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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게이션)‘봉오동 전투’, 시대의 아픔과 의지의 역사
35년 일제 강점기 치욕의 역사 속 대규모 항일 무장 투쟁 승리
개인의 아픔과 슬픔 스스로 거세한 시대의 아픔과 의지의 역사
2019-07-31 00:00:00 2019-07-31 23:27:44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가슴이 뜨거워 진다. ‘국뽕이란 폄훼 단어는 분명히 또 나올 것이다. 하지만 이건 엄연히 우리 역사에 존재한 실재다. 1910 8월 국권 피탈 이후 무려 35년이나 지속된 일제 강점기는 우리에겐 패배’ ‘지배’ ‘굴욕’ ‘치욕’ ‘오욕의 역사다. 하지만 이 시간 동안 우리에게도 분명한 승리의 역사가 존재했다. 국사 교과서에도 나온다. 볼품 없는 초라한 촌부의 모습이다. 작고 왜소하다. 하지만 눈빛만큼은 살아 있다. 그들의 손에 쥔 소총은 누군가를 겨누고 있다. 죽이기 위해 겨눈 것이 아니다. 살기 위해 겨눈 것이다. 빼앗기 위해 겨눈 것이 아니다. 되찾기 위해 겨눈 것이다. 힘이 아니다. 울분이다. 국사 교과서에 실린 봉오동 전투’에 참전한 이름 모를 독립군들의 모습이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그 사진 속 그들의 결연한 의지가 담긴 눈빛에서 이 영화는 출발했다. 영화 봉오동 전투. 이건 국뽕이 아니다. 우리의 자존감이고 우리의 의지였다. 그 의지가 항일 무장 독립 투쟁 역사 속 찬란한 승리로 꼽히는 청산리대첩의 발판을 만들어 냈다. 그 이전에 가장 드라마틱하고 전략 전술 측면에서 지금도 현대 전투 교본 속 최고의 레퍼런스로 존재하는 봉오동 전투가 있었다.
 
 
 
봉오동 전투는 거대한 전면전이 아니다. 일본 제국주의 정규군과 이합집산 대한독립군이 혈전을 벌인 게릴라전이다. 실제 역사에선 홍범도 장군의 대한독립군, 안무의 국민회군, 최진동의 대한군무도독부가 연합해 만주 봉오동에서 일본군 제19사단 월강추격대를 격퇴한 전투다. 양측 사상자는 일본군이 150명 가량의 전사자로 부대 자체가 괴멸된 반면 연합 독립군 측은 수십 명의 사상자만 냈다.
 
항일 무장 투쟁의 역사이며 그 속에서 활약한 무명의 용사들이 주인공이다. 봉오동 골짜기까지 월강추격대를 유인해 전략 전술 측면에서 우위를 점하고 승리로 이끈 전쟁이다. 결과적으로 일본군 19사단 최정예 부대로 꼽히는 월강추격대를 이 골짜기로 유인하는 게 첫 번째 전략 전술이다. 실제 역사에서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의 희생이 반드시 존재했었다. 역사가 기록하지 못했지만 그건 통념으로 느낄 수 있다. 그들은 영화에서 일본군에게 끔찍하게 동생을 잃은 황해철(유해진), 마적단 출신이지만 세월이 그를 마적으로 몰아 붙여 버린 마병구(조우진), 일본군에게 부모를 잃은 개똥이(성유빈), 일본군에게 마을 사람들이 몰살되고 어린 동생 마저 잃은 춘희(이재인)로 등장한다. 각각의 사연이 있고, 저마다의 울분이 있고 그들만의 슬픔이 있다. 하지만 그 감정의 밑바닥은 저항이고 항일이다.
 
영화 '봉오동 전투' 스틸. 사진/쇼박스
 
의외로 봉오동 전투는 인물의 감정에 냉혹하다. 시대의 감정이 개인의 아픔을 앞서간 시대였기 때문이다. 그들 모두가 느끼는 감정의 골은 깊다. 그 깊이의 밑바닥은 처연할 정도로 냉정하다. 그래서 그들의 시선은 오롯이 항일 하나에 집중한다. 그것을 이끄는 또 다른 사연은 독립군 분대장 이장하(류준열). 그 역시 시대가 만들어 낸 또 다른 항일이다. 누이를 잃은 자신의 감정이 앞서지만 시대의 감정을 더욱 앞에 두는 냉철함을 유지한다. 그 냉철함이 사실은 슬프다. 그 시대는 개인의 슬픔조차 허락되는 것이 사치다. ‘봉오동 전투는 그렇게 시대의 아픔을 위해 개인의 아픔을 스스로 거세한 이들의 의지가 모여 만든 결과였다. 춘희는 자신의 가족들과 마을 사람들을 몰살시키고 눈앞에서 어린 동생을 무참히 살해한 일본군에 대한 증오를 살림으로 대신한다. 황해철을 필두로 한 이합집산의 독립군 돌격대에게 포로가 된 어린 일본 소년병 유키오’(다이고 코타로)에게 말한다. “반드시 살아서, 후대에 너희들의 잘못을 전해라라고. 그것이 시대의 아픔을 넘어서기 위해 그 시절 이름 모를 여러 독립의 의지가 스스로의 아픔을 거세하는 방식이었다.
 
영화 '봉오동 전투' 스틸. 사진/쇼박스
 
시종일관 영화는 이장하와 황해철을 위주로 한 독립군 게릴라 부대가 월강추격대를 봉오동 골짜기로 유인하는 과정을 담아 낸다. 대규모 전투가 아닌 게릴라 전략 전술이 등장한 이 전투의 아우라를 그대로 따온 영화는 국지전 형태 크고 작은 격돌이 수 없이 등장한다. 이 과정은 피가 튀고 살이 찢기는 모습으로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잔인하고 끔찍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시절 본심은 흘러내리는 피보다 더 진했고 찢겨진 살덩이보다 더 아팠다. 황해철이 일본군을 죽이고 항상 그들의 피로 써 내려간 대한독립 만세 글귀는 빼앗긴 나라의 설움의 깊이였고, 되찾기 위해 싸운 동료들의 노력이었다. 일본군의 흘러내린 피로도 결코 보상할 수 없는 시대의 아픔을 대신한다.
 
영화 '봉오동 전투' 스틸. 사진/쇼박스
 
영화는 감정의 깊이와 내면의 고통을 달리 표현하지 않는다. ‘봉오동 전투 자체가 그 시절의 고통이고 아픔이었다. 승리의 역사였지만 그 뒤에 결과를 이끌어 내기 위해 흘린 피의 가치와 노력이 더욱 더 많았기 때문이다. 굳이 그들의 노력과 피 흘림을 신파의 감정으로 끌어가지 않은 것은 숭고함에 대한 가치 기준을 더욱 끌어 올리는 감독의 노력이고 시선이다.
 
두 시간이 넘는 러닝타임 동안 쉴새 없이 터지고 폭발하는 전장의 파열음은 보는 이들의 피로감을 끌어 올릴 수도 있다. 하지만 다시 한 번 새겨 들어야 함은 이 영화는 실재였다. 실재는 더욱 더 치열했다. 과정의 스토리였지만 결과의 찬란함에 집중한다면 피로감이 아닌 가슴 떨림의 전주곡이 될 것이다.
 
영화 '봉오동 전투' 스틸. 사진/쇼박스
 
영화 마지막 봉오동 전투 전략 전술을 진두지휘 했던 홍범도 장군의 깜짝 등장에 관객들은 놀랄 수도 있다. 그리고 그가 펼쳐 든 한 장의 그 시절 의지에 가슴 뜨거움과 설레임이 느껴질 것이다. 이 모든 것을 국뽕이란 단어 하나로 치부할 수도 있다. 한일 양국의 역사적 관계와 감정적 프레임 그리고 지금 양국의 반일’ ‘혐한 대치가 격화되는 시기에서 뜻밖의 수혜가 이 영화에 집중될 수도 있다. 그것을 국뽕이란 단어로 치부한다면 그건 그 시대를 지탱해온 의지에 대한 모욕일 것이다. 최소한 그것만큼은 이 영화를 통해 반드시 거부해야 함이 옳다. 개봉은 8월 7.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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