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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태의 경제편편)은행장 스스로 결단해야
2019-12-11 06:00:00 2019-12-11 06:00:00
금융감독원은 지난 6일 DLF 사건에 대한 분쟁조정 결과를 발표했다. 기가 차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하이라이트는 우리은행이 그룹차원에서 DLF를 '선취수수료 2·3모작 상품'이라고 강조하며 판매를 독려했다는 대목이다. DLF의 만기가 4~6개월이라서 선취수수료(0.8~1.4%)를 연간 2~3번 받을 수 있다는 점을 노린 것이다. 또 영업본부장이 고객수와 금융수신 관련 핵심성과지표를 날마다 관리했다. 고객자산의 안전은 뒷전이고 오로지 눈 앞의 수익에만 매달렸던 셈이다. 그러니 이번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오히려 이상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KEB하나은행도 황당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자산의 안정성을 중요시하는 '정기예금 선호고객'을 초고위험상품 DLF의 목표고객으로 선정했다. 그 결과 하나은행의 DLF상품 고객 가운데 65세 이상 고령자 가 59.6%를 차지했다. 고령자 비율은 우리은행(27.7%)에 비해 두배 이상 높다. 한국사회에서 경로사상은 큰 미덕이다. 지하철에서 노인들을 위한 별도의 좌석도 마련돼 있다. 그렇지만 두 은행에게는 최소한의 경로의식도 없었던 것 같다.
 
양식 있는 금융사라면 고령자들에게는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마땅하다. 고령자가 복잡한 고위험 파생상품 투자를 하려고 해도 말려야 정상이다. 그러나 사실은 눈 앞의 이익에 급급한 나머지 초고위험상품을 함부로 팔아먹었다. 
 
금융감독원은 이런 문제를 금융사의 부실한 내부통제 탓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은행의 배상액이 손해액의 80%에 이르기도 했다. 
 
그런데 ‘내부통제 부실’이라고 간단히 말하는 것도 상당히 격식 있고 온건한 표현인 듯하다. 사태의 진실을 드러내기에 불충분할지 모른다. 사실은 더 엽기적일 수도 있다. 피해자나 시민단체 들 사이에서는 갈취라거나 사기판매라는 날선 비판도 여전히 거세다. 지금 단정지을 수는 없다. 향후 사법당국의 판단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 
 
이같은 분쟁조정 결과에 대해 우리은행과 하나은행 등 해당 금융사들은 얼른 수용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예상보다 고분고분하다. 과거 키코사태 등의 경우처럼 잡아떼거나 버티지 않는 것을 보면 의외라고 여겨진다. 
 
언제부터 한국의 금융사들이 소비자들의 불만을 그렇게 존중해 왔던가? 정말로 뜻밖의 저자세라고 여겨진다. 아마도 국민적 공분을 의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 힘겨운 DLF 국면을 얼른 빠져나가고 싶은 마음도 컸기 때문일 것으로 추측된다. 당장 자신들에게 날아오는 비난과 공격의 화살을 무디게 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은행이 사실상 조직적으로 고령자를 비롯한 사실상의 금융판단미약자를 상대로 초고위험 금융상품을 마구 판 책임은 결코 가볍지 않다. 약효가 입증되지 않은 약을 환자에게 판매한 돌팔이 의사나 약사와 유사한 것이다.
 
따라서 은행장을 비롯한 경영 최고책임자에게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마땅하다. 금감원도 이번 사건을 처리하면서 은행 경영진을 징계 대상에 올려놓을 모양이다. 금감원은 DLF를 판매한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에 전달한 검사 의견서에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 겸 우리은행장,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부회장, 지성규 KEB하나은행장을 감독 책임자로 명시했다고 한다. 당연한 일이다.
 
금감원이 이들 은행 CEO들을 정말로 중징계할 것인지는 아직 알 수가 없다. 지금까지 금융소비자 문제로 징계를 받은 최고경영진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러니 이번에도 어쩌면 시간이 흐르면서 유야무야되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 없다. 은행들은 그런 시간이 주는 약을 기대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워낙 많은 사람이 피해를 입었기에 그렇게 쉽게 잊혀지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제 금감원이 결론 내리기 전에 은행 CEO들이 스스로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판단된다. 이번 사안이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은행장들이 그 책임을 스스로 지겠다고 선언해야 한다. 피해액의 얼마간을 배상하다는 것으로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렇게 끝날 수도 없다. 
 
지금까지 필자는 이번 DLF 사건에 대해 몇 차례 썼다. 다른 현안과 소재도 많다. 그렇지만 한국의 금융소비자가 앞으로는 정당한 대우를 받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판단했기에 거듭 썼다. 그렇게 하면서 정당하게 영업하고 이익을 내는 것이 은행의 경쟁력 향상에도 유익할 것임은 두말 할 나위 없다. 이제는 금융당국과 은행들의 자세가 바뀔 것이라는 기대를 하면서 화제를 돌리고 싶다. 그러기 전에 한 마디는 더해야겠다. 새로운 정신과 깨끗한 손으로 다시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차기태 언론인(folium@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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