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국내 대중음악 최초, 루시드폴의 ‘반려견과 만든 음악’

콜라비 먹는 소리까지 채집…소리 본연에 집중, 9집 '너와 나'②사람 체온 가까운 따뜻한 음…‘강아지 관객’ 위한 파격 공연 예정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16일 발매된 루시드폴의 9집 ‘너와 나’는 소리 본연에 집중해 제작한 앨범이다. 그는 새 음악적 원료를 자연적인 것들에서 찾았다. 제주의 바다와 스웨덴의 호수, 마을, 새, 산책 걸음, 반려견 보현….

 

특히 보현은 이번 앨범의 주인공 ‘너’다. ‘나’인 루시드폴과 보현은 평형 세계를 이룬다. 10일 저녁 5시경, 서울 강남구 안테나 뮤직에서 만난 루시드폴은 “보현이 음악의 일부가 아닌 음악의 주체로 등장한다”며 “작곡자, 악기 연주에 당당히 보현 이름을 새긴 건 국내 음악계 역사상 최초가 될 것”이라 했다.

 

이를 테면 12일 발표된 선공개곡 ‘콜라비 콘체르토’는 대중음악 사상 최초로 보현의 목소리가 ‘악기(인스트루먼트)’가 됐다. 실제 보현이 콜라비 먹는 소리를 채집해 만든 노래다.

 

루시드 폴. 사진/안테나뮤직

 

작곡 과정을 뜯어보면 소리 단위들을 과학적 건축, 설계한 수준이다. 일단 보현이 콜라비를 씹을 때 나는 소리를 채집했다. 그래뉼라 신테시스 기술[소리를 작은 단위로 분해해 순서를 바꾸거나 뒤집거나, 합성할 수 있는 음향 합성 기술·뉴스토마토 기사 참조, (인터뷰)너와 나, 생명의 음악, 루시드폴]을 활용, 이를 전자음으로 환원, 배열, 가공, 조합했다. 연주자는 보현의 목소리지만, 템포와 음의 높낮이를 변주해 협주하는 것과 같은 음악이 됐다.

 

“보현이 콜라비를 먹을 때 아삭하는 소리가 굉장히 상쾌하게 느껴졌어요. 콜라비가 두껍냐, 얇냐에 따라 다른 소리처럼 들리기도 하고. 이 노래 처음 들려줬을 때 대개는 물소리, 팝콘소리, 계란 부치는 소리 정도로 생각하더군요. 보현의 소리가 상상력을 자극하는 음악이 된 거죠.”

 

앨범을 여는 첫 곡 ‘산책 갈까?’는 보현과의 가상 산책을 음표로 그렸다. 보현의 소리를 채집해 전자 드럼 킥, 신스 등으로 환원, 배열, 가공했다. 산책 전 보현의 두근거림, 제주 풍경을 연상시키는 곡은 스웨덴의 어느 호수, 새소리에까지 닿는다. 평소 좋아하던 스웨덴 엠비언트 음악가 루드빅 심브렐리우스에게 협업을 요청했다.

 

루시드폴. 사진/안테나뮤직

 

“장문의 메일을 보냈습니다. 보살이라고도 불리는 보현이란 강아지가 있는데, 하면서요. 하하. 스웨덴의 새소리, 사람들 목소리, 호수와 바다 소리를 보내줬어요. 어쿠스틱과 신스로 재해석한 소리 파일도 보내주고요. 처음엔 제주 소리로 시작했다가 제주, 스웨덴 소리가 합쳐지고 마지막엔 스웨덴 바닷소리로 끝나요.”

 

타이틀 곡 ‘읽을 수 없는 책’은 루시드폴이 보현의 읽을 수 없는 마음을 한 권의 책에 빗댄 노래다. ‘함께 보낸 시간들이 쌓여감에도 정작 페이지를 열면 아무 것도 없는 너’에 대한 슬프고 아련한 감정을 담았다. 432Hz로 낮춰 튜닝한 연주는 곡 온도를 사람 체온에 가깝게 끌어내려 따뜻하다.

 

앨범에는 보현의 마음으로 노래를 불러준 ‘인터프리터(해석자)’도 곳곳에 등장한다.

 

곡 ‘두근두근’은 루시드폴이 기타를 칠 때면 그의 등 뒤를 지키는 보현의 마음을 표현한 노래다. 상쾌하고 그루비한 리듬 파트와 기타, 키보드의 빈티지한 멜로디가 조화를 이루고, 알앤비와 네오소울류의 곡을 불러온 CHAI가 노래에 참여했다. ‘또 한 번의 크리스마스’에는 가수 정승환이 참여했다. 눈밭을 내달리며 벅차 하는 보현의 마음을 노래로 표현했다.

 

루시드폴. 사진/안테나뮤직

 

일렉트릭 기타로 태풍이 올 때 밤새 잠 못드는 보현을 본 무력감을 표현(‘불안의 밤’)하거나, 삼바와 쇼루의 변종 리듬에 보현과 함께 걷는 길을 용기와 담대한 마음으로 해석(‘뚜벅뚜벅 탐험대’)한 곡들 역시 보현과의 시간에서 길어 올린 것들이다.

 

‘산책갈까?’로 시작한 여정은 결국 앨범 마지막 곡 ‘너와 나’에 이른다. 보현과 함께 사는 공간에서 채집한 수많은 소리들이 모듈러 신스로 변주되고, 테이프 감기는 소리가 오래된 사진첩을 넘기듯 아련하다.

 

“보현은 제가 음악을 할 때면 귀 기울여 듣곤 해요. 자는 자세로 앉아 있지만 눈은 감지 않고 곁을 어슬렁 거리죠. 밤 늦게 작업이 다 끝나면 그제서야 자기도 침대로 가고. 그래서 이번 앨범은 정말 너랑 같이 했구나, 생각했던 것 같아요.”

 

9집 앨범 발매를 기념해 이런 저런 이벤트도 구상 중이다. 우선 앨범과 함께 포토북이 나온다. 이번 작업 과정을 추억할 수 있는 사진들을 엮었다. 강아지들을 관객으로 한 새벽 아침 공연도 고려하고 있다. “강아지들은 청력이 민감하거든요. 햇빛 잘 들어오는 공간에서, 크지 않게 적당한 소리로만 공연하고 싶어요. 새벽 산책 겸 나와서 공연을 보거나 음악 들으면서 자는 거죠. 듣기 싫으면 나가도 되고 그런 자유로운 공연요.”

 

권익도 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