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 상대 체육계 '갑질' 범죄 만연…"지도자·학부모 '먹이사슬 구조' 깨야
성폭행·금품수수·사기까지…"낮은 형량탓" 지적도
입력 : 2019-08-10 09:00:00 수정 : 2019-08-10 09:00:00
[뉴스토마토 김광연 기자] 국가대표 출신으로 언남고 축구부 감독이자 한국고등학교축구연맹 회장인 정종선씨가 학부모를 성폭행하고 10억원대 횡령 혐의를 받아 충격을 주고 있다. 해마다 학원체육 관련 범죄가 끊이지 않자 정부까지 발벗고 나서고 있으나, 일종의 '먹이사슬'과 같은 감독과 학부모 간 상하관계 문제를 근본적으로 풀지 못하면 악습은 반복될 거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정씨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학부모 3명은 지난 8일 JTBC와 인터뷰에서 "아들에게 문제가 있다는 정씨 연락을 받고 학교에 갔다가 성폭행을 당했다. 순간 제압을 해서 순식간에 벌어졌고 움직일 수 없었다"며 "그 후 정씨가 '전학을 가면 아이를 매장해 버린다', '프로를 못 가게 아이 앞길을 막아버리겠다'고 협박했다"고 주장했다. 학부모들은 정씨가 자녀 대학 입시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쳐 피해 사실을 밝힐 수 없었다고 했는데 정씨는 이미 학부모들로부터 수년간 지원받은 축구부 운영비 10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2월부터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경찰은 조만간 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이다. 
 
학원체육 지도자들의 '탈선'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해 체육계는 지도자로부터 성폭행당한 선수들의 '미투'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를 2014년 8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총 30차례나 성폭행한 혐의를 받는 전 쇼트트랙 국가대표 코치 조재범씨와 유도선수 신유용을 성폭행한 혐의를 받는 전 유도부 코치 손모씨가 주인공들이다. 손씨는 지난달 1심에서 징역 6년을 선고받았다.
 
지도자들의 개인 비리 문제도 심각하다. 대구지법은 6월 학부모들에게 외제차 한 대 등 총 1억1000여만원을 수수한 혐의로 기소된 대구 한 고등학교 야구부 감독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추징금 900만원을 선고했고 인천지법은 2월 학부모들에게 2억7000여만원을 빌려 갚지 않은 모 학교 축구부 감독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 광주지법은 지난해 11월 선발 출전을 미끼로 학부모들에게 1700여만원 상당의 접대를 받은 전 고교 야구부 감독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 추징금 1600만원을 선고하기도 했다.
 
범죄가 끊이지 않는 체육계 구조 개혁을 위해 정부는 2월 시민단체와 체육계 추천을 받은 민간위원, 정부 관계자로 구성한 문화체육관광부 스포츠혁신위원회를 출범했다. 혁신위는 체육계 내부로부터 독립된 스포츠인권기구 설립과 성적 지상주의에 빠진 국내 학교체육의 폐단을 벗겨내기 위해 학기 중 평일 대회 금지·합숙 제도 폐지 등을 권고했으나 엘리트 체육인들은 "체육계 현실을 무시한 공론에 불과하다"고 반발 중이다. 
 
전문가들은 법원 판결에도 부족한 부분이 있으나 절대 갑인 지도자와 절대 을인 학생과 학부모의 근본적인 관계를 바꾸려는 노력 없이는 지도자들의 범죄가 계속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스포츠 에이전트로 활동하는 한 변호사는 "감독 비리에 대한 법원의 형량 자체가 적은 느낌이 드는 게 사실"이라면서도 "근본적인 문제는 감독 간 학부모의 '상하 관계'가 법정에서도 이어진다는 점인데 학부모들의 고소·고발로 감독이 재판을 받더라도 앞으로 감독과 관계를 의식해 나중에 학부모들이 탄원서 등을 제출하거나 합의해 형량이 감경되는 경우가 많다"라고 지적했다.  
 
학원체육계 사정에 밝은 다른 변호사도 "법원 형량이 상대적으로 낮아 보이는 이유는 법원은 범죄행위 그 자체에 포커스를 맞춰 양형을 정하는 반면, 체육계 현장에서 체감하는 지도자들의 범죄 정도는 훨씬 심각하기 때문"이라며 "꼭 법원 잘못이라고만 볼 수는 없지만, 지도자와 학부모의 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생각한 판결이 상대적으로 적은 거 같다"고 밝혔다. 이 변호사는 "과거보다 고교 지도자들의 '힘'이 상대적으로 낮아졌다고 하나 여전히 선수 장래나 평판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 보니 학부모들에게 여전히 지도자는 절대 갑일 수밖에 없다. 감독과 학부모가 상하관계로 이뤄진 학원체육 구조 자체가 더 큰 문제"라고 비판했다.
 
노태강(왼쪽)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 등 참석자들이 지난 2월11일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국제화상회의실에서 열린 스포츠혁신위원회 출범식 및 제1차 회의에서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김광연 기자 fun350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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