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익도의 밴드유랑)‘시름겨워 하노라~’ 상상과 파격의 밴드 EOS
다프트펑크 같은 비트, 한시 같은 노랫말…새 앨범 ‘The Greatest Romance’
크리스마스날 서울 CKL서 무료 공연 “라이브 무대는 진짜 갈고 닦은 우리”
입력 : 2019-12-07 06:00:00 수정 : 2019-12-07 06:00:00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밴드신의 ‘찬란한 광휘’를 위해 한결같이 앨범을 만들고, 공연을 하고, 구슬땀을 흘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TV, 차트를 가득 메우는 음악의 포화에 그들은 묻혀지고, 사라진다. ‘죽어버린 밴드의 시대’라는 한 록 밴드 보컬의 넋두리처럼, 오늘날 한국 음악계는 실험성과 다양성이 소멸해 버린 지 오래다. ‘권익도의 밴드유랑’ 코너에서는 이런 슬픈 상황에서도 ‘밝게 빛나는’ 뮤지션들을 유랑자의 마음으로 산책하듯 살펴본다. (편집자 주)
 
'stardust memory'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EOS 멤버들은 이번 앨범이 '차가운 파란색' 이미지와 닮아 있다고 얘기했다. 사진/EOS 공식 유튜브 채널
 
첫 곡 ‘stardust memory’를 재생하는 순간, 짜릿한 감각의 전자음이 심장에 와 부딪힌다. 우주 먼지 같이 꿈틀거리는 도입부 전자음이 맑게 터져 나오는 보컬 후렴부로 직행한다.
 
다프트펑크를 연상시키는 멜랑콜리한 파격적 비트에 얹는 한시(漢詩) 같은 노랫말(‘우루사’), 귀환을 알리는 펑키한 기타리프와 데이비드 보위를 연상시키는 미성의 리듬감 (‘가장 위대한 로맨스’). 사랑과 상실의 이야기들이 전자음과 록의 적절한 배합으로 심박수를 높인다.
 
밴드 이오에스(EOS)가 최근 새 앨범 ‘The Greatest Romance’를 냈다. ‘25(2018)’, ‘Shall We Dance(2019)’에 이어 재결성 후 세 번째 앨범이다. 다프트펑크를 연상시키는 보코더, 그루비한 베이스와 쫄깃쫄깃한 기타, 맑고 청아한 보컬…. 밴드 마스터로 활동해온 이 연륜의 뮤지션들은 온 감각과 실험으로 새로운 음악 항해를 거침없이 나선다.
 
지난달 27일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 인근 합주실에서 인터뷰 직전 멤버들이 공연 연습하는 모습. 사진/파자마공방
 
지난달 27일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 인근 합주실에서 만난 밴드[김형중(보컬), 조삼희(기타), 배영준(베이스)]는 “EOS 재결성 후 일반적 사랑, 연애 이야기에 염증을 느껴 다른 이야기에 집중했다”며 “이번 앨범은 사랑을 다뤘지만 일반적이지 않은 시각, 상념으로 풀어나가는 데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우리 셋 다 일반적인 것들을 좋아하지 않는 공통성이 있어요. 뭔가 새롭고 독특한 게 아니면 흥이 안나요. 늘 새로운 것에 목말라 있어요.”(영준)
 
‘The Greatest Romance’. 어느덧 가정을 꾸린 세 뮤지션은 ‘위대한 사랑’이란 인류적 물음을 연애적 환상 따위에서 찾지 않는다. 다분히 현실 세계를 해체하고 비트는, 공상만화 같은 상상을 거쳐 달하려 한다. 네가 없는 시공은 세계 멸망, 영원한 겨울이다(곡 ‘겨울잠’).
 
“저는 곡을 쓸 때 가사와 멜로디를 개별적으로 생각하지 않아요. 두 개가 서로 잘 안붙으면 그걸 ‘튄다’, ‘어색하다’ 표현하는데, 이 곡도 세계 멸망이란 단어 때문에 충분히 그럴 수 있었어요.”(영준)
 
“삼희씨의 으스스한 기타 톤, 형중씨의 밸런스가 잡힌 보컬이 없었다면 쓸 수 없는 가사였어요. 결국 부르는 사람과 연주자의 몫이 되는건데, 둘 다 튀지 않게 잘 표현했어요.”(영준)
 
EOS 기타리스트 조삼희. 사진/파자마공방
 
한시(漢詩) 같은 노랫말을 실은 다른 수록곡 ‘우루사’는 이 세상 가사가 아니다. ‘가엾어라. 눈물로 띄운 한 잔 술에 돌이킬 수 없었던 사랑, 시름겨워 하노라~’ 
 
“어떻게 하면 독특하게, 개성 있게 만들까 조금 무리를 한 면도 있는 것 같아요. 하하.”(영준)
 
상상과 파격의 가사를 밴드는 주로 책과 만화에서 얻는다. ‘잊혀진 스파이로 사는 법’(앨범 ‘Shall We Dance’ 수록곡)은 존 르카레의 소설, ‘Ping-Pong Star’(앨범 '25' 수록곡)는 ‘핑퐁’이란 만화책에서 영감을 길어 올렸다. “저는 무인도에서는 천재가 나올 수 없다는 말을 신뢰해요. 창작자라면 더 많이 보고 감상해야하죠. 읽고 나서 주로 우리가 지금 처한 현실, 상황에 대입했던 것 같아요.”(영준)
 
EOS 베이시스트 배영준. 사진/파자마공방
 
밴드는 오는 12월25일 서울 청계천로 CKL스테이지에서 무료 스탠딩 공연을 개최한다. 연말 공연을 앞두고 라이브 연습을 위해 매주 이 곳에 모이고 있다. 이날도 인터뷰도 4시간의 타이트한 연습을 끝낸 직후 진행됐다. 회기역 인근 대학생들이 거니는 거리 외진 곳 지하. 방음을 머금은 먹먹한 생 소리가 스튜디오 그래피티 그려진 외벽을 타고 다음 달까지 울린다.
 
“모든 밴드들이 그렇겠지만 EOS 역시 앨범보다 중요한 건 라이브예요. 무대는 진짜 갈고 닦은 우리 그대로를 드러내는 곳이니까요.”(형중)
 
지난달 27일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 인근 EOS 합주실. 멤버들의 연습 악보가 놓여 있는 모습. 사진/파자마공방
 
밴드유랑 공통 질문의 시간. EOS 앨범은 어떤 여행지로 표현될 수 있을까.
 
“저는 책, 영화를 접하며 여러 세계로 상상 여행을 해요. 어디든 갈 수 있으니 굳이 비행기를 탈 필요도 없고. 진정한 사랑 역시 상상에서나 가능하다고 믿는 편인데, 그래서 저희 음악도 그런 것 같아요.”(영준)
 
“어디든 갈 수 있는 상상 같은 음악이다?”라 반문으로 요약한 형중이 말을 이었다.
 
“전 이번 앨범을 듣고 떠오른 이미지가 블루였어요. 차가운 파랑 같은 느낌. 그래서 뮤직비디오를 직접 제작할 때도 그 색을 많이 썼고. 여행지로 떠올린다면 차가운 동유럽 어느 나라 정도가 아닐까. 차갑지만 또 따듯한. 실제로 옛 거리나 건물은 따뜻한 느낌이 나거든요.”(형중)
 
“좋다, 그거! 저도 이걸로 하면 안될까요?”(영준) 인터뷰 내내 묵묵히 자리를 지키던 삼희가 미소를 띄었다. “저도 좋네요.”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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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익도

자유롭게 방랑하는 공간. 문화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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