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고와 체험, 장르 음악의 진격'…2019년 대중음악 연말 결산
김현철·잔나비·양준일과 뉴트로 열풍…트로트와 밴드, 장르 음악의 부상
음원 차트 송두리째 흔든 소셜미디어…오감 체험 '음악 소비' 시대
키워드 10개로 돌아본 올해의 대중음악계①
입력 : 2019-12-29 18:00:00 수정 : 2019-12-30 09:02:51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2019년은 가려져 있던 장르 음악에 몇 줌의 빛이 새어 든 해다. 13년 만에 새 앨범으로 돌아온 김현철과 그룹사운드 잔나비의 약진은 아이돌 중심으로 짜여지던 기존 음악 질서를 새롭게 재편했다. 음악 프로그램은 밴드, 트로트처럼 수면 아래 잠겨 있던 장르 음악들을 끄집어 냈고, 주요 방송사들은 특색 있는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며 1, 2세대 아이돌  '다시 보기' 시대를 열었다.
 
대중 음악, 공연 시장은 점차 보고, 만지고, 경험하는 '오감 체험'으로 확장됐다. 바이닐(LP)과 카세트 테이프를 제작, 구입하는 열풍이 일고 공연장은 바버샵, 호텔처럼 특정 콘셉트를 띈 공간으로 진화했다. 대형 록 페스티벌이 신음한 가운데 긴 기간 내실있게 라인업을 준비한 페스티벌이나 단독 공연이 빈 자리를 메웠다. 벨벳언더그라운드 출신의 존 케일부터 U2까지 올해 각기 다른 시기, 다른 방식으로 한국 땅을 밟았다.
 
2019년은 국내외적으로 음악사의 굵은 발자취를 돌아본 해이기도 하다. 미국 블루노트 레코드의 설립 80주년과 독일 ECM 레코드의 50주년이 올해 모두 있었다. 정태춘, 박은옥이 데뷔 40주년 프로젝트에 나섰고, '록의 대부' 신중현이 14년 만에 돌아왔다. 30주년을 맞은 유재하경연대회는 한국 대중음악계의 꾸준한 '산실(産室)'로 자리매김했다. 블랙홀, 이승환, YB, 넬 등 밴드 사운드 중심의 뮤지션들이 각각 데뷔 30주년, 25주년, 20주년을 맞아 앨범을 내고 공연을 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지나간 굵은 음악사 끝에는 방탄소년단(BTS)이란 새 페이지가 새겨졌다. 올해 초 그래미 뮤직어워드에 초청된 그룹은 빌보드뮤직어워드와 아메리칸뮤직어워드 주요 부문을 석권하며 기존 글로벌 주류 음악 시장의 틀을 깨는 새로운 패러다임 출현으로 해석됐다.
 
2019년 대중음악계 소식들을 10개의 키워드로 정리, 분석해본다.
 
김현철·잔나비·양준일과 뉴트로 열풍
 
김현철은 올해 13년 간의 '창작 무(無) 세계'를 탈출했다. "시대가 불러" 그는 다시 대중음악계로 돌아왔다. 5월과 11월 각각 발매된 EP '10th - preview', 정규 10집 '돛'은 마치 데뷔 시절의 그를 연상시킨다. 
 
과거 향수를 느끼는 최근의 분위기는 시티팝과 김현철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복고풍 그룹사운드 잔나비의 약진은 올해 괄목할 만한 성장이다. 20세기 산울림의 창작 방식에 영향 받은 그룹은 장기하와 얼굴들, 혁오, 볼빨간사춘기 등 주류 시장에 안착한 인디 가수의 명맥을 새롭게 이었다. 2집 '전설'은 CD 시장 불황에도 초동만 무려 4000장 가깝게 팔렸고, 타이틀곡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는 올해의 주제가가 됐다. 시대를 앞서 간 가수 양준일, 33년 만에 재회한 봄여름가을겨울과 빛과소금이 연말까지 이 흐름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주요 방송사들은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며 '뉴트로 열풍'에 승선했다. '온라인 탑골공원' 같은 특색 있는 채널을 내세워 '세기말 감성' 재발견에 나섰다. 백지영은 '탑골 청하', 핑클은 '탑골 블핑'으로 불렸다. 주로 1990년대를 겪지 않은 1990년대생들이 H.O.T 이후부터 2000년대 초반 아이돌들을 '다시 보기' 했다. 
 
20세기 밴드 '산울림'의 창작 방식에 영향 받은 잔나비. 사진/페포니뮤직
 
트로트와 밴드, 장르 음악의 진격
 
장르 음악들은 올해 대중음악계의 무게 중심을 크게 이동시켰다. 아이돌 중심으로만 짜여지던 기존 음악 시장의 '탈(脫) 아이돌화'. '슈퍼밴드', '미스트롯' 등 프로그램 영향으로 수면 아래 잠겨 있던 음악들이 새로운 음악 질서를 짜기 시작했다. 
 
올 상반기 방영된 '슈퍼밴드'는 기존 음악 프로그램에서는 듣도 보도 못한 악기와 연주법들을 무대 위로 올렸다. 첼로와 피아노, 퍼커션, 컴퓨터 프로그래밍 그리고 자연 환경에서 채집하는 소리들과 게임기 콘트롤러에 삽입된 음원 소스…. 이 방송은 실제 콜드플레이의 크리스 마틴이 유튜브로 한국의 19세 기타 천재 소년들을 구경하고, 아이슬란드의 시규어로스 희망어가 국내 TV 채널로 울려퍼지는 광경을 기어이 만들어 냈다. 비슷한 기간 방영된 '미스트롯'은 18.1%까지 최고시청률을 끌어올리며 '대중음악 다양성'에 기여했다. 현역 트로트 가수들이 재조명 받았고, 트로트는 열풍으로까지 번졌다. 대국민적 스타덤에 오른 송가인은 '송가인 시대'를 열었다. LP 한정판, 전국 투어까지 종횡 무진 중이다.
 
올해 한정판으로 제작된 송가인 LP. 사진/제이지엔터테인먼트
 
음원 차트 송두리째 흔든 소셜미디어
 
프로듀스 시리즈 조작, 음원 사재기, 음악 소식을 빙자한 가십 기사…. 미디어, 엔터사의 잘못된 양태는 올 한 해도 국내 대중음악계 근간을 뿌리째 흔들었다. 하지만 바로 앞서 본 몇몇 음악 프로그램과 일부 소셜미디어(SNS)로 올 한 해 다양한 음악들이 재발견, 발굴된 사례도 적지 않았다.
 
올해 6월 국내 음원 차트에서는 집계 이래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영국 싱어송라이터 앤 마리의 곡 '2002'가 집계 이래 팝 음악 최초로 1위(월간 기준)를 달성한 것이다. 가온차트를 운영하는 한국 콘텐츠협회에 따르면 이 곡은 올해 6월 디지털 차트·다운로드 차트 1위를 기록, 2관왕에 올랐다. 지난해 4월 발매 당시에는 반응이 크게 없다가 소셜미디어(SNS) 채널의 입소문, 단독 내한 공연 흐름을 타고 올해 한국에서 '가장 뜨거운 팝 음악'이 됐다.
 
미국에서는 신예 래퍼 릴 나스 엑스가 '새로운 의미'의 빌보드 역사를 썼다. 러닝 타임 2분도 채 안되는 곡 '올드 타운 로드'가 17주 연속 1위를 기록, 이 차트 역대 최장기간 정상에 올랐다. 곡 길이만 빼면 막상 일반 힙합곡과 별 차이 없어 보이는 곡은 올 2월부터 시작된 틱톡 열풍에 탑승했다. 카우보이 흉내를 내는 듯한 15초 짜리 패러디 영상과 맞물려 전 세계로 뻗어 나갔다. 틱톡이라는 이 '앱용 콘텐츠'는 짧은 시간 안에 승부를 봐야하는 새 음악 시대의 선언이었다.
 
릴 나스 엑스의 짧은 음악에 맞춰 추는 말 춤은 올 한 해 전 세계 선풍적 인기였다. 사진/유튜브 캡처
 
귀로만 듣지 않는 오감 체험 '음악 소비' 시대
 
올해 대중음악 소비 형태는 점차 오감으로 확장됐다. 단순히 귀로 즐기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닌 특정 공간에서, 특정 콘셉트를 띈 채 진화했다. 유튜브, 스트리밍, 소셜미디어 중심이던 음악서비스의 '탈온라인화'. 관객들은 다시 실제 공간으로 향했다. 보고, 만지고, 경험하는 오감 체험 음악 열풍이 새로운 흐름을 만들었다.
 
올해 10월 현대카드는 한남동 바이닐앤플라스틱 인근을 가상 모텔로 꾸몄다. 미국 캘리포니아 '모터호텔'에 착안한 만든 음악 호캉스 분위기의 행사 '다빈치 모텔'. 휴양 콘셉트로 꾸며진 공간엔 침실부터 바버샵, 음악다방, 옥상 수영장 등이 들어섰다. 예술, 철학, 과학 수학에 뛰어난 '현대판 다빈치들'의 토크와 공연, 퍼포먼스, 버스킹이 릴레이식으로 열렸다. 같은달 연희동 인근에서는 '주파수, 서울' 일환으로 뮤지션들이 직접 일일 장사를 하는 팝업스토어가 열렸다. 공연과 함께 이들 뮤지션들은 직접 카페와 바, 심리상담소 등을 운영했다. 
 
최근 대중음악계에서는 바이닐(LP)과 카세트테이프를 제작, 구매하는 현상도 일고 있다. 온라인상 음악 소비에 만족하지 못한 청취자들이 '실물 소비'에 집중하면서다. 음악계 역시 물성이 중요해지는 흐름을 반영해 오프라인 소비시장을 키우고 있다. LP와 테이프를 파는 '서울레코드페어'는 올해 9회를 맞아 아예 공연, 포럼, 사인회 등의 요소를 섞어 음악 축제로 탈바꿈했다. '블립 매거진' 같은 종이 음악잡지의 창간 소식도 줄을 이었다.
 
보고, 만지고, 경험하는 오감 체험 음악 시대는 바이닐 열풍을 재현했다. 사진은 지난 서울레코드페어 행사에 참석한 한 관람객 모습. 사진/뉴시스
 
'위기 직면' 대형 페스티벌…내실 돋보인 DMZ, 자라섬, 잔다리
 
올해 대형 페스티벌들은 주관사 변경과 미숙한 운영 방식, 관객 축소으로 고전을 면치 못했다. 
 
해외에서는 올해 50주년을 맞은 미국의 세계적인 록 페스티벌 '우드스톡'이 열리지 않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주요 스폰서가 계획을 돌연 취소하고, 뉴욕주가 행사허가를 내주지 않은 악재가 겹치며 그 '상징성'이 결국 무너졌다.
 
국내에선 '지산 락 페스티벌'이 개최 3일을 앞두고 취소되는 사태를 맞았다. 1월 개최 방침을 밝힌 이 페스티벌은 지난 2017년까지 CJ ENM 주관 '지산 밸리 록 뮤직 앤 아츠 페스티벌'과 유사성 문제로 논란에 휩싸였다. 페스티벌 한 달 전까지 국내 아티스트로만 짜여져 '헤드라이너도 발표 안하고 표를 판다'는 비판에도 직면했다. 보름을 남겨두고 최종 라인업을 발표했으나, 예년 만 못한 라인업에 공식 SNS에는 비판 글이 쇄도하기도 했다.
 
'인천펜타포트락페스티벌' 역시 운영 주최를 공모방식으로 전환하며 문제가 발생했다. 개최 이래 수십년간 운영한 중견 기획사가 반강제로 손을 뗐다. 첫날 열기는 꽤 뜨거운 것 같다가도 결국 예년만 못한 라인업, 절반 수준의 관객으로 기대 이하의 성적표를 손에 들었다. 마지막날 밴드 위저의 무대 때 30분간 공연이 중단되는 사고도 있었다.
 
'부산 록 페스티벌'은 해외 에이전시 사칭 피해로 대형 출연진이 취소되는 사태를 겪었다. '울트라 코리아 2019'는 장내 욱일기가 휘날린 사건으로 시끄러웠다. '홀리데이랜드'는 출연 예정 뮤지션의 취소 통보, 공연 당일 무대 중단 사태 등으로 거센 환불 요구, 보이콧 사태도 겪었다. 
 
오히려 긴 기간 내실있게 준비한 대중음악 페스티벌이 돋보인 해였다. 평화를 주제로 내건 '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 재즈라는 축을 활용해 대중음악과 접점을 시도하는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과 '서울 재즈 페스티벌', 전 세계 119개 뮤지션, 음악관계자를 모은 홍대 '잔다리 페스타' 등은 국내 '페스티벌 불모지'에 남은 희망 한 줌이었다.
 
올해 'DMZ 피스트레인 페스티벌' 중 노동당사 앞에서 열린 '우정의 무대'. 사진/사단법인 피스트레인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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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익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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