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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미국은 용산 드래곤힐호텔을 반환하라
2020-01-20 06:00:00 2020-01-20 06:00:00
임채원 경희대 교수
화룡점정. 화가가 용을 그리고 난 뒤 마지막에 눈을 그리니, 그림 속 용이 살아나서 하늘로 날아올랐다고 한다. 그런데 반대로 잘 그린 용 그림에서 마지막에 눈을 뽑아 버리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대한민국에서 하나 밖에 없는 국가공원에 이 일이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눈을 뽑은 주체는 우리의 맹방이라는 미국이다. 돌려받기로 합의한 용산 국가공원 부지에서 한가운데 노른자위 땅인 드래곤힐호텔과 주변부지 2만5000평이 애초 반환계획과 다르게 미국이 그대로 사용하기로 강짜를 부렸다. 지난해 12월의 일이다. 정부는 주한미군기지 부지를 반환받는 협상에서 미국의 눈치를 보면서 이 땅을 울며 겨자 먹기로 돌려받지 못했다.
 
용산은 아픈 역사의 땅이다. 지금에야 용산 개발에 대한 욕망이 다시 끌어오르고 있지만, 이곳은 지난 140여년 동안 한가운데 지역이 외국 군대가 주둔해 있었던 절망의 땅이었다. 1882년 임오군란이 일어나고 청나라 이홍장은 원세개 군대를 조선에 파병하고 대원군을 청으로 압송해 갔다. 용산에서 근대와 현대를 이어 외국 군대가 주둔하는 치욕이 시작되었다. 원새개 부대는 동대문 근처에 있었고, 오장경이 이끄는 별동대가 지금의 용산 효창공원 근처에 주둔하게 되었다.
 
1894년 청일전쟁에서 일본군이 동아시아 패권을 잡자, 용산의 주인도 일본군으로 바뀌었다. 이때부터 지금의 용산 미군기지 자리에 일본 군대가 주둔하고 개발되기 시작했다. 1904년 러일전쟁이 일어나자, 일본군은 용산 지역에서 300만평 수용계획을 세우고 용산역 주변을 만주에 전쟁 물자를 보급하는 병참기지로 만들었다. 지금의 동부이촌동 지역은 일본군 가족이 사는 동네로 바뀌었다.
 
일제 강점기에 용산 일본군 기지 안에는 총독관저가 있었고, 지금 드래곤힐호텔 자리는 일본의 조선군 사령관의 집이 들어섰다. 서울에 주둔한 일본 20사단의 주역부대인 78연대와 79연대가 조선 땅의 심장에 터을 잡고 해방이 될 때까지 위세를 부렸다. 79연대 자리에는 지금 전쟁기념관이 들어서 있다. 해방 이후에 한국 육군본부가 오랫동안 이곳에 있었고, 나중에 계룡대로 자리를 옮기면서 너무도 거대한 전쟁기념관이 들어섰다. 이곳은 분단과 전쟁의 역사를 여전히 반공과 냉전의 시각에서 위압적으로 시민들 위에 군림하고 있다.
 
79연대 자리는 몇 년 전까지 주한미군 8군 사령부가 일제 때 건물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이곳에는 일제 건물 5개 동이 있고 연병장의 모습이 남아 있다. 한국 정부가 지은 건물도 주한 미군을 위해 들어섰다. 이곳을 '세계평화기념관'으로 조성할 수 있다. 용산 국가공원특별법은 이 구역에 건물을 새로 짓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아픈 역사를 담고 있는 일본 78연대의 건물과 연병장 그리고 한국 정부가 지어 미군이 사용한 건물 등을 엮어서 21세기 동아시아 패권의 변화를 보여주는 세계평화기념관을 조성할 수 있다. 일제 강점기 78연대와 79연대 자리를 '전쟁과 평화'를 한 눈에 보여주는 역사와 미래의 현장으로 만들 수 있다. 20세기적인 전쟁을 넘어서, 21세기적인 동아시아 미래와 세계평화를 보여줄 수 있다.
 
해방 이후 이곳에 미군이 주둔을 시작했고 베트남 전쟁을 거쳐서 2018년 6월29일 주한미군 사령부는 평택으로 공식 이전을 했다. 미군의 주력부대가 떠난 용산 미군기지 부지는 환경평가 등 한국 반환을 위해 부속절차가 진행 중이다. 1882년 임오군란 이후 140여년 만에 비로소 서울의 한가운데 땅인 용산 미군기지가 뼈아픈 역사를 뒤로 하고 한국으로 돌아온다. 용산 주한미군 기지는 동아시아 패권 변화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아시아에서 유일한 곳이고, 그 자리가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이제 대한민국은 패권국가가 아닌 평화국가의 새로운 역사를 쓸 수 있게 되었다.
 
2020년은 대한민국 과거 100년을 넘어 미래 100년을 시작하는 해이다. 1919년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년의 역사를 뒤로 하고 새로운 100년이 시작되었다. 대한민국의 국가비전은 패권국가가 아닌 평화국가다. 평화국가의 시작은 뼈아픈 역사를 딛고 일어선 주한미군 기지 부지가 평화공원으로 거듭나는 것에서 계기를 찾을 수 있다.
 
드래곤힐호텔을 미군이 계속 사용할 그 어떤 명분도 찾을 수 없다. 힘센 국가의 강짜로 대한민국 국민들은 지켜보고 있다. 패권의 역사를 뒤로 하고 새로운 평화국가 100년을 시작하는 대한민국에 미국은 하루 속히 드래곤힐호텔을 반환하라.
 
임채원 경희대 교수(cwlim@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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