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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익도의 밴드유랑)부조리함과 몰개성성에 드는 반기, 넘넘
사회에 던지는 이들의 냉소…“카타르시스 느끼려고 음악하죠”②
2019-08-07 06:00:00 2019-08-07 06:00:00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밴드씬의 ‘찬란한 광휘’를 위해 한결같이 앨범을 만들고, 공연을 하고, 구슬땀을 흘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TV를 가득 메우는 대중 음악의 포화에 그들의 음악은 묻혀지고, 사라진다. ‘죽어버린 밴드의 시대’라는 한 록 밴드 보컬의 넋두리처럼, 오늘날 한국 음악계는 실험성과 다양성이 소멸해 버린 지 오래다. ‘권익도의 밴드유랑’ 코너에서는 이런 슬픈 상황에서도 ‘밝게 빛나는’ 뮤지션들을 유랑자의 마음으로 산책하듯 살펴본다. (편집자 주)
 
“내 맘대로 할 거라고, 이 시끼들아!”
 
7월13일, 서울 연남동 채널 1969에서 열린 붕가붕가레코드 기획공연. 밴드 넘넘(numnum·이윤정[보컬], 이재[베이스], 이승혁[기타, 프로듀싱])이 강렬한 록 사운드에 찰진 욕설을 섞어 뱉자, 관객들이 뒤이어 사자후를 토해댔다. 작은 공연장에 일대 지진이 일었다.
 
지난달 31일 서울 한남동 인근 작업실에서 만난 멤버들은 웃으며 “그런 카타르시스를 느끼려고 공연한다”고 답했다. “그건 욕이 아니에요. 친근한 어머니 만이 낼 수 있는 말이라고요!”(윤정)
 
이들은 가사에서도 ‘있는 그대로’의 상황을 마주하고 표현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있어 보이는 사람 말 함정처럼 믿지 말고 자신의 맘 대로 살라’(‘It’s a Trap!)하고 ‘오만한 눈으로 바라보는 이를 향해 한방만 멕일게’(‘최강바보’)라며 펀치를 날린다. 내면에서 삭이던 분노와 감정들을 있는 그대로 마주보고 바깥으로 끄집어 낸다. 주로 가사는 삐삐밴드 출신 이윤정이 담당한다. 
 
“그거 풀려고 곡을 써요. 우리 모두가 스트레스를 받고 살잖아요. 그것들을 표출하지 않고 살면 대변이 마려울 때 배설을 못하는 기분일 거예요. 끝맺음을 하지 못한 기분이 드는 거죠.”(윤정)
 
삐삐밴드 출신이자 넘넘의 보컬 이윤정. 사진/붕가붕가레코드
 
지난 5월 발매한 새 EP ‘넘’은 일상에서 주제들을 채집했다. 기쁠 때나 슬플 때, 혹은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의 감정들을 기록하고 그것들로 곡의 가사를 풀었다. 작업 방식은 20여년 전 그가 활동하던 삐삐밴드의 멤버들에게서 배운 것이다. “늘 삐삐밴드 멤버들은 제게 ‘니가 하고 싶은 얘기 해’라고 했어요. 이야기를 내뱉지 않으면 집에도 안 보냈고요. 삐삐밴드 ‘안녕하세요’도 그러다가 튀어나온 곡이에요. 하고 싶은 얘기를 노래로 하는 거라고 배웠던 게 이젠 습관이 된 거죠.”(윤정)
 
사회에서, 일상에서 그의 끓는 점을 자극하는 사건들은 이런 것들이다. 공중 화장실에 설치된 몰래카메라, 성상품화, 모두가 똑같이 흘러가는 ‘먹는 방송(먹방)’들…. 새 EP 수록곡 ‘먹고먹고’는 이런 사회적 부조리함이나 몰개성성에 정면으로 응수한다. ‘매일 매일 똑 같은 거만 먹고 매일 매일 똑 같은 거만 싸지/ 먹고 또 먹고 먹고 또 먹고 먹고 먹고 먹고’
 
“도대체 그렇게(몰래카메라) 까지 해서 봐야 하나요? 그리고 그렇게 먹고 사는 모습만 보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요?”(윤정) 
 
‘해와 달이 다르듯, 너와 난 다르다’(곡 ‘째깍째깍’)고 외치고, ‘삼삼오오 모두 몰려들지’만 ‘니가 가는 데는 안가’고 ‘내가 가는 데로 따라온다’고 하는 메시지들 역시 자신 만의 개성으로 살아온 내면 이야기들을 고스란히 비춘다. “작곡, 작사 이런 개념이 제겐 없어요. 그냥 일상을 담은 것이죠. 글을 쓰고 그걸 소리로 표현하는 것들을 계속해왔거든요. 이재와 승혁이 제게 사운드를 던지면 그걸 듣고 떠오르는 비주얼이나 생각을 글로 쓰고 멜로디화 시켜 넘겨요. A/B/C/브릿지 같은 파트 같은 거 전 잘 몰라요.”(윤정)
 
밴드 넘넘의 이재(왼쪽)과 이승혁. 사진/붕가붕가레코드
 
밴드는 올해 앨범 발매 후 신예밴드 치곤 이례적으로 대형 페스티벌 무대에도 몇 차례 올랐다. 지난 6월 중순 철원 고석정에서 열린 ‘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에 출연했고, 6월 말에는 캐나다 캘거리에서 열리는 지역 음악축제 ‘슬래드 아일랜드’ 무대에 섰다. “진짜 생각지도 못하게 반응이 너무 좋아서 놀랐어요. 그 곳(캐나다)에 사는 사람들은 5세에서 60세까지 뼛속까지 록커들 일텐데, 다들 잘 봤다고 너무 재밌었다고 얘기해주셔서 신기했죠.”(윤정) “첫째날 온 분들이 다음날도 오셔서 보시고, 티셔츠나 굿즈 안파냐고도 물어봐주셨어요.”(이재)
 
향후 활동 계획에 대해서는 “앞으로 계획이 없는 게 저희의 계획”이라고 입을 모은다. “생각보다 그래도 빨리 작업이 진행되고 있어요. 올해 10월에는 2번째 EP가 나오지 않을까 싶네요. 벌써 많은 곡들이 나왔어요.”(윤정)
 
밴드 넘넘. 사진/붕가붕가레코드
 
마지막으로 밴드의 음악을 여행지에 빗대달라는 질문에 ‘있는 그대로’의 생각들을 늘어놓는다.
 
“북한? 모로코?”(윤정)
“폐건물? 사람이 살아야 하는데 없는 곳. 그런 곳? 다듬어지지 않은 곳, 모든 자연은 누릴 수 있는데, 5G가 안터지는 그런 느낌.”(이승혁)
 
“촌스러운 외국 지방? 캔터키 같은 곳이랄까. 통나무 집에서 기타만 있는 삶. 도시 나가려면 한참 걸리고, 트랙터로 밭도 갈 수 있는 데 그런 거 밖에는 할 게 없는 그런 창고 같은 곳. 볼 빨간 애들도 몇 명 모여있고.”(윤정)
 
인터뷰 내내 몇 마디 말이 없던 이재가 잇는다. “저는 중국 야시장 같은 느낌요. 공연 하러 한 번 간 적이 있어요. 낮에는 기온이 너무 오르고 습도도 높고 정신을 못 차릴 정도의 날씨였어요. 그러다 밤에 모두가 촛불을 켜놓고 야시장에 모이더라고요. 물론 그렇게 시원하진 않았지만, 연인, 부모, 애기, 고양이. 어떤 관계든 상관없이 모두 나와 러프하게 그곳에 있더라고요. 저는 그런 느낌.”(이재)
 
“나도 바꿔야겠다!” 승혁의 말에 모두 웃음이 터진다. “바꿀래요 저도. 공동묘지.”
 
밴드 넘넘. 사진/붕가붕가레코드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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