은 구체적인 언어로 협박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협박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직위에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강요죄 무죄 취지가 바로 뇌물 공여를 인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게 법원 의견이다. 실제 신동빈 롯데 회장 역시 박근혜정부에 뇌물공여를 한 혐의로 기소됐지만 대법원에서 '수동적 공여'를 인정받았다. 대법원 관계자는 "강요와 되는 경우와 완벽하게 강요가 아닌 경우에는 회색지대가 존재한다"면서 "해악이라는 것이 행위자가 실제로 그 행위를 가할 수 있어야 하는데, 실제로 불이익을 주겠다는 확실한 의사가 전달이 됐는지 단순히 혜택을 주지 않는 정도인지 개별적인 판단이 필요하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강요죄가 성립하지 않더라도 뇌물 공여죄가 인정되지 않는 부분도 분명히 있다"고 덧붙였다.
 
왕해나 기자 haena0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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