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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게이션)’애국자게임2-지록위마’, 시대의 아이러니가 만든 희생
‘통합진보당 해산’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사건 그린 다큐멘터리
분단 국가 속 논쟁의 중심, 이념 변호 아닌 사건 이면 속 실체
2019-12-11 00:00:00 2019-12-11 14:28:27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지록위마’(指鹿爲馬). 어렵다. 어려운 말이다. 하지만 우린 지금도 일상에서 이 사자성어의 뜻에 스스로도 모르게 옥죄어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 애국자게임2-지록위마를 연출한 경순 감독은 어쩌면 우리 스스로가 모르고 살아오고, 또 그것조차 모르고 살아가는 지금의 현실을 97분의 다큐멘터리 안에 담아 내 꼬집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른바 통진당 해산 판결혹은 이석기 내란음모사건에 대한 사상적 지록위마에 대한 문제 제기다. 사슴을 말이라고 우기는 지금의 현실이 있다. 왜 사슴을 사슴이라고 말하지 못하는 것일까. 사고의 고정 관념에 대한 질문이 이 다큐멘터리 안에 담겨 있다. 사슴을 말이라고 우기고 있지만 그것이 거짓임을 알고 있고, 그 거짓에 대한 침묵이 어떤 공포감을 조성하고 있는지에 대한 적나라한 현실 질문과 답변이 가득하다.
 
 
 
질문과 답변의 시작은 이렇다. 2013 8 28. 국정원은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을 포함해 통진당 주요 당직자 10명 자택과 의원실 등 18곳을 전격 압수수색 했다. 압수수색 배경은 내란음모. 일반적으로 진보 계열의 정당과 운동권이라면 국가보안법위반이 국가 권력이 제기하는 일반적인 위반 사안이다. 하지만 이 당시 사건은 한 차원 높은 수준이었다. 교과서에서나 보던 개념이 등장했다. 대한민국 체제를 부정하고 전복시켜 북한식 사회주의 통일을 모의했단 주장을 들이댄다. 모든 언론은 이석기 의원에게 이 같은 혐의를 들이대며 보도했다. 모두 국정원이 주장한 내용이라고 다큐멘터리는 주장했다. ‘총기를 마련하고 국가시설을 파괴하는 모의를 했단다. 혹시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충분히 합리적인 의심을 해 볼 수 있다. 이 의원과 통진당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해야 한다. 하지만 그런 과정은 과감히 생략된 듯싶었다. 국정원이 주도했지만 보수 정권의 서슬 퍼런 이념 논리는 이 의원과 의심을 받은 당직자들을 모두 내란 혐의로 올아 매 버렸다. 사실 아직까지도 모른다. 그들이 정말 그랬을 수도 있고 모든 게 거짓이었단 점을.
 
다큐멘터리에 등장한 당시 사건으로 실형을 살고 출소한 한 당직자는 말한다. ‘충분히 의심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당시 분위기라면이란 늬앙스를 풍겼다. 의심에 대한 자백이 아니다. 본인들의 주장에 따르면 사건이 발생하고 6년이 흘렀다. 사건 당시에는 3년에 대한 녹취록이 증거였단다. 그들 역시 기억의 왜곡이 발생한 것이다. 사실을 왜곡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입장에선 존재하지 않던 것에 대한 의심까지 발생했다. ‘정말 우리가 그랬던 것일까라고.
 
'애국자게임2-지록위마' 스틸. 사진/무치필름
 
이런 배경은 쏟아지는 자극적인 보도로 인해 더욱 짙어졌다. 이건 내란이란 단어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그들 모두가 아닌 그들을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이 돼 버렸다. 여러 보수 언론은 분단 국가인 우리 현실에서 가장 민감한 부분을 헤드라인으로 뽑아 들었다. 이제 이석기 의원 내란 음모 사건은 결국 통합진보당 해산으로 결정이 됐고, 당직자들과 당 소속 국회의원들은 모두 집을 잃게 됐다. 그럼에도 그들은 주홍글씨를 가슴에 안은 채 살아가고 있다. 당 해산 이후 모든 것이 끝이 아니었다. 재판에서 실형을 살고 나왔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세상의 시선이었다.
 
전 통진당 당직자들 그리고 소속 전직 국회의원들은 세상의 시선, 그것이 두려웠다. 지금도 두렵다. 자신들조차 기억의 왜곡이 불거질 정도로 존재하지 않는 혐의를 들이 댄 채 철퇴를 후려 친 당시 보수 정권에 대한 억울함은 존재한다. 하지만 그건 억울함일 뿐이다. 두려움은 다른 개념이다.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당시 정국은 촛불 운동이 가장 거세던 시기였다. 광화문에서 불타오른 촛불은 자신들에게 철퇴를 내려 친 박근혜 대통령을 끌어 내렸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모두가 그들을 불편해 했다. 촛불도 그랬다. 광화문에서 세상에 호소했던 다른 목소리들도 그랬다. 제도권 정치에서 진보를 자처했던 다른 진보역시 진보의 또 다른 목소리였던 그들을 외면했다. 그들의 억울함을 이해하는 듯했지만 그들과 한 목소리를 내진 않았다. 이해와 공감이 느껴지면서도 동조를 하지 않는 모습은 아이러니를 넘어서 폭력적이었다. 국가 권력의 폭력은 아프고 쓰릴 뿐이다. 사실 이들이 아파한 것은 외면이었다.
 
연출을 맡은 경순 감독의 시선과 의문은 정확하게 이 지점이었던 것 같다. 민주주의란 이념 속에서 다양성은 실종됐고, 말살됐다. 우린 그저 박제된 이념 논쟁 속에서 민주주의를 강요당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통진당 해산그리고 이석기 의원 내란 음모 사건은 이런 현상의 단초이자 대표적인 사례일 뿐이다. 경순 감독이 이 두 사건을 옹호하고 변호하지 않는 것이 증거다.
 
'애국자게임2-지록위마' 스틸. 사진/무치필름
 
다시 제목이다. 그래서 지록위마. 사슴을 말이라고 세상은 부르고 있지만 세상은 그걸 강요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우린 그 보이지 않는 강요에 스스로가 얽매인 상태다. 사슴을 말이라고 부르고 말을 사슴이라고 부르는 현실이다. 그것에 반문하고 질문을 던지지 않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앞서 언급한 두 가지 사건을 통해 혹시 우리 스스로가 보지 못했던 진짜 지록위마의 위선은 무엇일까.
 
두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됐던 많은 사람들. 언론인 변호사 인권운동가 통합진보당 당직자 그리고 전 의원들 그리고 그들의 가족들. 그들은 끊임 없이 사슴을 사슴이라고 부르짖었다. 하지만 공감을 얻지 못했다. 세상은 그들에게 침묵을 강요했다. 다큐멘터리에 등장한 전 통진당 의원은 쉽게 속내를 얘기하지 못한다. 아직도 두렵다. 정권의 시선이 두렵다. 하지만 진짜 두려움은 세상의 시선이다. 그들을 색깔로 구분하는 세상의 시선이 두렵고, 그들의 진심을 거짓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두려우며 결과적으로 그 시선에 지배될 자신들의 기억이 두려운 것이다. 이제 진실과 거짓은 완벽한 자기 검열의 모순에 빠져 버리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래서 다큐멘터리에 등장한 누군가는 호소를 하고, 또 누군가는 억울함을 쏟아냈고, 또 누군가는 스스로도 혼란을 겪고 있음을 토로하며, 또 다른 누군가는 호소와 토로 억울함조차 포기하기도 했다.
 
'애국자게임2-지록위마' 스틸. 사진/무치필름
 
애국자게임2-지록위마는 변호하지 않는다.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지적한다. 우리 사회가 박제된 이념 논쟁 속에서 언제까지 진짜와 가짜 그리고 진실과 거짓의 경계를 헷갈리며 침묵하고 방관하고 외면할지. 지금의 우리는 그저 민주주의와 자유에 대한 방종을 휘두르는 것 일 뿐이다. 국가 권력과 시민 권력이 만들어 낸 희대의 아이러니가 97분 속에 오롯이 담겨 있다.
 
P.S 순탄한 극장 개봉으로 이어지길 기원한다. 세상의 아이러니가 이 한 편이라면 지금의 세상 자체가 아이러니 속의 아이러니일 뿐이다.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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