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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판 깰수 있다' 경고, 남측엔 '더 지원하라' 압박한 셈"
김정은, 자력갱생 의지 밝히면서도 '대화' 의지…"남측 독점 사업방식 변화 예고" 해석도
2019-10-23 17:21:06 2019-10-23 17:21:06
[뉴스토마토 최병호 기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3일 남북 경제협력의 상징인 금강산관광 사업을 '잘못된 일'로 규정한 건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유효한 상황에서 '우리식 자력갱생'을 도모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동시에 남한 지원에 주로 의존했던 남북관계를 근본에서 전환하는 것도 염두에 둔 행보라는 분석이다. 다만 김 위원장이 대화 여지를 남겨둔 만큼 남북경협을 완전히 접는 수순으로 가지는 않을 것이란 분석이 우세하다. 
 
우선 김 위원장이 금강산을 직접 답사한 뒤 금강산관광 사업방식에 관해서 수정을 지시한 건 남한에 대한 서운함을 표출하는 동시에 우리 측과의 대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정의당 김종대 의원은 이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김 위원장이 금강산 관련 문제가 풀리지 않는 것에 대해 격분한 것"이라면서 "다만 '남측 동포들이 오면 언제든 환영하겠다'거나 '남측 시설들을 싹 들어내는 건 남측의 관계부문과 합의하여'란 단서 조항을 단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풀이했다. 김 위원장의 발언은 1차적으로는 금강산관광에서 북한 영향력을 확대하겠다는 뜻이지만 속내에는 남측에 대화를 재촉하는 의미도 있다는 진단이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통일부에서 연락이 오고 상황이 급박하다"고 설명한 뒤 "남북경협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강조했던 김 위원장의 워딩으로 봐서는 '금강산관광 사업을 언제까지 이대로 내버려둘 것이냐', '새로운 방식으로 개선이 필요하다'고 읽힌다"고 이야기했다. 현대 측에 따르면, 현대아산은 2008년 7월 '박왕자씨 총격 사망 사건' 이후 금강산관광이 중단된 후에도 주기적으로 북한에 가서 금강산관광 시설을 살피고 보수를 하면서 사업 재개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남북이 2008년 이전처럼 전면적으로 금강산관광을 정상화하지 않은 이상 관광자원이 낙후되는 걸 막는 건 어렵다고 강조했다.
 
동해안의 최북단인 강원도 고성 금강산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의 금강산 구선봉과 감호 전경. 사진/뉴시스
 
북한의 정치상황을 고려할 때 김 위원장의 발언은 여러 의미를 동시에 가진다는 설명도 있다. 특히 김 위원장이 금강산에 북미 비핵화 협상을 담당한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을 데리고 간 걸 주목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 관영매체들이 올해 김 위원장의 현지지도에 최선희 제1부상의 수행 소식을 보도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3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이 거론되는 마당에 대북제재로 금강산관광을 막는 미국에 던지는 메시지라는 분석이다.
 
이종훈 시사평론가는 "김 위원장의 의도는 '자력갱생 의지를 통한 내부 단속용', '대북제재가 계속되면 판을 다 깨겠다는 대미 압박용', '북한에 더 지원하라는 남한 압박용' 등으로 다양하게 해석된다"면서 "3차 북미회담 후 어떤 식으로든 '딜'이 이뤄질 공산이 크고, 대북제재가 해제되면 남한에 더 많은 지원을 얻어내기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고 했다. 남북경협을 접는 수순으로 어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는 가능성이 낮다고 관측했다.
 
반면 야당은 더이상 북한에 끌려다니기만 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자유한국당 김명연 수석대변인은 "문재인정권의 북한을 향한 교감 없는 일방적인 짝사랑의 여파가 또다시 여실히 드러났다"면서 "이제는 우리가 '너절한 대북정책'을 폐기하고 실효적인 대북정책으로 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국민들은 문재인정권의 대북 쇼에 속지 않는다"면서 "굴종적 대북정책으로 인한 참사는 이제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 관계자는 "남측에 독점권을 부여해서 진행하던 기존 사업 방식의 변화를 예고하면서 남측의 전향적 입장 전환을 압박한 것"이라며 "자력자강의 맥락에서 아무리 선대의 유훈이 중요하다고 해도 시대흐름에 맞지 않으면 바꿀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풀이했다.
 
최병호 기자 choib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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